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 Climbing5

기자명 임연숙

도약은 고정된 틀을 벗음으로 시작

미인도의 상식을 깨는 작품
동 시대 미의식을 표현하는
매체로서 가능성도 열어줘

박은영 作 ‘Climbing5’, 한지에 수묵, 2000년.
박은영 作 ‘Climbing5’, 한지에 수묵, 2000년.

얼마 전 TV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메이크업 에디터로 살겠노라는 아들과 이를 걱정하는 부모가 갈등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엄마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아이가 “어차피 인생은 힘든 거야” 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맞는 말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는 아이를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어린 나이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강렬한 소신과 열정을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갈등은 아마도 진행 중일 것이다. 누구도 정답을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가야 하는 길이면 그 과정 중에 누구도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다.

2000년대 초에 그려진 박은영 작가의 수묵인물화 한 점이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틀을 깬 도전의 산물이다.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기존의 동양화 미인도가 아니다.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는 미인도가 아닌 살아있는, 뭔가 느끼고 생각하고 어떤 액션을 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여인의 모습이다. 제목 또한 ‘Climbing’, 등산이다. 아래로 몸을 향하고 있어 마치 하늘을 날거나 물속을 떠다니는 포즈인데 등산이라니. 오르는 모습인가? 자신의 몸을 흐르는 물속에 잠긴 섬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를 표현한 작품을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다. 먹과 물, 수묵으로 단순화된 인물의 표현이 생소하기도 하고 기존 미인도의 상식을 깨는 형식이었다.

가식과 꾸밈, 연출된 딱딱한 미인이 아닌 실재하는 건강한 여성이 주는 또 다른 미인도다. 이러한 형식의 작품은 당시 젊은 한국화 작가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였고 한국화의 폭을 한층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젊은 감상자들에게 가까운 공감으로 다가왔고, 박제된 한국화가 아닌 동시대의 미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작가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면서 여전히 수묵화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인생을 돌고 돌아 많은 여행과 시도, 시행착오와 성공의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그림의 주인공처럼 자유롭게 순간순간을 도전하고 모색하며 찾아다니기도 했다. 모필을 통해 표현되는 필치 속에는 작가의 성품과 품성이 배어 나오기 마련이다.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화면에 단순하지만 미묘하고 예민한 먹의 번짐을 활용해 표현된 얼굴은 검은 먹으로 표현된 몸과 대비되면서 화면을 채우고 있다. 나는 듯 떠 있는 듯 다소 어색한 표현이 동화적인 느낌을 준다.

주변의 어떠한 배경을 생략하고 미묘한 몸동작만을 부각한 이 작품은 작가가 오랫동안 수묵애니메이션 작업을 해 온 것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에서 하나의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주제와 배경을 별도로 작업하고, 미묘한 연속 동작을 그려서 이어 붙여 편집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동안 ‘TV동화’에서 보여주던 애니메이션 작업처럼 이 그림도 하나의 동작을 위한 일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물속이거나 하늘 위거나 날기 위한 연속동작의 부분처럼 말이다.

전통적 재료와 기법으로 새로운 현대적 의식과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들을 통해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진다. 의식의 자유와 남들과 똑같은 방식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넘어 다양한 선택지로 향하는 작가의 의식 반영처럼 느껴진다. 매 순간 자신에게 충실한 것만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61호 / 2018년 10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