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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라진 시왕의 권속들

기자명 이숙희

출입문 자물쇠 절단·전각 뒷벽 뚫고 절도

1998년 화엄사 나한전 침입해
조선후기 인왕·녹사상 등 절취
해남 미황사 응진당 동자상은
1985·2001년 두차례 27구 도난
예천 용문사 명부전 조선후기
목조동자상 9구 1989년 사라져
석불보다 가벼운 목조동자상
명부전 시왕권속 수난 잇달아

화엄사 금강역사상·녹사상, 조선 후기, 높이 110㎝. 사진 ‘도난문화재 도록Ⅰ’(문화재청, 2004)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나한전(羅漢殿)에 있던 조선 후기의 인왕상 1구과 녹사상 2구가 1998년 8월8일 도난당하였다. 문화재 전문절도범들이 나한전의 창문 자물쇠 고리를 절단하고 침입해 훔쳐간 것이다. 인왕상과 녹사상은 원래 명부전(冥府殿)에 지장보살삼존상을 본존으로 하여 시왕[十王]과 함께 배치되는 권속들이다. 언제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나한전에는 도난당하기 이전의 인왕상 1구와 녹사상 2구를 그대로 본 따 만든 상이 1구씩 안치되어 있다.

도난된 인왕상(仁王像)과 녹사상(綠使像)은 흙으로 만든 소조상으로 크기는 대략 1m가 넘는다. 인왕상은 석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나한전의 입구를 지키는 신장상의 역할을 한다. 한쪽 손은 주먹을 불끈 쥔 자세를 하고 있지만 무서운 형상이라기보다 동자상 같은 귀여운 모습이다. 상체가 다리에 비해 큰 편으로 신체비례가 맞지 않고 발가락이 표현되어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꽉 다문 입과 목에 표현된 힘줄 등은 금강역사상의 힘을 강조하는 듯하다. 머리는 빨간 끈으로 묶어 상투 모양으로 틀었으며 눈썹과 수염에는 파란색을 칠하여 눈에 띈다. 몸에는 바지 형태의 군의(裙衣)만 걸쳤는데 어깨 위에 흰색의 천이 걸쳐 있고 그 위로 천의자락이 발아래까지 늘어져 있다.
 

미황사 목조동자상, 조선 후기, 높이 60㎝. 사진 ‘도난문화재 도록Ⅰ’(문화재청, 2004)

녹사상은 머리 위에 양쪽 끝이 뾰족하게 나온 모자를 썼는데 그 위에 연잎을 얹어 놓은 듯 녹색이 칠해져 있다. 붓으로 죽은 자의 죄업에 따른 시왕의 판결을 적거나 그것을 낭독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얼굴은 평범하나 턱수염이 역삼각형처럼 표현된 얌체스런 표정이다. 몸에는 소매가 긴 옷을 입고 그 아래로 바지를 입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홀(笏)을 수평으로 들고 있는데 그중 한 상은 옷자락으로 손을 덮었다. 이와 같이 화엄사 인왕상과 녹사상은 크지 않은 아담한 체구와 어린아이와 같은 귀여움 등에서 조선 후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상들이다.

크기가 작은 목조 동자상 역시 시왕의 시중을 드는 권속 중 하나로 쉽게 도난의 대상이 되었다. 1985년 1월2일 밤부터 3일 새벽 사이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미황사 응진당(應眞堂)에 도둑이 들어 목조동자상 20구를 훔쳐 달아났다. 이 목조동자상은 높이 60㎝로 총 44구가 있는데 그중 20구를 도난당한 것이다. 지정문화재는 아니나 조선 후기 불상과 불교미술사의 귀중한 자료로서 보물급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그 후 2001년 10월15일 미황사 응진당의 목조동자상 7구가 또 도난당했다. 미황사 목조동자상은 원래 시왕 앞에 1구씩 놓여 있었던 것으로 1722년(경종 2)조선 후기에 제작되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 조성된 조선 후기 동자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원래 동자는 도교에서 신선의 시중을 드는 시동(侍童)에서 유래되었으나 불교에 수용되면서 항상 인간 곁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선악행위를 명부(名簿)에 기록하고 하늘에 보고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명부의 동자상은 현실과 죽음의 세계를 넘나드는 신령스러운 존재로서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는 근엄한 불상과는 다른 종교적 이상이 느껴진다.

