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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정상회담

기자명 백승권

강기갑씨는 긴 수염에 한복 두루마기, 고무신 차림으로 유명한 정치인이다. 농민운동 출신인 그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두 번 지냈다. 그는 통합진보당 시절 대표를, 민주노동당 시절 원내대표를 맡을 만큼 진보 정치권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는 분노 때문이었다.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수구 정치 세력을 괴멸시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수구세력에 대한 그의 발언과 행동은 거침없었고 전투가 필요할 때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이 굴욕적이라며 반대 시위를 이끌었다. 그는 2009년 미디어법과 4대강법 등 MB정부 주요 법안 및 개정안 상정에 반대해 국회 사무총장실 원탁에 올라 발을 굴렀다. 여러 차례 단식을 하고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공중부양(?)을 하듯 몸을 내던졌다.

수구세력에겐 추상같았던 그였지만 당내 갈등 앞에선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012년 9월 일체의 당직과 당적을 내려놓고 정계를 은퇴했다. 정치입문 이전의 본업으로 돌아가 고향인 경남 사천에서 매실 농사를 짓고 있다.

그가 다시 농사를 지으면서 발견한 것은 미생물의 세계였다. 모든 생명은 미생물의 도움과 작용 없이는 하루도 살아남을 수 없다. 미생물의 원리를 잘 활용하면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고도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만난 미생물의 세계는 실로 오묘했다. 흙과 우리 몸에 깃들어 사는 미생물의 분포가 비슷했다. 유익균이 25%, 유해균이 15%, 중간균이 60%. 중간균은 유익균과 유해균의 전투를 지켜보다 유리한 쪽에 붙는다. 만일 유해균을 모두 멸균시키면 유익균은 나태해지고 퇴화한다. 외부의 병균과 싸울 수 없을 만큼 나약해진다. 결국 유해균과 전투를 통해서만 유익균은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강기갑씨는 미생물의 세계를 알아가면서 정치를 하는 동안 가졌던 생각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됐다.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수구세력이 진보세력을 위해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이야기를 내게 전해준 사람은 도법 스님이었다. 강씨가 실상사에 와서 이런 얘기를 하고 갔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은 지난 3월1일부터 전국을 다니며 한반도 평화만들기 은빛순례를 하고 있다. 생명평화 탁발순례, 화쟁순례, 세월호 순례에 이어 네 번째 전국을 다니는 순례다. 도법 스님의 화두는 명징하다. “대화합시다. 함께 삽시다.”

불교의 정수는 공과 연기, 중도와 동체대비로 요약된다. 앞이 세계와 우주의 본질을 파악하는 세계관이라면 뒤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실천론이다. “대화합시다. 함께 삽시다”는 불교적 세계관과 실천론을 표상하는 카피요 슬로건이다.

도법 스님은 남북정상회담도 필요하지만 ‘우리 안의 정상회담’도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스님은 종교, 이념, 지역, 계층, 세대, 성별로 갈래갈래 찢어진 우리 사회에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역할을 수십 년째 자임하고 있다. 결국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끼리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 설사 갈등과 다툼이 있더라도 평화롭게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런 일은 어떤 종교보다 불교가 잘할 수 있다고 스님은 굳게 믿고 있다.

1919년 3월1일 우리 민족은 독립을 위해 모든 차이를 넘어 하나가 됐다. 그 100주년인 2019년 3월1일 은빛순례는 1년의 대여정을 회향한다. 은빛순례가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우리 모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백승권 글쓰기연구소 대표 daeyasan66@naver.com

 

[1456호 / 2018년 9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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