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욕망 줄이고 계율과 고난을 스승으로 삼으라

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⑰

청빈하면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살기 편한 환경에선 수행 불가
수행자 타락은 편함이 그 원인
선을 구하고 자신 내려놓으며
중생에 진실한 이익 베풀어야

정공 스님과 스승 이병남 거사.
정공 스님과 스승 이병남 거사.

“온갖 고난을 따지지 말고,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안다.(不計衆苦 少欲知足)”

우리는 고난대중을 위해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 이익이 없는 고행은 닦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익이 없는 고행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율’을 스승으로 삼고, ‘고난’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생활이 언제나 청빈하면 이 세상에 집착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기가 편안하고 즐거우면 수행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수행자는 타락하고 물러나게 됩니다.

당나라 시절 방거사께서는 선종에서 매우 유명한 대덕이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단히 부유하였는데, 어느 날 그는 세간살림을 전부 팔아서 돈으로 바꾸어 큰 배 한척을 샀습니다. 집에 있던 금은보화를 배에 모두 싣고 출발했습니다. 강 한가운데 이르자 배에 구멍을 내어 배를 가라앉혔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길, “이 많은 금은보화가 필요 없다면 그것을 좋은 일에 써서 다른 사람을 구하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일 없는 것만 못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매일 짚신을 삼아 한 켤레에 두 냥을 받고 팔았습니다. 몇 켤레를 팔면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청빈한 생활을 보내면서 그 자신은 물론이고 부인과 딸까지도 모두 도를 성취하였습니다. 그는 고난을 스승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고난을 따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젊은 시절 이병남 스승님께 불법을 배우면서 저는 매우 청빈한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공부하는 동안 하루 한 끼만 먹었는데, 스승님께서 적극 찬성하셨습니다. 저녁에 눕지 않고 좌선을 하고 싶었지만, 스승님께서는 어찌 무위도식하며 편히 잘 수 있겠는가? 하시며 반대하셨습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저녁에 눕지 않고 공부하지만, 실제로는 선정에 든 것이 아니라 앉아서 졸거나 자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수행자들이 오후불식을 한다고 하면서 큰 솥 밥으로 한끼를 먹습니다. 이들에게 위장병이 있는지 물어보면 모두 있다고 대답합니다. 이렇듯 세끼를 한 끼에 양껏 먹는 것은 이익이 없는 고행이 되고 맙니다.

불자는 욕망을 줄여야 합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작은 집이라도 있어 비바람을 막으면 그것으로 한평생 즐겁습니다. 나아가 착실히 염불하고, 선을 닦고 복을 쌓으면 더 없이 행복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큰 집에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엾다는 생각에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큰집을 관리하기 위해서 날마다 청소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집이 사람에 머물면서 사람은 집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자신이 머무는 곳이 작을수록 번거롭지 않고 좋습니다. 우리는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선법만을 구하고, 모든 중생에게 진실한 이익을 베풀며, 뜻과 원을 이룸에 지치지 않고 인내력으로 성취한다.(專求白法 惠利群生 志願無倦 忍力成就)”

‘백법(白法)’은 선법입니다. 보살은 한마음 한뜻으로 선을 행하여 중생을 이롭게 합니다. ‘혜(惠)’는 보시로 중생에게 진실한 이익을 베푸는 것입니다. 또한 보살은 즐겨 공덕을 쌓고 선을 행하며 지치지 않습니다. 할수록 즐겁고, 할수록 기쁘며 법희로 충만합니다. “인내력으로 성취함”은 바로 공부를 성취함이고, 삼매를 성취함입니다. 인내력으로 성취하려면 반드시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선을 구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인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유정에게 늘 자애와 인내하는 마음을 품고서 온화한 얼굴과 따뜻한 말씨로 권유하고 채찍질하여야 한다.(于諸有情 常懷慈忍 和顔愛語 勸谕策進)”

‘자(慈)’는 자애로 일체 유정중생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보살피려면 그들과 상대할 때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忍)’입니다. 출가자에게 공양할 때 딱 알맞게 공양하고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면 탐심이 늘어납니다. 알맞게 하는 것이 바로 ‘인’입니다. 자애에는 반드시 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이고, 진실한 사랑으로 보살핌입니다.

평상시 대중을 접촉할 때 온화한 태도를 지니고, 온화한 얼굴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여야합니다. ‘따뜻한 말씨(愛語)’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듣기 좋은 말은 다른 사람에게 아부하여 환심을 사는 것으로 변질됩니다. 따뜻한 말씨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입니다. 그 참 뜻은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며, 선을 권하고 허물을 꾸짖어 고치게 하는데 있습니다.
보살은 권유하고 격려하며, 일깨우고 채찍질하여 중생이 진보하도록 돕습니다. 경문의 말씀은 모두 원칙이고, 진지하게 학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학불(學佛)이라 합니다. 우리는 학불할수록 부처님과 같아집니다. 부처님과 똑 같아질 수는 없다 하더라도 조금씩 닮아갑니다.

“삼보를 공경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모시며, 거짓으로 속이고 굽혀서 아첨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恭敬三寶 奉事師長 無有虛僞 谄曲之心)”

이 문구는 우리들이 배움을 구할 때 성취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는 관건입니다. 이는 절집에서 늘 말하는 ‘사자도합(師資道合)’입니다. 학생은 스승에 대해 진정한 공경심이 있어야 이익을 얻습니다. 학생이 스승에 대해 공경심이 없고 의심하면 스승이 아무리 성심성의껏 가르쳐도 스승과 멀어지고, 공부에 쏟은 귀중한 시간과 정력이 허사가 되고 맙니다. 마음속으로 진정으로 존경하는 스승이 있으면 반드시 성취가 있습니다.

성취는 스승의 덕행과 수양이 얼마나 높은가 보다는 학생이 스승을 얼마나 공경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스승의 실력이 시원찮아도 당신이 그를 공경하고 그의 가르침이 정법이며 진실로 실천할 수 있으면 장차 스승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색은 남색에서 나오지만(青出于藍), 남색보다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스승에게 아무리 진실한 학문이 있고 도덕이 있어도 그를 의심하고 믿지 않으면 그에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싶으면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을 찾으면 됩니다. 학불에 있어 성패를 가르는 관건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삼보에 대해, 스승에 대해 참된 정성과 청정심, 공경심으로 구하면 반드시 성취가 있습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57호 / 2018년 9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