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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정장공의 효도

기자명 김정빈

“어버이 노릇 못한다 해도 자식은 자식도리 다해야 한다”

장공, 군위 계승후 어머니 청 받아
동생에게 경성지역 다스리게 해
힘생긴 동생, 어머니와 모반 꾀하다
죽임당하고 어머니는 영지 유배
효행 남달랐던 영고숙, 장공에게
계책 내어 어머니와 화해하게 해

그림=근호
그림=근호

중국의 종주국 주(周)나라가 수도를 동쪽 낙양으로 옮긴지 얼마 안되었을때 제후국 정(鄭)나라 세자 굴돌이 군위에 올랐는데, 이가 무공이다. 그는 도읍을 회라는 지역으로 옮기고 국호를 신정으로 바꾸었다. 그의 힘이 강대해지자 주나라에서는 정무공을 조정의 공경으로 삼았다. 무공은 자신의 나라에서는 제후이고, 중앙정부에서는 대신이 된 것이다.

무공에게는 신후라는 부인과의 사이에 큰아들 오생, 둘째아들 단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신후는 이상하게도 둘째아들만을 편애하고 첫째아들은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둘째아들 단을 세자로 삼고 싶은 마음에서 여러 차례 무공에게 진언했으나 듣지 않자, 다시 애원하여 무공으로 하여금 단에게 읍성 하나를 주어 독립하도록 하였다.

얼마 뒤에 무공이 죽고 첫째아들 오생이 군위를 계승했는데 그가 장공이다. 장공의 어머니 신후는 큰아들을 졸라 단에게 경성이라는 지역을 떼어주게 하였다. 주위의 신하들이 그 처사에 반대했지만 무공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할 수 없다며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었다.

경성을 가진 뒤 단은 이름을 경성태숙으로 바꾸었다. 태숙은 힘을 갖자마자 모반을 꿈꾸었다. 병사를 기르며 형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기 시작한 것이다. 무공을 보좌하는 신하들은 서둘러 태숙을 제거하라고 권했지만 장공은 차마 동생에게 그럴 수 없다며 듣지않았다.

한 신하가 꾀를 내었다. 천자를 조회하려 간다는 이유를 들어 임금이 도성을 비우면 태숙이 그 기회를 노릴 터이니 그를 되받아 치자는 것이었다. 그 계책에 따라 장공은 천자를 조회하려 낙양에 가겠다고 공표했다. 그러자 신후는 곧장 태숙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장공이 도성을 비우게 되는 5월 초순에 수도를 공격하면 자신이 내응하겠노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 예측한 장공은 그 편지를 전하는 병사를 도중에 사로잡았다. 장공은 진짜 편지는 자신이 갖고 똑같은 내용으로 위조된 편지를 태숙에게 보냈다. 태숙은 그 편지를 믿고 약속한 때 장공이 자리를 비운 수도를 공격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장공의 뜻대로 진행되었다. 태숙이 자리를 비운 경성을 장공의 부하들이 차지해버렸고, 성내의 백성들 또한 무도한 태숙을 버리고 일제히 장공 편에 가담했다. 그 소식은 태숙에게 전해졌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가 자신의 관할 권역에 있는 작은 성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무공의 군대가 물밀 듯이 밀려와 성을 함락해버렸다. 태숙은 “어머니가 나를 그르쳤다. 무슨 면목으로 형을 보겠는가”라며 자결했다.

장공은 동생의 시체를 어루만지며 아우의 어리석은 행동을 안타까워하며 통곡했다. 수색해보니 그의 몸에는 어머니의 편지가 아직도 있었다. 장공은 모친이 보낸 편지와 그에 응하겠노라는 내용을 담은 태숙의 답장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러고는 어머니를 영지라는 곳에 안치시키며 “황천에 가지 않고서는 다시는 저와 상면할 수 없습니다”라는 뜻을 전했다.

장공의 모친 신후가 안치된 지역에 영고숙이라는, 남다른 효심을 지닌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장공이 모후를 자신이 사는 지역에 안치하는 것을 보고 그는 “비록 어버이가 어버이 노릇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라며 크게 탄식했다. 그는 계책을 내어 장공에게 올빼미 두 마리를 진상한 다음 말했다.

“이 새의 이름은 올빼미인데, 낮에는 태산도 보지 못하지만 밤에는 미물까지도 세세하게 볼 줄 압니다. 요점은 작은 것에는 밝고 큰 것에는 어둡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제 어미새가 먹여서 기르지만, 자라서는 그 은혜를 까마득히 잊고 어미새를 쪼아먹습니다.”

장공은 묵묵히 말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요리사가 양고기를 쪄서 진상했다. 장공이 한 토막을 떼어 고숙에게 주자 고숙은 매우 좋아하며 소중히 꾸려서 소매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장공이 괴상히 여겨 까닭을 묻자 고숙이 대답했다.

“이런 귀한 고기를 저의 어머니께서는 잡숴 보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국을 끓여 드릴까 하여 간수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장공이 탄식했다.

“그대는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는구나!”

고숙이 말했다.

“군께서는 백성들의 어버이시므로 한번 입 밖에 낸 말을 지키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땅을 깊이 판 다음 샘을 만나면 그곳에서 옆으로 굴을 팝니다. 그러고는 그 굴에 모친을 머물게 하십시오. 황천이란 지하의 샘이니 그곳이 곧 황천입니다. 그 황천에서 모친을 만나신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얼마 뒤, 장공이 그의 계책에 따라 지하 굴방에서 모후를 만났다. 그는 땅에 엎드려 어머니에게 절을 올린 다음 “국모께서는 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사죄했고, 모후는 “모든 것은 이 늙은이의 잘못이로다”라며 자신을 나무랐다.

모자는 서로 얼싸안고 한동안 울었다. 곧 서로 부축하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연을 타고 궁전을 향하니 모든 백성들이 장공의 효심을 칭찬했다. 장공은 고숙을 대부에 임명하여 그의 공로를 상 주었다.

과거 유교인들은 불교 승려들이 부모를 버리고 출가한다는 점을 들어 불교를 효도를 모르는 비인륜적인 철학이라며 비판하곤 했다. 그러자 불교는 ‘부모은중경’을 위경으로 찬술하여 대응하였는데,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부모은중경’의 내용은 유교가 자랑하는 ‘효경’보다 오히려 깊은 바가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다 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지만 실제는 반드시 그렇게만 되지 않는다. 가장 곤란한 것은 자식이 자식 노릇을 하지 않을 때보다 부모가 부모 노릇을 하지 않는, 장공의 어머니 신후 같은 경우일 것이다. 이럴 때 자식은 어떻게 해야만 할까? 그 가장 멋진 대처법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일을 고숙은 제안하였고, 장공은 실행하였다.

끝까지 효심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과정에서 슬기로운 접점을 찾는 것. 오늘날 누가 새로이 ‘부모은중경’을 보완한다면 이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은 변한다. 그래서 경전 또한, ‘대체’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소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바꾸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감히’ 생각한다.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종교, 그런 종교는 쇠락하게 마련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56호 / 2018년 9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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