미황사 동자상 7구는 대략 높이 60㎝이다. 크기가 같고 거의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손모양이나 지물, 옷을 입은 착의법 등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대개 무릎을 조금 굽히고 서있는 자세로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양쪽으로 묶은 쌍계(雙髻)를 하고 있다. 얼굴은 천진난만하고 신체 역시 상체가 하체에 비해 크고 다리가 짧은 편으로 비례가 맞지 않아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모아 합장하거나 지물로 홀, 연봉우리, 깃발 등을 들고 있다. 옷은 소매가 좁거나 넓은 긴 도포를 입고 넓은 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도포와 허리띠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장식적인 효과를 준다. 이러한 모습에서는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에 나오는 선재동자가 연상이 된다.

명부의 동자상은 조선시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사찰 안에 명부전이 세워지면서 지장삼존불상과 함께 시왕, 판관, 녹사, 사자, 동자, 인왕 등의 존상들을 봉안하게 된 데에 그 요인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 이르러 권선징악적인 윤리가 더욱 강조되어 동자상이 불교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널리 알려지면서 조성되었던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현존하는 동자상은 대부분 조선 후기의 명부전에 안치되었던 상들이다. 각 시왕마다 1구씩 배치된 것이 아니라 10구 또는 12구인 경우가 있고 머리 형태나 옷, 손에 들고 있는 지물이 서로 달라서 다양하며 형식도 자유롭다. 조선 후기의 동자상은 복장물을 통해 연대를 알 수 있는 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도난되었을 때 원래 있었던 사찰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용문사 목조동자상, 조선 후기, 높이 70㎝. 사진 ‘도난문화재 도록Ⅰ’(문화재청, 2004)
용문사 명부전, 도난 이후의 모습. 사진 ‘도난문화재 도록Ⅰ’(문화재청, 2004)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 명부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동자상 9구도 1989년 4월5일에 도난당하였다. 문화재 전문절도범들이 명부전의 뒷 벽면 아래를 뚫고 들어가 훔쳐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명부전 안에는 지장삼존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시왕상, 판관, 인왕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시왕 앞에 서 있어야 할 동자상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동자상은 도난당한 후 여태껏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에 있는 안정사 목조동자상 2구도 똑같은 수법으로 도난당하였다. 안정사 목조동자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신청 중이었던 것으로 2009년 7월5일에서 6일 사이에 없어졌다. 안정사 동자상 역시 머리를 길게 묶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두 손에는 호랑이와 연봉우리를 각각 들고 있다. 상은 파손된 부분이 거의 없고 채색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최근 들어 석조불상 보다 크기가 작고 무게도 가벼운 나무로 만들어진 동자상 외에도 명부전에 안치된 시왕의 권속인 사자상(使者像)과 인왕상 등이 인기 있는 도난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경상남도 함양군 용추사 인법당에 안치된 목조동자상 1구(1987년 6월3일)와 경상남도 진주시 청곡사 목조동자상 1구(1988년 2월6일), 전라남도 목포시 달성사 사자상 4구와 동자상 1구(2005년 3월19일) 등이 도난되었다. 인왕상으로는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심곡사 목조인왕상(1997년 6월10일)과 전라남도 순천시 동화사 목조인왕상 2구(1998년 7월21일), 전라북도 고창군 문수사 목조인왕상 2구(2004년 3월18일) 등 조선 후기의 작품들이 도난되었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55호 / 2018년 9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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