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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접할 때 지혜가 주관토록 하라

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⑮

병에 걸리면 증상에 맞게 약 먹듯
몇십년 수행해도 매일 괴롭다면
반드시 원인을 찾아 바로 잡아야
지혜 있어도 실천 없으면 무의미
잘못 고치면서 실천하는 게 정진

정공 스님은 잘못을 알아차려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 정진하는 게 수행의 요체라고 말한다.
정공 스님은 잘못을 알아차려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 정진하는 게 수행의 요체라고 말한다.

“(이러한 큰 서원을 발하고서) 진실의 지혜에 머물러 용맹 정진하며 일향 전심으로 뜻을 두어 미묘한 국토를 장엄하였느니라(住真實慧,勇猛精進,一向專志,莊嚴妙土).”

여기서 ‘장엄묘토(莊嚴妙土)’는 앞의 세 문구를 꿰뚫습니다. 진실의 지혜에 머물면서 미묘한 국토를 장엄하고, 용맹정진하면서 미묘한 국토를 장엄하며, 한결같이 마음속으로 아미타불을 염하면서 미묘한 국토를 장엄합니다.

발원은 믿음이고, 진실의 지혜에 머무는 것은 지혜를 말합니다. 그 다음은 정진이고, ‘일향전지’는 염(念)입니다. 이 단락을 세밀히 살펴보면 ‘아미타경’에서 말씀하신 오근오력(五根五力)과 상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수행하고 공부해 득력하는 성취의 기본조건입니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거듭 반성해 봅시다. 우리는 경전강설과 설법을 듣고, 경전을 독송하며, 염불하면서 불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공부해도 왜 득력을 하지 못하고, 진실한 수용에 이르지 못하였습니까?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의 ‘믿음’ ‘정진’ ‘염’ ‘선정’ ‘지혜’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수행하고 공부해 진정으로 득력하고 싶다면 과거 고승대덕과 보살들을 따라 배워야 하는데, 바로 이 세 문구가 기본입니다.

‘주(住)’는 안온히 머무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지혜가 충만해야 비로소 행(行)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육조단경’을 보면 혜능 대사께서 맨 처음 오조 홍인 화상을 만나 뵙고, “제자의 마음속에서 항상 지혜가 일어납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진정한 수행인을 설명합니다. 그의 마음은 진실의 지혜에 안온히 머물러 있지만, 우리는 망상번뇌 가운데 항상 머물러 있으니 완전히 다릅니다.

착실히 염불하고 날마다 예불하며 승가에 공양하면서 이렇게 몇 십년을 수행해도 여전히 소식이 없고 여전히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반드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병에 걸렸다면 병의 원인을 찾아서 증상에 맞게 약을 복용하고 병을 치료해야 비로소 건강한 하루가 찾아옵니다. 만약 우리가 대충대충 두루뭉술하게 불법을 배운다면 몇 십 년이 지나도 자신에게 병이 있는지, 그 병이 얼마나 중한지, 어떻게 병에 걸렸는지 알지 못합니다. 병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그 원인은 바로 우리들 마음속에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볍게 보고 넘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진실의 지혜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 진실의 지혜에 머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꼼꼼히 잘 듣고 확실히 기억해두었다가 생활상에서 활용해야 비로소 행(行)입니다.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상대하며, 사물과 접할 때 감정에 맡기지 말고 이성과 지혜가 주관하도록 하면 곧 진실의 지혜에 가까워집니다.

이성과 지혜가 생기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말고 부지런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무량수경’에서 설하신 도리에 따라, 경전에서 설하신 방법에 따라 착실히 노력하면서 반성하고, 하나하나 잘못을 고쳐나가며, 실천에 옮기는 것을 ‘용맹정진’이라 합니다.

‘일향(一向)’은 바로 전심(專心)입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오직 하나의 일, 곧 미묘한 국토를 장엄할 뿐입니다. 회향게(回向偈)에서 “원하옵건대 이 공덕으로 불국정토를 장엄해지이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공덕입니까? 지혜가 충만한 행을 지키는 것이 공덕이고, 아주 조그만 선심, 선행이라도 극락세계로 회향하는 것이 공덕입니다.

이 세 문구는 보현보살 묘행(妙行)의 강령이자 종지(宗旨)이고, 법장비구께서 서방극락세계를 창건하신 진실한 인(眞因)입니다. 이는 아미타부처님의 일이고,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고 여기면 잘못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일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일입니다.

“그가 수행해 성취한 불국토는 확 트여 통해 있고 끝도 없이 광대하며 제불국토보다 수승하고 홀로 미묘하다(所修佛國 開廓廣大 超勝獨妙).”

앞 단락은 법장비구가 닦은 인입니다. 이 단락은 그가 성취한 국토로 청정을 장엄한 국토입니다. 그 국토는 어떤 부분이 미묘하고, 수승합니까? 고인께서는 극락세계가 일곱 가지 부분에서 수승하고 미묘하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의 법신·보신·응화신 삼신이 모두 한 곳에 나타나니, 이것이 미묘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보이신 모습은 응화신입니다. 부처님의 보신과 법신은 친견하지 못했습니다. 보신은 실보장엄토(實報莊嚴土)에 계시고, 법신은 상적광정토(常寂光淨土)에 계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네 가지 정토에 머물러 계시지만, 이 네 가지 정토는 한 곳에 있지 않아 세상 사람은 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서방세계 아미타부처님의 네 가지 정토는 한 곳에 있어 원융합니다.

둘째, 부처님의 몸은 광명과 수명이 일체 제불여래를 뛰어넘고 무량합니다. 대천세계 일체중생이 모두 연각을 성취해 함께 아미타부처님의 수명을 헤아려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수명은 이처럼 무량한데, 아미타부처님께서 성불하신지 십겁이 지났습니다. 비유컨대 한 사람의 수명이 백세인데, 이제 불과 십일이 지났다면 남은 날짜가 얼마나 길겠습니까.

셋째, 명호의 이익은 불가사의합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명호의 공덕으로 일체중생을 접인하고 섭수하십니다. 이는 일체 제불여래의 방법보다 간단하고 쉬우며, 온당하고 빠릅니다. 넷째, 위로 등각보살에서부터 아래로 지옥중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생이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고, 평등하게 성불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성문연각과 여인, 불구자와 세상에 극도로 불만인 자, 장애가 엄중한 자를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모두 문득 일승으로 바꾸어서 십지보살과 같아지게 하십니다. 여섯째, 왕생하는 수행은 쉽고 간단하며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다 닦을 수 있습니다. 기꺼이 닦기만 하면 한 사람도 왕생하지 못하는 이는 없습니다.

끝으로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나면 그 과보가 너무나 크고 빨라서 원만 구경한 불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곱 가지 부분은 시방세계에도 없고, 일체 경전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극락세계는 확실히 수승하고 홀로 미묘합니다. 어떤 부처님 찰토도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와 견줄 수 없습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55호 / 2018년 9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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