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퓨마 호롱이를 애도하며
114. 퓨마 호롱이를 애도하며
  • 최원형
  • 승인 2018.09.27 10:59
  • 호수 145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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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다

사육장 탈출한 멸종위기종 퓨마
인명피해 우려 속 결국 사살당해
동물원 폐지 논란 사건당시만 부각
멸종 걱정한다면 서식지 보존해야

그날 나는 한 환경단체 ‘후원의 밤’에 참석 중이었다. 로드킬 당한 동물에 관해 슬퍼했고 DMZ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의 평화를 기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물원 사육장을 탈출한 퓨마가 엽사가 쏜 총에 사살돼 끌려 내려왔다는 뉴스를 접했다. 탈출한 지 4시간 반 만이었고 8살 암컷 퓨마, 이름은 호롱이라고 했다. 여덟 살이 되도록 퓨마가 온전히 누린 자유가 어쩌면 그 최후의 4시간 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조차 자유를 만끽했다기보다는 쫓기는 신세로 공포감에 허둥댔을 걸 생각하니 내 안에 슬픔이 차올랐다. 사육사가 우리의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하는 바람에 퓨마가 탈출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퓨마는 동물원 내 야산에 있다가 발견되어 마취 총에 맞았으나 그대로 달아났다가 사살되었다. 사살을 결정한 이유는 퓨마가 울타리를 넘어 탈출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울타리를 넘는다는 것은 곧 인명피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에 아마도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동물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기억은 오래 더듬지 않아도 몇 된다.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사육사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2015년 2월에는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한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의 공격을 받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물원에서 사육사가 물려 숨지는 사고는 잊힐 만하면 반복된다.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 선 동물의 최후는 하나같이 비참한 죽음으로 끝났다. 자발적으로 동물원에 걸어 들어간 동물은 단 한 마리도 없는데 대체 왜 죽음으로 끝이 나야했을까? 매번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도무지 이 의문에 답을 찾을 길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있거나 아예 선택지에서 빼버렸기 때문은 아닐지.

“우리 안은 늘 답답했어요. 언제나처럼 그 안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쓱 움직이는 거예요. 사육사가 드나들던 곳이었어요. 호기심이 생겨 밀고 나가봤더니 넓고 좋았어요. 오래 전 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내 형제자매들이 살던 곳이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돌아다녔지요.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가 내 몸을 찔렀어요. 정신이 좀 희미해지긴 했지만 너무 놀랐기에 그 길로 계속 달렸지요. 계속 달렸어요, 계속. 그리고는 갑자기 날카로운 느낌과 함께 아득해졌어요.”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호롱이를 만났다면 아마도 이 말을 남기지 않았을지.

일이 벌어질 때마다 동물원 폐지 논란이 양은냄비처럼 들끓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잠해진다, 다음 동물원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이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도 똑같은 논란이 있었다. 동물원이 존속돼야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근거는 생태지식 습득뿐만 아니라 동물의 입장에서도 멸종위기종을 보존하는 동물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실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고 관리해서 많은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동물원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식환경을 최대한 비슷하게 조성하는 등 ‘동물행동풍부화’에도 신경 쓰고 있다. 그럼에도 왜 동물원의 존립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걸까?

이번에 사살된 퓨마 호롱이도 멸종위기종이었다. 그런데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 말은 동물원이라고 해서 멸종위기종이 완벽하게 보호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동물들이 자연서식지에서 살 때와 달리 동물원이라는 인공의 공간에서 적응하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동물원 관리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이번처럼 문을 잊고 잠그지 않는 등 실수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멸종이 정말 걱정된다면 데려다 우리에 가두고 보호를 할 게 아니라 그들이 살 수 있는 서식지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호롱이가 자연 속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어느 쪽이 오래 살 수 있는지 사실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는 동안이라도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놀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 편이 오히려 동물들에게 더 나은 것 아닐까?

근대 동물원의 시작은 18세기 중반에 일반에 공개된 오스트리아 쇤부른 동물원으로 강력한 왕권을 드러내기 위한 공간이었다. 19세기 초반, 동물원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일기시작하면서 영국 리젠트파크에 세워진 런던동물원은 동물의 입장을 생각한 첫 번째 동물원이었다. 그럼에도 동물원은 동물원이다. 동물은 자연에 있을 때가 가장 자연스럽다. 사고 등으로 도저히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특별한 동물을 제외하고 동물원에서 살아야하는 동물은 이제 없어야 한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57호 / 2018년 9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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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ㄹ 2018-09-27 22:23:41
구구절절 옳습니다. 그 생명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야죠. 동물원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프거나 보살핌이 필요한 개체를 분별하여 그 생명을 준중하는 자세로 관리하고 불필요한 동물 전시는 이제 그만둬야 합니다.
제게 동물원은 아주 불편한 공간이랍니다. 그 공간에 갇혀 우울하고, 이상행동을 보이는 생명을 보는게 즐거운가요?

강우석 2018-09-27 15:33:42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도 사파리공원도 설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