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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대장경 사이트

기자명 백승권

지난 11월5일자 교수신문은 ‘교수 추천 도서 베스트 30’을 발표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1위를 차지했고 뒤를 이어 ‘논어’ ‘기독교성서(성경)’ ‘자본론’ ‘호모데우스’ ‘삼국지’ ‘토지’ ‘총, 균, 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로마인 이야기’ 등이 10위 안에 랭크됐다. 불교 카테고리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유일했다.

불교출판사에 다녔던 어느 편집자는 이 기사를 페이스북에 링크하며 “종교 부문에 불교 경전과 논서들이 단 한 권도 없다는 것은 불교 콘텐츠가 지식인 사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한 단면을 드러낸다. 출가스님들과 불교 지식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라고 멘션을 남겼다. 

그 아래 몇 개의 댓글이 달렸다. “출가수행자의 독식 문화 때문이라며 문호를 개방해 재가학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불자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설문 자체가 표본이나 조사방법 측면에서 신뢰할 수 없다” “불자 모두의 책임이다”라는 주장 등이었다. 매우 논쟁적인 이슈였는데 출가수행자나 불교학자 누구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10대 후반 불교를 접한 이후 지금까지 불교 콘텐츠에 대한 나의 생각은 경전의 방대함, 대중서의 빈약함이었다. 불교를 하나의 광산에 비유했을 때 어마어마한 금맥이 노천에 깔려있는데 그것을 캐내어 세공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더러 세공하지 않은 금광석을 주워 진열대에 올려놓긴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 금이 들어 있는지 쇠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어 외면하고 마는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주최하고 불교출판문화협회가 주관하는 ‘불교출판문화상과 올해의 불서 10’ 선정위원을 이태 동안 맡은 적이 있었다. 좋은 책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뽑아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한 두 위원이 어떤 책을 추천하면 다른 위원도 대체로 수긍할 만큼 좋은 책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한 해 동안 출간된 불교 카테고리 책을 살펴보면 종수도 적었고 화제작도 찾기 어려웠다. ‘법담’ ‘법어’라는 수식어를 단 스님들의 신변잡기나 사찰 주변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았고 경론을 풀어놓은 책은 다른 해설서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훈고의 되풀이인 경우가 허다했다. 뜨겁게 현실의 문제의식과 대면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새롭게 읽어내는 책들은 대부분 번역서였다.

이렇게 불교 콘텐츠가 남루한 지경에 이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출가수행자, 불교지식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앞글의 문제의식에 동감하지만 난 좀 다른 측면을 살펴보고 싶다. 내가 주목하는 점은 ‘필력이나 기획력을 가진 집필자, 콘텐츠 제작자들이 왜 불교 콘텐츠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최근 10년 내 소설, 교양서, 웹툰, 영화를 보면 압도적 경향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픽션 혹은 팩션이다. 이런 붐의 진원지는 ‘조선왕조실록’이다. 집필자와 콘텐츠 제작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기 위해 한문 실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조선왕조실록 번역본을 웹(sillok.history.go.kr)에서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2년 민족문화추진회가 국역사업을 시작해 1993년 완성했고 1995년부터 전산화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관심 있는 내용을 찾기 위해 키워드 몇 개만 치면 된다. 이 웹 사이트는 역사물을 만들려고 하는 집필자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화수분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우리 불교계도 팔만대장경을 국역한 사이트가 있지 않은가? 동국역경원이 만든 ‘한글대장경’ 웹사이트(abc.dongguk.edu)가 있다. 2001년 한글대장경을 완간하고 정부 예산의 지원을 받아 전산화한 결과다. 관심 있는 키워드를 한번 쳐보길 바란다. 한글대장경이 어떤 검색의 결과를 보여주는지, 어떻게 한글로 풀어내고 있는지 그 실상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걱정이 들 것이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이 사이트를 보면 어떡하지. 

백승권 글쓰기연구소 대표 daeyasan66@naver.com

 

[1464호 / 2018년 1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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