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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제대로 읽고 있을까

기자명 백승권

모든 불교 신자들은 예불을 올릴 때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하 반야심경)’을 암송한다. 그럼에도 ‘반야심경’처럼 그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거나 틀리게 알려진 경전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냥 주문처럼 관성적으로 암송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주로 읽는 불경 텍스트를 해독하기 어려운 이유는 한문 번역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계종단은 2011년 ‘한글 반야심경’을 만들어 공포했다. 한역본보다 알기 쉽고 뜻이 명료해진 부분이 있지만 ‘반야심경’의 심오한 개념어를 풀어내기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반야심경’은 여전히 주문으로 암송되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 구절에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주문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반야심경’은 대단히 깊고 파격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반야심경’은 놀랍게도 부처님의 정각 이후 깨닫고 가르친 내용을 모두 뒤집고 있다. 오온, 육입, 육경, 육식, 십이연기, 심지어 사성제까지 모두 없거나 아니라고 부정한다.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불자들이 이 내용을 안다면 깊은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 자신들이 매일처럼 불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스리랑카 출신의 어느 스님은 이 같은 점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 책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반야심경’은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복하려고 했던 것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균형’과 ‘중층’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이해하고 있다. 부처님은 인간과 생명, 사물과 상황을 고정된 가치로 재단하지 않고 병증에 따라 약을 투여하듯(응병여약, 應病與藥) 균형점을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런 균형점의 회복은 인간과 생명, 사물과 상황을 겹겹의 국면(중중무진, 重重無盡)으로 따로 또 같이 보아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각 이후의 가르침이 아무리 위대하고 여법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확고부동한 도그마로 굳어지고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순간 우리의 정신을 구속하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배타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가르침이 고통의 빌미가 되는 역설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균형과 중층을 통한 자유로운 정신, 그 때 그 때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생각의 살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장 뛰어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고통은 고행을 통해서도 쾌락을 통해서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 깨달음에 다다른다. 경전은 그 새로운 길을 중도(中道)와 연기(緣起)라 부르고 있다. 중도와 연기는 불멸 후 2500여년 동안 시대적 상황과 변화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사람들에게 수용되었다. 무아~아비달마~공~유식~여래장~선 사상으로 변화 혹은 발전했다. 그러나 그 이후 어찌된 일인지 변화와 발전의 길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근대와 현대를 지나면서 불교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은 초기불교부터 대승불교, 선불교까지 모든 스펙트럼이 동시에 진행되고 때때로 착종된 모습으로 병존한다는 사실이다. ‘반야심경’은 이 착종의 상황 속에서 허공에 떠 있거나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있다.

‘반야심경’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훈고의 차원에서 번역과 풀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글 반야심경’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반야심경’이 우리 시대 문제의식의 맥락 속에서 거듭나는 것이다. 새로 쓰여지고 새로 읽혀야 한다.

백승권 글쓰기연구소 대표 daeyasan66@naver.com

 

[1460호 / 2018년 10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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