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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견성체험-하

기자명 이제열

견성에 못 이른 모든 체험은 일시적

견성했다고 확신하던 그 여성
남편의 도박빚에 분노 치밀어
깨달음은 안팎서 얻을것 없어

그 여성불자가 자신은 견성했다고 여기며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어느 날이었다. 우편물을 전달하는 우체국 직원으로부터 서류 봉투를 받았다. 남편 앞으로 날아온 봉투였다. 황급히 뜯어 읽어보니 3000만원의 채무를 갚아 달라는 빚 독촉 내용이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소송하겠다는 내용도 함께 적혀 있었다. 순간 그 불자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도박을 끊은 줄 알았던 남편이 자신 몰래 도박을 다시 하다가 진 빚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이 온 마음을 뒤덮었다.

당장 남편을 불러 난리를 쳤고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댁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처지에 이혼까지 할 용기는 막상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삭히며 살고 있는 아파트를 은행에 담보를 잡혀 남편의 빚을 갚아 주었다. 젊었을 때부터 끊지 못하는 남편의 도박증세에 엄청난 실망감에 빠지게 되었고 세상 모든 것이 싫어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남편으로부터 찾아온 삶의 경계가 수행을 해서 얻은 견성의 마음까지 여지없이 깨뜨려버렸다. 이전의 화평하고 자유스러운 마음은 극히 엷어지고 답답하고 출렁이는 마음으로 더해갔다. 다시 법당을 찾아가 ‘금강경’을 독송하고 참회를 해봐도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았다. 그 불자에게 있어 남편과 돈에 대한 경계는 별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행공덕의 퇴보와 손실이 안타까웠다.

그 불자는 마음공부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선지식이나 수행자들을 찾아 자신의 문제를 상담했지만 만족할만한 답변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그 불자는 필자가 불교방송에 ‘원각경’을 강의하는 것을 보고 상담을 위해 찾아왔다고 했다. 이에 필자는 그 불자가 안고 있는 몇 가지 의문점과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조언했다.

첫째, 자신이 체험한 수행의 결과를 견성이나 깨달음이라고 지나치게 인정했다는 점이다. 견성이란 모든 번뇌가 완전히 사라져 다시는 중생의 단계로 떨어지지 않는 부처의 경지를 가리킨다. 아무리 밝아진 마음이더라도 다시 어두워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견성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의식이 맑아진 상태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그 효력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일 년도 가지만 지속성이 없고 마치 밤이 찾아오듯 어두워지는 줄 모르게 어두워진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둘째, 그는 예금한 돈을 찾아 쓰는 것처럼 그 체험을 누리기만하고 수행을 게을리 했다는 점이다. 누구건 불퇴전의 단계에 들지 않고서는 시간문제이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때문에 바른 수행체험을 했더라도 꾸준히 닦아 나가야 한다.

셋째, 그는 자신이 체험했다는 깨달음에 맛이 들려 거기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교 수행의 올바른 자세는 세간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하지만 출세간에도 집착하지 말아야한다. 아무리 진귀한 경계를 얻었더라도 거기에 안주하려들거나 붙들려고 한다면 이는 바른 길이 아니다. 수행인은 마음에서 어떠한 체험을 했던 간에 모두가 허깨비 같은 오온의 변장술이라고 알아야한다. 만약 이를 성스러운 경지로 인정하게 되면 곧바로 번뇌의 소굴로 다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어 그에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에 대해 언급했다. 그것은 예전처럼 경전을 독송하라거나 좌선을 하라거나 하는 등의 어떤 수행방법을 일러준 것이 아니었다. 내용의 초점은 그 불자가 수행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견해들을 바르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운영하는 인터넷카페에 들어가 수행과 관련된 법문들을 열심히 듣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 뒤 그 불자가 아직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카페에 들어와 법문을 열심히 듣고 있다.

모든 수행의 체험은 결국 애인이 이별하는 것처럼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수행해야한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안에서도 밖에서도 얻을 것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58호 / 2018년 10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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