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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불교의 출현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필자는 중매결혼을 했다. 양쪽에 전화로 소개해주고, 서로 알아서 만나게 하는 것이 현대 중매의 형태다. 나이가 차서 그랬는지 얼굴 보고나서 네 달 만에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짝은 지방 국립대 불문학과의 강사로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그래도 불교를 공부하는 나와 무슨 인연이 있겠지, 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환호성을 질렀다. 프랑스를 한자로 쓰니 佛蘭西(불란서)다. 이 글자를 골똘히 쳐다보았다. 순간 ‘아, 그렇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조어한 사람은 독실한 불교신자임에 틀림없다. 일단 그 글자에 나타난 선견지명이 대단했다. 불란서의 ‘불’은 부처 불자다. ‘란’은 명사로는 난초를 의미하지만 동사로 치면 ‘난초와 같이 향기를 풍기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서는 서방, 즉 지금의 서구를 말한다. 이 글자를 해석해 보면, ‘불법이 서구에서 향기를 내다’라는 뜻이 된다. 발음상으로 볼 때, 일본보다는 중국에서 조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프랑스 제3의 종교는 불교다. 가톨릭과 개신교 전체가 제1, 역사 및 문화의 교섭과 최근의 이민으로 이슬람이 제2, 그리고 불교가 세 번째 순위가 된다. 이는 독일도 같은 현상일 것으로 본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식민지 개척의 도구로 시작한 문화인류학이나 종교학을 통해 연구하기 시작한 것에서 유럽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독일의 종교학자 막스 뮐러가 그랬듯이 불교 경전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서구에서 불교를 개인의 신앙과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승려들이 개척한 불교의 수행 혹은 명상센터가 유럽 각국에서 자리 잡는 경우도 드믄 현상이 아니다.

이처럼 불교가 서진하는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서구에서 새로운 형태의 불교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조직에 구애받지 않는 개인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종교의 모습일 것이다. 개인성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불교가 가장 유력하다. 정의와 평화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참여에 대한 유구한 전통에서 재발견해 낸 것이다. 물론 신권 중심의 중세적 권위는 근대 이성의 발전으로 거세되고 해체된 지 오래다. 따라서 이들의 기독교 문화 위에 불교적 개인의 해탈을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 일종의 기독교적 불교로 나타나고 있다. 종교적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 종교가 서로 영향을 주었던 과거에 비추어 이제는 직접적으로 종교 그 자체에 변형을 가하고 있다. 새로운 해탈구원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물질에 대한 정신의 자각, 영혼의 자유를 구가하는 종교, 그러면서도 자신의 영혼에 대해 스스로의 구원을 갈구하며, 무아 혹은 카타르시스와 같은 진실한 체험을 통해 영혼 속에 신적 세계를 투영하는 종교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세계의 불교지형은 삼분될 것이다. 초기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남방불교(테라바다불교), 티베트 불교를 포함한 북방불교(대승불교), 그리고 이 서구적인 해탈구원의 불교다. 역사를 나열하면, 출가중심→재가중심→재가의 구루(Guru, 스승이나 지도자)가 중심이 되는 불교다. 머지않아 불교는 역수입될 것이다. 자신만만한 서구의 불교지도자가 ‘여기 더 멋진 불교가 있으니 이제 나를 따르라’고 할 날이 올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불교가 나타나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문명의 한계를 직시한 대중들은 사찰은 어쩌다 소풍이나 여행가는 유흥지로 여기고, 자신의 구제를 위해 다양한 SNS 채널을 돌려가며 찾아다닐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서구의 세계문화유산급 성당에서 일요일에 열서너 명의 신자들이 중세풍의 미사를 보는 것처럼 과연 한국의 고풍 사찰은 화려했던 과거 유물로만 남을 것인지, 아니면 템플스테이가 일말의 희망을 주듯이 현대문명에 지친 이들의 안식처로써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인지 곧 판명날 것이다.

원영상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wonyosa@naver.com

 

[1461호 / 2018년 10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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