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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과 역경불사

기자명 심원 스님

훈민정음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과학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은 자랑스러운 우리글이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72돌이 되는 해다. 전국 곳곳에서 한글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행정안전부는 2006년 한글날이 국경일로 격상된 이후 처음으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성대한 경축식을 개최했다. 경축식과 더불어 다양한 전시‧체험프로그램과 문화‧예술 행사가 진행되어 한글의 가치를 널리 선양하였다.

불교계에서도 한글날과 연계한 행사들이 열렸는데, 눈에 띄는 것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원장 정승석)이 10월5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한 ‘석보상절 주해본 완간의 의의’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다. 이번 학술대회는 불교학술원이 문화체육관광부와 동국대의 지원하에 추진하고 있는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사업(ABC사업)의 하나로 2012년부터 진행해온 ‘석보상절’ 번역과 주해 작업 완료를 기념해 거행된 것이다. 이 대회를 통해 학술원은 ‘572돌 한글날’을 앞두고 최초의 한글 언해본인 ‘석보상절’ 주해본 간행의 의미와 한글보급에 미친 대중적 가치를 공유하는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불경 언해가 훈민정음의 배포와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불경 언해서는 각종 언해의 규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훈민정음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한글의 보급과 한글문화 창출에 크게 기여하였다.

언해(諺解)란 한자가 문자의 중심이던 조선시대에 한문으로 된 문헌을 한글로 번역한 일을 말한다. 불경언해는 한문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역경사업이다. 조선 왕들 중에서 불경언해에 가장 열성을 가진 이는 세조대왕이었다. 세조는 수양대군 시절인 1447년에 최초의 한글 불서인 ‘석보상절’을 지었고, 이어서 ‘월인천강지곡’에 ‘석보상절’을 합편한 ‘월인석보’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불경 번역과 간행 전담 기구인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많은 언해본 불경을 간행하였다. 이후 간간이 불경간행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숭유억불의 조선왕조에서 불경 번역과 연구는 동력을 잃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한글말살 정책으로 한글 번역 작업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이 되자 불교계에 한글 경전의 제작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1962년 통합종단으로 출범한 대한불교조계종은 역경사업을 3대 지표의 하나로 설정하면서 역경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어서 1964년 동국대에 동국역경원을 설립하고 운허 스님이 초대 역경원장을 맡음으로써 실질적인 한글번역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역경원이 발족될 당시 역경사업에 대한 종단 안팎의 관심과 열의는 대단했다. 역경위원회에서는 역경 예규(例規)와 범자(梵字)의 한글 표기법 등을 정하고, 번역 용어를 통일한 후 번역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1965년 한글대장경 제1집 ‘장아함경’ 4000부를 간행한 이래, 1980년대 전후의 침체기를 거치긴 했으나 2001년에 총 318권의 한글대장경을 완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괄목할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역경사업의 현주소는 그다지 녹록치 않은 모양새다.

“역경원 개원초기부터 지적된 재정과 인력난은 여전히 역경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재정불안은 역경원의 최대 난제다. 또 대장경의 원문을 해독할 수 있는 전문인력 부족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불교대중화를 위한 역경불사에 불자들의 많은 동참을 바란다”고 호소하는 역경원 관계자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불경의 한글 번역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번역은 불교의 전파와 발전의 역사 그 자체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말과 글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듯하고 아름다운 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옮기고 전할 때, 비로소 불교가 그 사회와 문화 속에 살아있는 종교가 될 것이다. 종단의 현안이 아무리 시급하더라도 한글 경전번역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시대의 과업이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daum.net

 

[1460호 / 2018년 10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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