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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부처님 성호는 만덕 갖추고 있어

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⑯

안으로 산란하지 않는 게 ‘정’
바깥으로 상 여의는 것이 ‘선’
수행 방해물은 망상아닌 무명
행위는 마음이 일으켜 움직여
청정심 잃지않는것이 곧 수행

정공 스님은 청정평등과 방하착의 깨달음은 진여의 염불을 통해 완성된다고 설한다.
정공 스님은 청정평등과 방하착의 깨달음은 진여의 염불을 통해 완성된다고 설한다.

 

“(법장비구는) 무량겁에 덕행을 쌓고 심었으니, 탐진치와 욕망, 일체 망상을 일으키지 않았고, 색성향미촉법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다만 기뻐하며 과거 제불과 그 닦은바 선근을 그리워하고 생각하면서 청정행을 행하고 허망을 멀리 여의었으며, 진제 문에 의지하여 온갖 공덕의 근본을 심었느니라(于無量劫 積植德行 不起貪嗔癡欲諸想 不著色身香味觸法 但樂憶念過去諸佛 所修善根 行寂靜行 遠離虛妄 依眞諦門 植衆德本).”

‘어무량겁(于無量劫) 적식덕행(積植德行)’. 이 문구는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후 한 마음 한뜻으로 시방 일체중생을 도와 불도를 원만히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정토종 교의로 말하면 이는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정토에 태어나길 발원하고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고 성불한다는 뜻입니다. 이 공덕이야말로 진실한 공덕입니다. 이 두 문구는 총설입니다. 아래 문구에서는 생활 속에서 준수해야할 몇 가지 강령이 제시됩니다.

‘불기탐진치욕제상(不起貪嗔癡欲諸想)’. 이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법이나 불법이나 모두 내려놓을 수 있어야 신심이 청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염불삼매입니다. ‘매(昧)’는 여여부동을 뜻합니다. 물질생활이든 정신생활이든 일상생활에서 탐진치와 욕망, 일체망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면 그것은 기어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업장이고 습기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그것에 대치할 수 있을까요?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아미타불!” 염하십시오. 한마디 아미타불 한마디 부처님 명호로 빨리 바꾸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바꾸십시오. 이렇게 오랜 세월 공부하면 득력합니다. 아미타불 염불로 힘이 생기면 탐진치와 욕망, 일체망상이 점차 감소하고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염불득력입니다.

‘불착색신향미촉법(不著色身香味觸法)’. 이는 우리에게 결코 바깥 경계에 유혹당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안으로 산란하지 않고, 밖으로 상을 여읜다.’ 이러한 본사(本事)가 있으면 이것이 바로 진실의 지혜로 우리가 수행하는 밑천입니다. 이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수행은 말뿐이고, 진짜가 아닙니다. 진정한 불법의 이익을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안으로 산란하지 않음이 바로 정(定)이고, 바깥으로 상을 여읨이 바로 선(禅)입니다. 이 두 마디 말은 선종의 총강령입니다. 선종의 으뜸 종지는 바로 “상에 집착하지 말고 여여부동하라(不取于相 如如不動)”는 ‘금강경’의 말씀입니다. 탐진치와 욕망, 일체망상을 일으키지 않음이 바로 여여부동이고, 색성향미촉법에 집착하지 않음이 바로 상에 집착하지 않음입니다. 이는 ‘금강경’의 말씀과 꼭 같습니다.

‘단요억념과거제불(但樂憶念過去諸佛) 소수선근(所修善根)’. 만약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무명에 떨어지고 맙니다. 범부를 성가시게 하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무명입니다. 망상과 무명은 모두 업장이고, 모두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이를 위해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는 염불이 매우 좋습니다.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은 망상도 아니고 무명에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한마디 명호는 극락세계 교주의 명호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 진여본성의 공덕명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명호를 염하면 깨달을 수 있고, 마음을 밝혀 자신의 자성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미타부처님 본원 위신력의 가지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만 기뻐하라(但樂)”고 하십니다. 왜 아미타불을 생각하라고 하시지 않고, “과거 제불을 생각하라”고 하셨을까요? 아난존자는 부처님께 법을 청하면서 “삼세제불 부처님과 부처님께서는 서로 생각하신다” 하였습니다. 제불께서는 모두 서로를 생각하고, 모두 아미타불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불(諸佛), 이 두 글자는 아미타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닦은 선근은 바로 제불 여래가 닦은 선근입니다. ‘무량수경’은 바로 일체제불여래가 수행하는 총강령입니다. 참정성·청정심·공경심으로 이를 독송하고 연구하기만 하면 매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바로 깨달은 곳(悟處)입니다. 날마다 깨달은 곳이 있으면 이 사람은 기쁨이 있고 법희가 생깁니다. 날마다 작은 깨달음이 열리고, 작은 깨달음이 쌓여서 큰 깨달음을 이루며, 나아가 큰 깨달음이 쌓여서 확철대오를 이룹니다.

‘행적정행(行寂靜行) 원리허망(遠離虛妄)’. 수행 행문의 총강령은 각(覺)·정(正)·정(淨)입니다. 학불(學佛)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먼저 삼귀계(三歸戒), 삼귀의를 받아야 합니다. 삼귀의는 불교수학의 총강령이자 방향 원칙입니다. 지금부터 이 강령에 따라 수학하면 당신은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삼귀”란 여러분들도 아시지만 귀의불(歸依佛)·귀의법(歸依法)·귀의승(歸依僧)입니다. 혜능 대사께서는 삼귀는 귀의각(歸依覺)·귀의정(歸依正)·귀의정(歸依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각(覺)·정(正)·정(淨)은 바로 우리들의 자성삼보(自性三寶)이자 진정한 귀의처입니다. 깨달아서 미혹하지 않고, 바로 알아서 삿되지 않으며, 청정하여 물들지 않습니다. 정토종은 ‘정(淨)’을 따라 입문하고, 선종은 ‘각(覺)’을 따라 입문하며, 교종은 ‘정지정견(正知正見)’을 따라 입문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며 일체 행위를 합니다. 이 가운데 청정심을 유지하기만 하면 불보살과 상응하고 여법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근심으로 어지러우면 청정심이 무너지고 마침내 멀리 여위게 됩니다. 결코 청정심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진실한 수행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가짜 불법이 넘쳐납니다. ‘능엄경’을 보시면 이 말법시대에는 삿된 스승과 설법이 항하의 모래알 수처럼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허망한 일임을 또렷이 인정하고 멀리 여의여야 합니다.

‘의진제문(依眞諦門) 식중덕본(植衆德本)’. 진제(眞諦)는 실재합니다. 진실은 거짓되지 않고, 허망하지 않습니다. 정토종에서는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길 구합니다. 이는 진실 중에서 진실이고, 가장 소중합니다.

이 문구는 우리에게 아미타부처님처럼 일체 선을 닦으라고 가르쳐줍니다. 아미타부처님 성호는 만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를 염하면서 아미타부처님께서 발심하여 성불의 인을 닦고 과를 증득하여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계신다고 알아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또렷하고 명백히 이해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아미타부처님을 본받고 아미타부처님을 학습하면 이 사람이 진정한 염불인입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56호 / 2018년 9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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