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시다시 ③
37. 이시다시 ③
  • 김규보
  • 승인 2018.10.01 14:55
  • 호수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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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모습은 숱한 인연의 결과

세 번째 파경에 죽기로 결심해
탁발하러 들른 비구니들 보고
출가하여 결국 아라한과 증득

이시다시의 온몸은 핏기가 가신 듯 허옇게 변했다. 창백한 얼굴 위로 가냘픈 눈물 자국이 길게 늘어졌다. 부모의 전갈을 읽었던 순간, 자신을 괴롭혀 왔던 수치스러움과 분노는 모두 사라졌다. 대신에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흩어져 붙잡을 게 없다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세 번의 결혼 생활 동안 단 하나라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탓하며 그럭저럭 버틸 순 있겠는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잘못은 없었다. 이시다시는 이토록 모진 생을 스스로 마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요동치며 이시다시의 일상을 흔들었다. 세 번 소박맞은 신세가 처연하여 당장 목숨을 끊으려다가도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의 얼굴이 떠올라 그만두기를 수십여 차례. 그러는 사이 이시다시의 육신은 한층 메말라 갔다. 깡마른 몸을 흐느적거리며, 집안을 배회하는 일이 많아졌다. 부모의 수심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졌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한 비구니가 집에 찾아왔다. 탁발을 위해 들른 것이었는데, 이시다시는 멀찍이서 그 비구니를 지켜보게 되었다. 여성은 수행자가 되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신기하면서도 호기심이 일어 다가가 말을 건넸다.

“당신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승복을 입었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이름은 무엇입니까?”

비구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상했다. 비구니의 희미한 미소에서 한량없는 자애를 보았다. 암담한 어둠 속을 헤매다 한 줄기 빛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저는 지나닷타라고 합니다. 붓다와 그분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승단에 귀의한 수행자이죠. 당신에게서 깊은 두려움이 느껴지는군요. 지금 당신의 모습은 수많은 인연이 현현한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지난날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붓다라고 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인가요.”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하셔서 거룩한 깨달음을 일구신 분이죠. 그분께서 우리 같은 여자도 출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어요.”

놀라운 이야기였다. 현재의 고통이 그간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면 어디쯤에 자신의 과오가 숨어있는 게 아닐까. 출가도 허용한다니 혼탁한 마음을 벗어젖히고 꼭꼭 숨은 그것을 찾아보기에 더없이 좋을 듯했다. 이시다시는 부모에게 달려갔다.

“아버님, 어머님. 모진 삶에 억눌려 죽으려 했으나, 생각을 바꾸어 죽을 힘을 다해 수행하려 합니다. 거룩한 붓다에게 계를 받고 출가하겠습니다. 갑작스런 말이겠지만 제 심정을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딸아. 집에서도 수행할 수 있고,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릴 수 있단다. 네가 집을 나가기까지 한다면 이 부모 마음이 어떠할지 생각해보렴.”

울먹거리는 부모 앞에서 이시다시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악행을 지어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다고 해도 제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더 이상 만류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부모는 출가를 허락하는 게 딸을 위한 일이라고 여겼다. “딸아! 가르침을 잘 받들어 행복에 이르도록 하거라. 네가 행복해진다면 우리는 그 길을 축복할 것이다.”

이시다시는 곧바로 승단에 들어가 치열한 정진을 이어갔다. 번뇌를 깨부수며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의 경지에 올랐고 일곱 번째 날 아침에는 마침내 삼명(三明)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전생을 헤아렸으며 과보를 보았고 번뇌를 끊었다. 이시다시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붓다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함께 수행하던 비구니가 놀라서 물었다.

“이시다시여. 무엇을 보았습니까.”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확연해졌습니다. 들어보세요. 지금부터 얘기해 주겠습니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58호 / 2018년 10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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