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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보티첼리의 기운생동

기자명 주수완

신화적인 그림들 속에 생동하는 내면의 정신을 담아내다

중국 육조시대의 ‘기운생동’
그림에 내면을 담는 것 의미

르네상스의 화가 보티첼리
기운생동에 부합되는 화가

1484년 그린 비너스의 탄생
신성함 대신 세속적 분위기

누드의 비너스 그림이지만
오히려 순수하고 아름다워

종교적인 근엄함서 벗어나
그리스 인문주의의 신호탄

‘아펠레스 모함’ 소재 그림도
‘질투’ 등 관념적 요소 의인화

중국 법해사의 ‘수월관음도’
생생한 표정에 인간미 흘러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68년경. 172.5×278.9㎝. 우피치 미술관.

중국 육조시대의 화가이자 회화비평가인 사혁(謝赫)은 저서 ‘고화품록’에서 그림을 평가하는 6가지의 기준을 제시했는데, 후대의 이론가들은 이를 ‘6법’이라 하여 즐겨 인용하였다. 이 6가지 기준 중에서도 으뜸은 ‘기운생동(氣韻生動)’이었다. ‘기운생동’이라고 하면 언뜻 역동적인 그림을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뜻은 아니다. 그 뜻을 풀어놓은 후대의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면 결국 인물화에 있어 그 인물의 내면적 성격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동양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전신(傳神)’, 즉 ‘정신을 전달한다’는 개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어려운 것은 그림은 원래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지만, 그것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내면도 보이게끔 그려야하기 때문이다. 그림이 예술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초기 르네상스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이 기운생동에 매우 뛰어난 화가였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그를 위한 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 이렇듯 그가 인기 높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살아있는 듯한 섬세한 인물 묘사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1484년경에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다. 보티첼리의 작품 주제는 주로 이처럼 그리스 고전에 기반한 것이었다. 앞서 살펴본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즐겨 성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남겼기 때문에 대부분 경건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보티첼리의 그림은 세속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비너스는 그리스의 여신이니 이처럼 누드로 표현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실제 그리스·로마 시대의 여신 누드상이 아무리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더라도 왠지 남성적인 씩씩함, 영웅적인 자태가 느껴지는 반면,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그저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처럼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은 매우 순결하고 청순하기 때문에 마치 괴테의 소설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완벽한 여성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그토록 충분히 세속적인 아름다움임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이지는 않다. 미켈란젤로가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신성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과는 다르다. 미켈란젤로의 현실에는 고통도 있고 번뇌도 있었지만, 이 비너스는 순진한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여하간 그런 고통이나 번뇌와는 상관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긴 이 작품은 비너스의 탄생을 묘사한 작품이 아니던가. 이제 막 태어난 아기는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가. 그 아이에게서 어떻게 속세의 갈등과 번민을 느낄 수 있는가. 비록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보티첼리는 어른의 몸을 가진 비너스에 아이처럼 순수한 정신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그 오른쪽 옆에는 조개껍질 위에 올라탄 비너스가 육지에 닿을 수 있도록 힘껏 바람을 불고 있는 천사들이 보인다. 한 천사는 힘껏 숨을 불어내느라 얼굴이 상기되어 있지만, 그에 매달린 또 다른 천사는 마치 비너스의 아름다움에 반한 듯 스스로 이미 정신을 못 차린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왼쪽에는 누드의 비너스가 뭍에 올라오자마자 옷을 입혀주려고 펼쳐든 한 여인이 보인다. 천사가 바람을 불어서이기는 하겠지만, 사실 다른 보티첼리의 그림을 보아도 모두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분위기가 화면을 지배한다. 이것은 마치 요즘의 TV 광고에서 제품을 선전할 때 머리칼이나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각효과다. 이를 통해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왼쪽의 옷을 펼쳐든 여인은 자신이 비너스의 몸을 가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듯,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오로지 다가오는 비너스에 집중하고 있다. 신성한 의식을 진행하는 여사제의 모습처럼 보인다.
 

보티첼리 ‘아펠레스의 모함’ 세부.

이 그림은 비너스의 탄생이자 그리스 인본주의의 재탄생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그림이었다. 앞서 지오토, 마사치오와 같은 거장들이 기독교 주제의 신성한 그림을 그려 존경을 받았던 것에 반해 보티첼리는 부르주아적 취향을 지닌 메디치 집안을 드나들었던 신플라톤주의 인문·예술 애호가들에게 특별히 사랑받을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낸 것이었다. 그의 그림 속 공간감이나 원근감, 입체감은 아직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등 거장들의 그림에 비해 정적이고 평면적이다. 때로는 연극적이고 작위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그것이 보티첼리의 매력이었고, 그의 장점이었다.

