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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시다시 ①

기자명 김규보

완벽한데도 남편이 싫어한 까닭은

온나라에 퍼질만큼 예쁜 외모
차별없이 대하는 인성도 훌륭
그럼에도 남편 이유없이 별거

이시다시의 부모는 근방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인색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화를 내지 않았으며 사람을 위아래로 구분하지 않고 진솔하게 대했다. 빈궁한 이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 잦았는데, 도움을 요청받으면 언제든 음식과 재물을 광주리에 듬뿍 퍼담아 건네곤 했다. 계급 혹은 빈부 간의 경계가 송곳처럼 날카롭던 시절,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져 나라 전체로 명성이 퍼져나갔다.

이시다시는 부모의 성품을 흡수하며 성장했다. 하인을 아랫사람으로 인식하는 대신에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바라볼 줄 알았으며 재물은 움켜쥐기만 하는 것보다는 나누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배웠다. 차분하고 속 깊은 성정에 행동은 단정하고 예의가 바른 데다 외모까지 어여뻐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았다. 성인이 되고 나선 아들 둔 이라면 모두 탐낼 만큼 완숙한 아름다움의 경지에 이르렀다. 부모는 오랜 고민 끝에, 딸과 성정이 비슷하여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친구의 아들과 결혼시키기로 결심했다. 결혼식 날, 도시는 들썩였다. 모든 이가 빠짐없이 결혼식에 참석해 둘의 앞날에 진심어린 축복을 건넸다. 이시다시와 남편에겐 행복할 일만 가득할 듯했다.

남편의 집에 들어간 이시다시는 자라면서 보고 배운 그대로 행동했다. 하인을 부리기만 하지 않고 손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식구들에게 대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하였고 하인을 마주치면 따뜻하게 인사하며 대화도 나누었다. 남편의 부모를 비롯한 식구들은 그런 이시다시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데 정작 이상한 건 남편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남편은 이시다시를 피하기 시작했다. 얼굴만 봐도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릴 정도였으니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었다. 이유라도 알면 좋을 텐데, 몇 번을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시다시라도 남편의 그러한 태도는 견디기 힘들었고, 방에 틀어박혀 우는 일이 많아졌다. 보다 못한 남편의 가족들이 이시다시보다 먼저 나섰다. 그들은 남편을 붙잡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남편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얼굴도 보기 싫어요. 언젠간 말하려 했는데 마침 잘됐네요. 더 이상 저 여자와 살지 못하겠어요. 그런데도 같이 살라고 하면 집을 나가버리겠어요. 자!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들의 단호한 말에 부모는 아연실색했다. 저토록 어여쁜 며느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들이 집을 나가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단 말인가. 아들의 말마따나 이유가 없다면 더욱 황당한 일이었다. 수차례 아들을 설득해 보았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던 부모는 결국 아들을 잃지 않기 위해 며느리를 쫓아내야 했다. “아들이 저리 완강하게 버티니 방법이 없구나. 어떤 연유인지 아들 본인조차 모른다고 하니까 답답하기가 끝이 없구나. 다만 우리는 아들이 집밖으로 나가는 건 막고 싶은 마음이란다. 어쩌겠니, 네가 집을 나가줘야겠다.”

시부모가 눈물을 쏟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시다시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억울함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남편의 집에서 나오는 날, 이시다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느꼈다. 이유도 없이 쫓겨났다는 억울함은 생전 처음으로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며 이시다시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남편의 집에서 그랬듯, 방에 틀어박혀 서럽게 울기만 하는 딸이 지독히도 안타까웠던 부모는 서둘러 새로운 사윗감을 물색했다. 이번엔 시원시원하고 쾌활한 성격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버림받았다는 모멸감에 하루하루를 괴롭게 보내던 이시다시는 부모의 뜻을 받아들여 그 청년과 또 한 번의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새로운 남편 역시 며칠도 안 되어 전 남편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피하는 게 아닌가.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56호 / 2018년 9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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