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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과 관경변상도

기자명 주수완

부조와 그림 차이에도 사실적인 원근법으로 독특한 특성 공유

금은 세공인이던 기베르티
산 조반니 성당 청동문 제작

성서의 에피소드를 주제로
피렌체시에서 제작 공모해

원근 통해 내용 사실적 표현
산과 나무는 동양화 보는 듯

당선 후 제작까지 21년 걸려
두 번째 문도 22년 걸린 역작

15세기에 이미 르네상스 기법
후대 예술가 ‘천국의 문’ 칭송

14세기 고려불화 관경변상도
극락으로 가는 문 그림 표현

원근법 등 사실적 표현 담겨
지역 떠나 동서 공통성 공유

구약성서를 주제로 한 기베르티의 두 번째 청동문(좌)과 일본 사이후쿠지에 소장되어 있었던 고려후기의 16관경변상도.

지난 글에 소개해 드린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쿠폴라에 정신이 팔리면 자칫 이 성당 앞의 산 조반니, 즉 성 요한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과 이 세례당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거대한 청동문을 놓치고 지나갈 수 있다. 이 문은 브루넬레스키와 쿠폴라의 설계로 놓고 경쟁하기 몇 년 전에 로렌조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가 그와 첫 번째 경합을 벌였던 작품이다.

브루넬레스키와 마찬가지로 금은세공인이었던 기베르티는 1400년 발발한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를 떠나 이탈리아 북부인 로마니아 지방에서 작업하며 나름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던 중 페스트가 끝나고 피렌체시는 안드레아 피사노(Andrea Pisano, 1290~1348)가 1336년에 도시의 유서 깊은 성 조반니 세례당의 입구를 위해 제작한 청동문과 유사한 문을 추가로 조성하기 위해 작가들을 공모했는데, 기베르티의 아버지가 그에게 부리나케 그 공모에 참여할 것을 종용했다. 로마니아 지역의 유력자들은 연봉을 올려주면서 기베르티를 머물게 하려고 했지만, 최고의 예술가들이 경합을 벌이는 피렌체에서 승부를 걸고 싶었던 기베르티는 이들 제안을 사양하고 피렌체로 향했다. 그가 도착했을 무렵은 막 경합이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그 중에는 쟁쟁한 경쟁자인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가 포함되어 있었다.

피렌체시는 현명하게도 공모에 참여한 작가들에게 특정한 주제를 과제로 내고 그 결과물을 평가해 당선자를 정하기로 했다. 샘플을 만드는 제작비용도 피렌체시가 제공했다. 그때 주어진 주제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이었는데, 이는 그 청동문이 단순한 문이 아니라 매우 정교한 성서 이야기가 들어가는 일종의 거대한 부조 조각품이기 때문이었다. 피사노가 제작한 과거의 문도 역시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다룬 이야기 그림들이 여러 판넬로 조립되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은 성서의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도 하느님의 시험, 그리고 완전한 믿음을 상징하는 대표적 주제인데, 피렌체시가 이 주제를 과제로 낸 이유가 무척 재미있다. 바자리가 어떻게 당시 시 관계자들의 의중을 기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르네상스 미술사 열전’에 의하면 이 주제에는 원경, 중경, 근경이 모두 들어가 있고, 옷을 입은 사람과 벗은 사람, 그리고 동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조각가의 실력을 가늠하기에 딱 좋은 주제였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나 구체적으로 이 주제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를 심사자들이 요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종 경합을 벌인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의 출품작이 아직도 피렌체 바르젤로 미술관에 남아있기 때문에 바자리가 언급한 평가 요소를 참고하면서 이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선자는 기베르티였는데, 사실 브루넬레스키의 작품도 훌륭하다.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에서는 이삭의 목을 움켜쥐고 금방이라도 칼로 찌르려는 아브라함의 손을 천사가 붙잡고 있어 긴장감이 더하다. 반면 기베르티는 손을 높이 들어 칼을 내리치려고 하고 있고 이삭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다. 천사는 조금 멀리서 날아오는 듯 배치되었다. 이런 점이 큰 차이는 아니지만, 여하간 브루넬레스키가 비록 기베르티에게 밀리기는 했어도 극적인 구도를 잡는 측면에서는 눈에 띄는 작품이었음에도 여하간 결론은 기베르티였다.

우리는 이 점에서 바자리가 이야기했던 평가요소를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비록 브루넬레스키는 하단의 나귀를 매우 입체적으로 부각시켜 원근의 묘사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 기베르티와 비교해보자. 기베르티는 언뜻 작품 전반에 걸쳐서는 브루넬레스키보다 더 평면적인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브루넬레스키의 작품 속 하인들은 나귀의 좌우에 배치된 반면, 기베르티는 나귀를 중심으로 그 앞뒤에 서있다. 낮은 부조임에도 그 안에 여러 겹의 레이어를 표현해서 원근감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인체 표현도 기베르티 쪽이 훨씬 부드러워 보일 뿐 아니라, 브루넬레스키에 비해 산과 나무라고 하는 배경 표현도 더 풍부하게 넣으면서도(마치 동양화의 산수화 표현과 비슷하다) 그로 인해 인물들이 위축되지 않게 공간구성을 절묘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날아오는 천사를 보면 브루넬레스키는 측면으로 표현된 반면 기베르티의 천사는 마치 공간 안쪽에서 바깥으로 날아오는 듯이 표현되었다. 실제적으로는 얕은 부조이지만, 르네상스적인 공간표현이라고나 할까, 매우 깊이있는 공간감을 은은히 드러낸 것이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을 주제로 출품한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좌)과 기베르티의 작품(우)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의 작품도 훌륭했다지만, 무엇보다 이 두 사람이 적극 기베르티를 추천했다. 예술가들이 이렇게 남을 추켜세워 주고 양보하는 미덕도 참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들은 만약 기베르티가 떨어진다면 자신들의 질투로 그의 당선을 빼앗았다고 사람들이 비난할 것 같다며 끝내 기베르티를 추천한 것이었다. 여하간 기베르티는 이 덕분에 비록 나중에 피렌체 두오모 성당 쿠폴라의 설계에서는 브루넬레스키에게 밀렸지만, 여기서 먼저 승리를 거두고 이처럼 길이남을 걸작의 청동문을 제작할 기회를 먼저 가질 수 있었다.