보티첼리의 뛰어난 인물 캐릭터 묘사의 정점은 덜 알려진 작품이긴 하지만 같은 방에 걸려 있는 다소 작은 크기의 ‘아펠레스의 모함’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한 청년이 푸른 옷의 여성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고 있는데 이 여성은 모함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아랑곳 않고 그녀의 머리를 매만지고 다듬어주는 두 여성은 간계와 속임수로서 모함을 위해 필요한 수단을 의인화했다. 모함을 이끄는 갈색 옷의 남성은 질투이다. 그리고 이들의 소란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인물은 당나귀 귀로도 유명한 미다스왕인데, 무지와 불신을 의인화한 두 여성에게 둘러싸여 넋 나간 표정으로 그릇된 판단을 내리려 하고 있다. 화면 좌측에는 진리를 상징하는 남성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후회’가 노파의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그림은 알렉산더 대왕 시대를 살았던 궁정화가 아펠레스가 그를 질투했던 동료 안티필로스의 모함을 받아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죽을 뻔 했으나 자신의 결백을 그림을 그려 호소해 풀려났다는 이야기에 기초한 것이다. 그 그림은 사라졌지만 기원후 2세기 로마시대의 루키아누스가 이 그림을 자세히 설명한 글을 남겨 전해졌고, 보티첼리는 루키아누스의 설명을 바탕으로 상상을 덧붙여 이 그림을 완성했다. 무지, 질투, 간계, 모함 등은 매우 관념적이고 내면적인 요소이지만, 보티첼리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이 인물들을 기운생동하게 시각화했다. 마치 연극배우가 무대에서는 자신의 다른 모습은 묻어두고 오로지 캐릭터에 집중해야하는 것처럼, 이 그림은 한 편의 연극처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로 가득 차 있다. 아마 보티첼리는 성격묘사에 자신이 있었기에 이 주제에 도전했으리라.

특히 미다스의 왕 주변에서 아첨하는 여성들, 질투의 화신인 남성의 분노에 찬 듯한 표정, 영혼이 없는 모습으로 모함을 꾸며주는 인물들은 보티첼리가 얼마나 캐릭터 분석에 뛰어난 화가였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북경 법해사(法海寺)의 벽화가 그려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수월관음도를 비롯해서 많은 보살벽화가 법당을 장엄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관음보살 주제의 그림은 이미 이전에도 존재했었고, 중국 송대의 불화나 고려의 불화들 중에도 걸작이 많지만, 이 법해사 벽화들은 더 특별하다. 과거의 수월관음도에 등장하는 보살과 선재동자는 아름답고 귀엽기는 했지만, 굳이 표정이라고 할 만한 것까지 묘사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명대 불화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생생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불교적 혹은 초월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세속적 시각에서의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마치 보티첼리 그림 속 여성들처럼 충분히 인간적이다. 그와 동시에 역시 보티첼리의 그림에서처럼 충분히 이상적이다.
 

북경 법해사 벽화 ‘수월관음도’(좌)와 선재동자 세부(우). 명나라 초기 1400년대.

중국은 원나라를 거치면서 연극과 소설이 발전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삼국지연의’도 이 시기에 등장한 베스트셀러 소설이었다. 마치 ‘삼국지연의’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되 드라마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우리 앞에 실존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부활한 것처럼, 불교회화 속의 신화적 인물들이 마치 우리 이웃의 모습처럼, 그러나 매우 영웅적이고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재현된 것이다. 법해사 벽화 앞에 서면 그것을 그린 화가는 진정 명나라의 보티첼리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이렇게 마음껏 그리스 인문주의의 부활에 앞장섰던 보티첼리는 뜻밖에도 기독교 원리주의자이자 금욕주의를 주장했던 피렌체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동조해 더 이상 이교도 주제의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에도 회의적이 되어 버렸다. 나아가 사보나롤라가 그의 후원자였던 메디치도 비판했기 때문에 메디치로부터도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사보나롤라가 화형 당한 후 보티첼리가 다시 마음을 잡아 1501년에 그린 마지막 그림은 기독교 주제인 아기예수의 탄생을 소재로 한 경건한 분위기의 ‘신비로운 탄생’이었다.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59호 / 2018년 10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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