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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이시다시 ②

기자명 김규보

세번째 남편 역시 오직 싫을 뿐

두 번째 남편도 자신 피하고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욕설
세 번째 남편은 집 나가기도

두 번째 남편은 자신을 피할 뿐 아니라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대놓고 욕을 쏟아냈다. “형편없는 여편네 같으니라고. 짜증나는 당신의 그 얼굴을 내 앞에서 당장 치워! 꼴도 보기 싫으니까!” 첫 번째 남편도 자신을 피해 다녔지만, 그나마 험한 말을 뱉진 않았다. 이시다시는 지금의 남편이 욕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답답한 것은 이번에도 남편이 자신을 미워하는 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두려움에 떨다가도 용기를 내어 이유를 물어보면 남편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평소처럼 욕지거리를 내뱉곤 했다. “이런 망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당신이 너무 싫다는 거야. 그런 쓸데없는 질문일랑 하지 말고 썩 꺼지라고.”

이시다시는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욕설에 지쳐서 또 한 번 결심을 해야 했다.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다는 멍에를 지게 될 일이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당신의 평화를 위해 집을 나가 주겠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도대체 왜 날 그토록 미워하는지 알 길은 없으나, 뭐 이젠 알아도 소용이 없겠죠. 잘 지내요.” 부모 집으로 돌아오며 첫 번째 남편의 집을 나설 때처럼 억울함을 참기 힘들었고 치욕스러웠다. 두 번째 결혼마저 실패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시다시를 며느릿감으로 탐냈던 고위 관료와 거부들은 이제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가끔 외출이라도 하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시다시를 흘금거리며 수군거리거나 손가락질했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점점 줄었고 집에서도 며칠씩 방 밖을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누구나 반하게 만들던 빛나는 외모와 단아한 성품이 사라져 갔다.

부모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딸이 두 번이나 소박맞았다는 사실도, 딸의 빛나던 아름다움이 바래고 있다는 사실도, 도시의 모든 사람이 자신들을 두고 소곤댄다는 사실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첫 번째 결혼식 땐 엄청난 지참금을 받았고, 두 번째는 그의 절반을 받았는데 지금은 혼담을 나누려는 이도 없다. 부모의 좌절감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 수행자가 탁발을 하러 왔다가 집에 눌러앉는 일이 있었다. 도움을 요청받으면 거절하지 않는 성품 덕분에 이시다시의 집엔 신세를 지며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수행자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머리카락을 밀고 승복을 입었지만 큰 뜻을 품고 있다기보다 하루하루 의미 없이 시간만 때우고 있는 한량에 가까웠다. 부모는 곰곰이 생각해본 뒤 수행자에게 제안을 했다.

“내 딸이 결혼을 두 번 실패하고 점점 폐인이 되고 있소. 보아하니 스님은 수행보다는 노는 것에 더 관심 있는 모양인데, 큰 집을 사 줄 테니 딸아이와 결혼을 해주지 않겠소.”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스님으로 사는 것이 지겨워 골치가 아팠던 수행자는 옳다구나 쾌재를 부르며 대번에 승낙했다. 이시다시는 ‘설마 저 놈팡이까지 날 미워할까’라고 여겼고, 부모의 뜻을 말없이 따랐다. 이번엔 결혼식을 올릴 것도 없이 바로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럭저럭 살만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일할 생각 없이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놀러 다녔지만 이시다시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앞선 두 명의 전 남편과 달리 피해 다니지도, 얼굴을 찡그리지도, 욕을 하지도 않았다. 행복하다기보다 불행하진 않은 나날이었다. 보름 정도 지난 날, 남편이 잠시 부모를 보러 가겠다고 했을 때 별 생각 없이 알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부모에게서 전갈이 왔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네 남편이 우리에게 찾아와선, 더 이상 너와 살지 못하겠다고 말하더구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도 영문을 모르겠대. 네가 너무 싫을 뿐이라고 말하고는 오늘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는구나. 딸아,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구나. 딸아….’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57호 / 2018년 9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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