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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무방비 상태서 유린되는 능묘조각

기자명 이숙희

어둔 밤 능묘 지키는 석상이 사라지고 있다

조선시대 왕·왕비 묘인 왕릉과
일반사대부 묘 능묘조각 수난

2004년 경주국립박물관 전시
조선말 석인상 감쪽같이 도난

2005년 파주 파평 윤씨 문인석
2006년 문산읍의 용재선현 묘
앞에 있던 무인석 2구 사라져

2006년 용인시 오윤겸의 묘 앞
동자상 2구는 도난 후 환수돼

석인상, 조선말기, 높이 73㎝.

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2004년 12월27일 국립경주박물관 경내에서 전시 중이던 조선 말기의 석인상이 감쪽같이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사진 1) 이 석인상은 되찾지 못했으며 범인에 대한 아무런 정보나 단서조차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 당시 경주박물관만 해도 야외전시물이 별다른 보안장치 없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국립박물관이 이런 실정인데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능묘 앞 조각이나 석물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최근 능묘 앞에 있는 문인석, 무인석, 석양, 석호, 동자석 등과 같은 석물들이 대량으로 도난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덤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석상들을 훔쳐서 개인의 정원이나 미술관에 세워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능묘 앞의 석물들이 대부분 한적하고 외진 곳에 위치하는 데다가 보안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어두운 밤을 틈타 굴삭기가 장착된 2.5톤 트럭을 이용하면 손쉽게 가져갈 수 있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당하리 산 5-3번지에 있는 파평 윤씨 정정공파 묘에 세워져 있는 문인석 2구가 정확하게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2005년 11월15일 이전에 도난되었다.(사진 2) 파주시 교하읍 당하리 및 와동리 일대에 있는 파평 윤씨 정정공파 교하종중의 선산에는 정정공 윤번을 중시조로 하는 정정공파의 묘역 96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 묘역은 한 종중에 의해 조선시대의 묘역이 연대별로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묘역의 역사적 계기설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2002년 9월16일 경기도 기념물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파평 윤씨 정정공파 묘 문인석, 조선, 높이 170㎝.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비의 묘인 왕릉을 비롯하여 대군, 공주, 옹주 등의 원(園)과 일반 사대부의 묘에 이르기까지 능묘조각을 설치하였다. 신라시대의 왕릉은 절대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크게 만들었으나 조선시대의 왕릉은 유교적 위민사상에 따라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의 경우, 문인석 및 무인석 각 1쌍 또는 문인석 2쌍이 배치되었으며 석수는 왕릉 호석의 십이지상이나 석호(石虎), 석양(石羊), 석마(石馬)를 2쌍씩 배치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왕릉에만 석호를 남쪽에, 석양은 북쪽에 배치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왕릉뿐 아니라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의 사친의 능묘인 원이나 사대부의 묘에도 석양이 배치되었다. 석수는 중국 고대 능묘제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죽은 자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양은 악귀를 없애주며 호랑이는 능묘를 수호하는 의미가 있고 말은 죽은 자를 저승세계로 운반해 주는 운송자의 성격을 띠고 있다. 황제릉에는 왕릉과는 달리 문인석, 무인석과 함께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과 같은 각종 동물상을 순서대로 배치하였다.

일반사대부 묘는 기본적으로 조선 왕릉제도를 따라 조성되었으나 왕릉과는 달리 엄격하게 규정이 정해져 있지 않다. 오래전부터 일반사대부의 묘에는 석마를 세우는 것을 금지해 왔으나 석인상에 대해서는 규정이 엄격하지 않아 왕릉과 마찬가지로 문인석과 무인석을 모두 배치하였다. 무인석의 경우는 원래 왕릉에만 세울 수 있는 것이었는데 조선 초기에는 개국공신이나 신흥사대부의 문중 묘에도 배치되었으며 16세기 이후부터 능묘 앞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일반사대부의 묘들은 왕릉, 원과 함께 경기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사대부 묘의 능묘조각은 왕릉 조각과 밀접한 영향관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파평 윤씨 묘의 문인석은 머리에 복두(幞頭)를 쓰고 공복(公服)을 입고 있는 문신의 모습으로 손에는 홀을 들고 있다. 복두공복은 문관이나 무관이 주로 조회나 공무에 참여할 때 입었던 옷으로 고려시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조선 전기에 많이 볼 수 있다. 조선 왕릉에는 복두공복을 입은 문인석이 많이 남아 있다. 파평 윤씨 묘의 문인석은 전반적으로 사각기둥같이 밋밋한 형태로 목과 어깨가 붙어 있어 비례가 맞지 않고 옷주름도 선각으로 표현되어 있어 단순한 조형감을 보여준다. 다만, 둥근 얼굴에 보이는 은은한 미소와 둥글게 처리된 소맷자락 등에서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파주 용재선현 묘 무인석, 조선, 높이 160㎝.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 산 60-1번지 용재선현 묘 앞에 서 있는 무인석 2구는 2006년 3월15일에 도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사진 3). 도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2006년 3월 이전으로만 추정될 뿐이다. 이 무인석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0호로 지정되어 있다. 파주 용재선현 묘의 무인석은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되어 있었던 탓에 마멸이 심하여 세부표현이 뚜렷하지 않다. 커다란 돌기둥에 신체의 곡선이 전혀 없는 밋밋한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유난히 목이 짧아 얼굴과 어깨가 맞붙어 있다. 머리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완전 무장한 상태이며 오른손은 배 앞에, 왼손은 허리에 두고 칼을 세워서 잡고 있다. 전반적으로 투박하면서도 부드러운 조형감을 보여준다. 현재 묘역에는 문인석 2구과 향로석 1기, 상석 1기, 묘갈 1기가 남아 있다.

또 묘역 주위를 지키는 불교 동자상과 같은 특이한 모습의 동자석들도 최근 들어 무차별적으로 도난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오산리 산 5번지 오윤겸 선생 묘의 동자석 2구는(사진 4) 각각 높이 29㎝, 26㎝로 경기도 기념물 제104호로 지정되어 있으나 2006년 5월30일에 도난당하였다. 다행히 석 달 후인 8월23일 익명의 제보로 되찾게 되었다. 이와 함께 그 묘역 주위에 놓여 있는 아들 오달천, 손자 오도종·오도융의 묘를 수호하는 문인석과 동자석 등 6구도 도난되었다. 추탄 오윤겸 선생은 1582년(선조 15)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1628년(인조 6)에 영의정을 지냈다가 1636년(인조 14)에 돌아가신 분이다. 이 동자석은 늦어도 오윤겸 선생의 묘역이 만들어지는 1636년경에는 함께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인 오윤겸 선생 묘 동자석 2구, 조선, 높이 85, 86.5㎝. 사진 1·2·3·4 ‘도난문화재 도록Ⅱ’(문화재청, 2006)

동자석은 일반적으로 조선 왕릉에는 보이지 않고 일반사대부의 묘에만 세워졌던 도상으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을 위로 틀어 올려 양쪽으로 묶은 쌍계(雙髻) 모양을 하고 두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는 불교의 동자상과 같았으나 점차 문인석과 유사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 동자석들은 묘역마다 저마다의 표정을 갖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능묘 앞을 지키는 문인석, 무인석, 석양, 석호 등과 같은 석물들이 도난 대상으로 인기가 높았다. 근래에 들어 능묘조각과 함께 능 앞을 지키고 있는 석수, 향로석, 장명등이나 혼유석과 같은 석물들도 도난되는 추세가 급증하고 있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57호 / 2018년 9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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