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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600년 만에 돌아온 국보급 불상

기자명 이숙희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불상 어떻게 돌아왔나?

한일교류로 전해진 것 아니라
17세기 후반 이전 약탈 추정
국보급 불상 2점 절도범 반입
2012년에 일본 쓰시마서 절취

밀반입 금동관음보살좌상 1점
서산 부석사의 불상으로 확인
금동불입상은 2015년 일 반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약탈 확인
반환금지 가처분 승소 분쟁 중

금동불입상, 통일신라, 높이 38.2㎝

2012년 10월6일 일본 쓰시마(對馬島)의 가이진진샤(海神神社)와 간논지(觀音寺)에서 도난당한 우리나라 불상이 국내로 들어온 사건이 발생하였다. 쓰시마의 신사와 사찰에 진열되어 있던 불상 2점과 대장경 1점이 유리가 깨진 흔적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도난 된 지 이틀 후 오후 6시경 손모씨가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이 불상 2점은 분명 불법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일본으로 건너간 지 600여년 만에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번 불상 도난사건은 문화재 전문절도범에 의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문화재 전문절도범들은 10월6일 전시장 천정의 기와를 뜯고 침입하여 불상 등 문화재 3점을 훔친 다음 대장경은 일본에서 버리고 불상 2점만 챙겼다. 그리고 이틀 뒤에 X-ray 검색대가 없는 후쿠오카항을 이용하여 우리나라에 가져온 것이다. 부산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 지 한 달쯤 지난 11월 말경 경찰서로 “도난문화재로 의심되는 불상 2점을 팔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1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익명을 요구하는 전화 제보를 통하여 그동안 종적을 감추어 왔던 용의자를 비롯한 관련자 7명에 대한 실체가 드러났다. 2개월 후인 2013년 1월29일 일본에서 훔친 국보급 불상 2점의 운반과 보관, 판매를 맡았던 일당 모두를 검거하였으며 창원시 마산의 한 창고에 있던 금동불입상과 금동관음보살좌상도 회수하였다.

일본 쓰시마 가이진진샤에 봉안되어 있던 금동불입상은 언제, 어떻게 일본에 건너갔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1685년에 기록된 ‘대주신사지(對州神社誌)’에 불상과 관련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후반 이전에는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금동불입상과 관련된 또 다른 기록이 없고 변방지역인 쓰시마의 작고 초라한 신사에 모셔져 있었다는 점으로 보아 고대 한·일간의 문화교류를 통해 전해졌다기보다는 임진왜란 때 약탈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금동불입상은 1974년 6월8일에 일본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가이진진샤 소장의 금동불입상은 높이 38.2㎝로 광배와 대좌가 없어졌으나 크기나 조각기법 등에서 일본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중에서 단연 으뜸에 속한다.(사진 1, 2) 대좌는 불상을 고정하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상의 내부는 텅 비어 있고 머리와 등 뒤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8세기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주조기법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몸에 비해 얼굴이 조금 큰듯하나 신체비례는 비교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 머리의 육계는 유난히 큼직하여 조화롭지 못하지만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얼굴에서는 종교적인 엄숙함이 느껴진다. 양쪽 어깨를 덮으면서 내려온 통견의 법의는 몸에 완전 밀착되면서 신체의 곡선을 강조하여 불상 전체에 생동감을 준다. 특히 신체의 윤곽선에 따라 표현된 옷주름이 특징적이다. 두 손은 모두 손가락 끝부분이 파손되어 더욱 작게 보이며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다. 이런 형식의 불상은 통일신라 전성기에 많이 볼 수 있다. 가이진진샤 소장의 금동불입상은 표면 전체에 푸른 녹이 끼어 있지만 통일신라시대 불상 그대로의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금동불입상 뒷면.

본 쓰시마 간논지(觀音寺)에 봉안되어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원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었던 불상이다.(사진 3) 1951년 5월에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1330년(고려 충선왕 원년) 2월에 승려와 불교신도 등 32명이 서주(西州) 부석사의 당주(堂主)로서 관음상 1구를 조성하여 현세에는 재화를 없애고 복을 누리며 내세에는 아미타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며 영원토록 공양하겠다’고 되어 있다. 발원문의 내용으로 본다면, 금동관음보살상은 서산 부석사에 조성되어 모셨던 독존상이나 어느 시기에 어떤 일로 인하여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관음보살상은 1973년 5월18일에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일본 쓰시마 섬에는 도난당한 불상 2점 외에도 고려시대 불상이 상당수 남아 있다. 이 불상들 중에는 일본과 불교문화를 교류하면서 합법적으로 전해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왜구의 침략으로 인한 문화재 약탈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다. ‘고려사’에는 1370년을 전후하여 왜구들이 서산 일대를 침략하여 사찰을 불태우고 많은 불교문화재를 마구 약탈했다는 내용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인 1350년부터 1400년경까지 왜구의 침략이 극심하였는데 특히 공민왕(1351∼1374)과 우왕(1374∼1388)이 재위한 기간에는 약 387회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이때 상당수의 불상, 불화, 경전 등 불교문화재가 약탈되었으며 부석사의 금동관음보살상도 왜구의 침략 때 약탈된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관음보살좌상은 높이 50.5㎝로 대좌와 광배가 없어진 상태이며 보관도 잃어버렸다. 일부 부식되었기는 하나 상 자체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전반적으로 몸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며 결가부좌한 다리도 빈약하나 신체는 비교적 당당하고 균형이 잡혀 있다. 얼굴은 둥글면서 넓적한 편인데 표정이 거의 없는 무심한 모습이다. 머리 위에는 높게 틀어 올린 상투만 남아 있고 양어깨 위로 머리카락이 길게 내려와 있다. 몸에는 여래상이 주로 입는 소매 폭이 넓은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내의 위에 금구장식과 띠 매듭이 장식되었다. 두 손 역시 가슴 앞에서 엄지와 셋째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아미타불의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다. 양쪽 귀에는 작은 귀걸이가 장식되었고 가슴 위의 목걸이와 양쪽 무릎을 감싸면서 늘어진 영락장식 등에서는 고려 후기 보살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전형적인 보살상 형식과는 달리 중국 명대 보살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다.
 

금동관음보살좌상, 고려 1330년, 높이 50.5㎝

일본 쓰시마 소재의 불상 도난사건은 사건 자체로도 주목받았지만 이후 불상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되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주범인 문화재 절도범들의 행위를 이상하리만큼 민족감정에 결부시켜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불상을 훔쳐온 문화재 절도범들을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온 의객으로까지 이야기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가입되어 있는 ‘유네스코 협약’ 제7조에는 ‘밀반출된 문화재에 대해서 원 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 아래 선의로 취득한 문화재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 소재의 불상 2점은 절도범에 의해 불법 반입된 것이므로 일본에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지 아니면 약탈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불상의 원소유지인 사찰로 돌려줘야 하는 것인지 등의 복잡, 미묘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금동불입상은 약탈당했다는 근거를 증명하지 못해서 2015년 7월15일 최종적으로 검찰에서 일본으로 반환하기로 결정하고 그해 9월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반면에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한 것으로 왜구들이 약탈해 갔다는 사실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법원에서 3년간 불상의 반환을 금지하도록 가처분 결정을 내린 바 있으며 현재는 항소심 진행 중에 있어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63호 / 2018년 1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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