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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지구용량 초과

기자명 최원형

숲과 갯벌, 강에 의지해 살아가는 우리

인류가 지구에 영향력 발휘하며
생물다양성 훼손 급속도 높아져
경제 폭망했다고 아우성 치지만
돈은 손에 잡히는 실체가 아냐

얼마 전 구글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우주달력이란 걸 봤다. 대략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었으나 보고 있자니 느끼는 바가 적지 않았다. 달력은 우주의 시작이라는 빅뱅으로부터 시작된다. 태양계에 생명이 살기 시작한 것이 9월이며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생명이 진화를 거듭하는 것은 12월이다. 현생 인류로 인간이 진화를 한 것은 12월31일 오후 11시 52분쯤이고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대륙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마지막 1분을 남겨놓고였다.

생태 환경 강의를 할 때 지구 역사를 언급하는 일이 요사이 부쩍 늘었다.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라면 특히나 지구의 역사를 반드시 언급하게 된다. 우주 안에서 지구의 위치와 그 지구에서도 인류의 존재가 대체 어느 정도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아이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의도에서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던 것이 12월 31일이 끝나기 불과 몇 초 전이었다. 그러니 지금 21세기는 마지막 1초를 다시 어마어마하게 쪼갠 시간의 일부가 될 것이다. 우주 역사는 고사하고 지구 역사를 놓고 볼 때 우리 인류의 등장은 정말 미미하기 짝이 없으리만치 지구상에 갓 등장한 셈이다.

지구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위상이라는 게 미진 같다는 표현조차도 과분하다. 이런 인류가 지금 지구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한 국제환경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전 세계 척추동물의 개체 수가 60% 감소했다. 어디 척추동물뿐일까? 생물다양성 훼손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많은 생물들에게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지는 웹 검색을 잠깐만 해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생물다양성 감소의 원인은 주지하다시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인류의 소비활동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허물어지는 생물다양성의 연결고리에 인류는 안전할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국 증시가 출렁이고 있다. 지난주엔 코스피 2000선이 붕괴되면서 30조의 돈이 증발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많은 이들은 경제가 폭망했다고 아우성이다. 주식을 갖고 있든 갖고 있지 않든 간에. 그 기사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돈이 어떻게 증발할 수 있을까’ 였다. 돈이 기체도 아닌데 저렇게 순식간에 돈이 증발한다면 그건 손에 잡히는 실체가 아니라는 얘기 아닌가. 돈이 증발했다는 것은 본래부터 존재하던 실제의 돈이 아니어서 가능한 소리다. 실체가 본래 없던 숫자가 사라졌다는 것이니 과연 이것을 사라졌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그런데도 이런 사라짐에는 이구동성 큰일이라고들 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숲이 사라지고 갯벌이 사라지는 것에는 그토록 무감하면서 말이다. 더구나 우리는 숫자가 아닌 실재하는 숲이며 갯벌이며 강에 의지해 살아가지 않는가 말이다. 이 말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자연에 무수한 혜택을 입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우리 인류는 지구라는 무대에 가장 나중에 등장했다.

그러니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먼저 등장한 선배 생명들에게 예를 갖추고 지구에서 사는 법을 잘 배워야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를 높여놓고 온갖 생명들을 수단 삼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해버리고 있는 이 오만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단지 선배 생명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미래 세대들에게 우리는 또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지속가능성과 생태발자국 전문 연구기구인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가 발표한 올해 지구용량 초과의 날은 8월1일이었다. 2일부터는 내년 것을 빚내서 쓰고 있다는 뜻이다. 지구용량 초과의 날은 1년 치 쓸 수 있는 식량, 토지, 화석연료, 목재 등을 사용하면서 그에 따른 탄소배출 등을 기초로 산정한 값을 날짜로 표현한 것이다. 지구 평균이 8월 1일이라는 것도 충격인데 한국의 지구용량 초과의 날을 알고 나면 이 정도는 차라리 훌륭하다 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지구용량 초과의 날은 올해 4월16일이었다. 산정하는 기준에 따라 조금씩 수치가 달라진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일 년 치를 반년도 안 돼 다 썼다는 의미는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한국인들처럼 전 지구인이 지구를 소비했다가는 지구가 8.5개 정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체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고 살고 있는 걸까? 후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빈손이다. 아니 빈손이 아니라 빚더미에서 살아야 한다. 그 빚더미에 무시무시한 방사능 쓰레기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너무도 염치가 없는 조상이 되고 있다. 눈으로 볼 수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숫자놀음에 속아 이리도 흥청망청 소비하는 우리의 민낯을 이제는 부끄러워해야하지 않을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63호 / 2018년 1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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