1403년 정식으로 피렌체시와 계약을 맺고 청동문 제작에 들어간 이후 완성은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1424년이 되어야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쿠폴라 공사에 버금가는 대공사가 아닐 수 없었던 셈이다. 이 문이 엄청난 호응을 얻게 되자 기베르티는 산 조반니 세례당의 세 문 중 나머지 한 문에 달게 될 마지막 청동문의 제작도 의뢰를 받게 되었다. 계약은 1425년에 체결되어 1447년에 완성되었으니 이 역시 22년에 걸친 대작이었다. 이 문의 주제는 구약성서에서 열 장면을 뽑은 것이었는데, 천지창조로부터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혼인장면으로 끝맺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그 중에는 그가 처음 경합을 벌였을 때의 주제인 ‘이삭을 제물로 받치는 아브라함’ 주제도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피사노의 청동문과 같은 액자형 구도가 아니라 훨씬 자유로운 방형의 구도에 표현하는 것이어서 완연한 하나의 회화작품 같은 느낌이 강했다. 거기다 화면 전면을 금박으로 씌웠기 때문에 더더욱 화려한 문이 탄생되었다. 그래서 애초 정문으로 하려던 기베르티의 첫 번째 문을 북문으로 돌리고, 이 문을 피렌체의 두오모를 바라보는 쪽이자 정문인 동문으로 삼았다. 피사노의 원래 문은 남쪽에 달게 되어 지금과 같은 배치가 된 것이다.

경합으로부터도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더 자유로운 구도 덕분이었을까, 얕은 부조임에도 깊은 원근감을 표현하는 그의 기법은 그의 두 번째 문에서 한층 성숙해졌다. 앞서 보았던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면 확연하다. 하단 좌측은 천사들로부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듣는 장면인데, 나란히 선 천사들은 정말로 깊이 있는 무대공간에 서있는 사람들처럼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원근법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또한 하단 가운데의 나귀는 훨씬 자신감 있게 뒤에서 앞으로 본 모습으로 묘사되어 공간감을 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언덕의 능선들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면서 정상부의 핵심장면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시선이 집중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단순히 배경적 요소를 넘어 화면의 중심부를 차지한 곧은 나무들은 17세기 고전주의 풍경화에서나 볼 듯한 나무들을 일찌감치 보는 듯하다. 또한 나뭇잎들의 원근감조차 정교하게 묘사된 것은 마치 기베르티가 작품의 소재보다도 자신의 르네상스적 기법을 자랑하려고 만든 장치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바자리는 이 문을 칭송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싯구를 인용했다.

“성전에 걸린 번쩍이는 청동문, 미켈란젤로마저 정신을 잃었으니, 그가 경탄하여 말하길 ‘아, 진정 천국의 입구에나 걸릴 문이로다’ 하였노라.”

이로서 이 문은 ‘천국의 문’이란 별칭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불교미술에도 이에 대응하는 문이 있으니 말하자면 ‘극락의 문’인 셈이다. 보통 ‘16관경변상도’라고 하는 아미타 극락정토 세계를 묘사한 고려시대의 그림인데,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의 작품이 가장 유명했다.(지금은 도난당하여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이 작품은 비록 문짝은 아니지만, 임종을 맞이한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며 극락으로 가는 문이 열리기를 바랐던 용도로 그려진 것이었다. 그림 속에는 중심축에 극락의 단계별 문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림 주변으로는 사후에 극락에 태어나기 위해 미리 머리에 떠올려야할 16가지 장면을 이야기 그림으로 그려 넣었으니 마치 기베르티 청동문의 이야기 그림 조합과도 유사한 것이다.

특히 이 그림은 동양의 그림 중에서 드물게 강한 원근법이 반영되어 있어 마치 그림 하단에서 그림 상단으로 깊숙이 들어간 공간이 펼쳐진 듯하다. 이 강렬한 원근법을 통해 바라보는 사람은 마치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세부적인 하나하나의 장면마다 서사구조를 압축해서 표현하는 방식이나 나무를 표현하는 기법 등을 비교해보면 부조와 그림이라는 차이를 무색케 하는 공통점을 엿보게 된다.

대략 14세기 전반 고려 후기에 극락이 열리길 염원하며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과 1400년대 전반에 천국의 문이 열리길 염원하며 저 멀리 피렌체에서 그려진 그림이 이처럼 사실성, 원근법의 발견, 그리고 이야기 그림의 조합이라는 독특한 구성을 공유한다니, 천재들은 서로 통하는 점이 분명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점차 활발해진 동서양의 무역으로 이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서로를 엿보고 있었던 것일까.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55호 / 2018년 9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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