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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김광섭의 ‘나의 초상’

기자명 김형중

할머니가 등 밝혀 기원한 공덕
아름다운 비유·상징 통해 표현

곡식은 주인 발소리 듣고 자라
농부 정성에 비례해 수확 보답
자녀는 부모 사랑·기원에 성장
자기 일 열심이면 불보살 가피

나를 금배지라 부르던
할머니가 나의 초롱을 만들어
불당(佛堂)에 달고 가셨다

꿈에 그 초롱이 와서
들여다보니
무지개가 나려와
촛불에 타서 재가 소보록했다

11월15일은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다. 그날 받을 점수 등급은 어머니가 불당(佛堂)에서 자녀를 위하여 기도한 시간과 비례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한 자루의 향을 올리고 또 올려서 그 재가 소복하게 쌓인다. 그 재의 양이 수능 점수이다. 어느 저명한 철학자가 TV 강연에서 “맹세코 하나님과 부처님께 기도해서 수능시험점수나 고시시험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확률 0%이다”고 열변하였으나, 필자는 35년 동안 학교에서 수험생들의 진학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머니의 기도가 수험생의 점수와 진학률에 비례함을 확인하였다.

어린 자녀들은 아버지의 모습과 어머니의 기원과 칭찬을 듣고 자란다. 어머니는 자녀와 항상 함께 한다. 그런 어머니의 역할을 할머니가 한 경우가 있다. 애틋한 사연이 있다.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사랑은 더 간절하고 초인적이다.

시인의 할머니는 대갓집의 종부로서 어린 손자를 ‘금배지’라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담아서 불렀다. ‘김씨’ 성을 가져 ‘금씨’라고 할 수 있으니 ‘금배지’라고 한 것이다. 금배지를 달고 다니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상징하는 말이다.

불심이 돈독한 할머니가 산사의 불당에 가서 정성껏 손자의 미래 모습인 초상(肖像)을 만들어 초롱불을 부처님 앞에 달아 놓고 빌고 기원을 드렸다. 할머니의 소원대로 시인은 잘 자라서 일본 유학생으로 독립운동을 하였고, 해방 후에 이승만 정부에서 초대 공보처장을 지낸 엘리트 시인이 되었다. 그의 시집 ‘성북동 비둘기’는 유명하다.

논밭의 곡식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고 농부의 정성 만큼에 비례하여 보답한다는 말이 있다. 집에서 자식교육이나 학교에서 학생교육의 성과는 가르치는 선생님과 학부모의 열성과 기원에 비례하여 나타난다.

시인은 “꿈에 그 초롱(손자의 앞날을 위한 기원의 등불)이 와서/ 들여다보니/ 무지개가 내려와/ 촛불에 타서 재가 소보록했다”고 읊고 있다. ‘무지개’는 손자의 아름다운 이상과 꿈(肖像)을 상징하고, ‘촛불에 타서’는 부처님의 가피와 영험을 상징하고, ‘재가 소보록했다’는 부처님의 공덕이 쌓였다는 뜻이다.

시인은 자신의 출세와 성공은 순전히 할머니가 산사의 부처님께 등불을 밝혀 기원한 공덕임을 아름다운 비유와 다양한 상징을 통해서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불당에 등불을 밝히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금배지를 달 수 없지 않은가. 자신이 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산 사람이면 금배지를 단 것이고, 불보살님 가피를 받은 것이다.

어린 자녀들은 어버이의 사랑과 기원으로 성장한다. 기대하고 정성을 쏟은 만큼 성장한다. 김광섭(1905~1977) 시인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 일을 나이 드신 할머니가 대신했다. 그러니 그 할머니의 정성이 어떻겠는가. 하늘도 땅도 부처님도 보살님도 모두 감동시킬 간절한 소원과 기도가 있었다. 어린 시절 시인은 그 모습을 보고 자랐다.

할머니의 기대와 기도 소리에 응답해야 하는 손자의 효성스런 마음이 잘 나타난 시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산사에서 자녀들의 대학입시 기도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아름답고 거룩하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62호 / 2018년 10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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