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전국이 침잠했었다. 지난주 초고농도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풍경이 딱 그랬다. 오염물질 배출량은 증가하는데 공기가 정체돼 있으니 오염 농도가 증가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의 폐 속으로 이 오염물질들이 흡입되었다. 매순간 숨을 쉴 때마다.
한 치도 어긋남 없는 인과법칙의 적용이다. 기차를 타고 남녘으로 가는 와중에 본 미세먼지의 위력은 대단했다. 차창 바깥은 운무에 완전히 묻혀버린 듯 운치마저 느껴졌다. 운해라고 상상하니 차창 밖 풍경은 볼만했다.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미세먼지로 인한 공포심에 질려버릴 것 같았다. 물이나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는 몇 십일을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숨을 쉬지 않고는 단 한순간도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니 생존에 깨끗한 공기는 필수다. 미세먼지는 인체에 치명적인 1급 발암물질로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는 규정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11월6일부터 유류세 15%를 6개월간 한시적으로 인하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부터 봄까지의 기간과 딱 겹친다. 미세먼지로 인해 온 나라가 뿌옇던 와중에 나온 조치라고는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국제유가는 하락하는데 국내유가는 그에 못 미치고 있다는 비판이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터에 나온 결정이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왜 국제유가는 하락할까? 바로 그 때문에 하락하는 것이다. 내연기관을 장착하지 않은 전기 자동차가 이미 세계적으로 큰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기름의 수요처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도 국제유가 하락에 일정부분 기여를 했다.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에서 유해물질이 다량 나온다는 등 유언비어가 극성이지만 세계적인 흐름은 이미 재생에너지다.
지난해 서울은 미세먼지(PM2.5) 초과일 수가 63일로 5.8일에 하루 꼴로 기준(35㎍/㎥)을 초과했다. 재생에너지도 안 되고 유류세는 인하하고 그러면 우리는 숙명처럼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고 살아야 한다는 걸까? 특히나 노후한 석탄 화력발전소와 차량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미세먼지의 주요한 원인제공자인데! 유류세는 비행기를 탈 때 한번쯤 들어보긴 했으나 대체 그게 어떤 명분과 어떤 구조로 이루어진 세금인지는 알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게 되면 탄소를 배출하니 일정부분 책임을 지우는 정도의 세금이라고만 혼자 이해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원유를 모두 외국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에 좀 과도하다 싶은 유류세에 대체로 관대했던 것 같다. 다만 금액이 만만찮게 든다는 생각을 아주 가끔 비행기를 탈 때 공항에 가서 하곤 했다. 사실 국제유가가 내려도 주유소에 찍힌 리터당 기름 가격은 체감할 수 없을 만큼 꿈쩍도 하지 않아 의아하기도 했지만 한편 비싸기 때문에 자동차를 덜 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다지 반감은 없었다. 나부터도 자가용 운행을 자제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에 한시적이긴 해도 유류세 인하로 기름값이 조금이라도 싸진다면 운수업을 하는 개인이나 영세한 사업장에서 이득이 발생할 수 있는 장점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화석연료의 소비를 늘리는 일이다. 영세한 사업자에게 정말 혜택을 주고 싶다면 그 방법이 유류세 인하여야 했을까? 세금감면이나 복지 확대 등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가능하다. 유류세 인하로 가계에 보탬이 될 거라는 기대는 조삼모사 아닐까? 기름 소비를 부추기는 일은 온실가스를 증가시키고 미세먼지 농도를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 미세먼지는 다시 우리의 호흡기를 타고 내 몸으로 들어온다. 결과적으로 의료에 쓰이는 국가의 의료비 총량이 늘어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전력 생산에 따른 탄소배출이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그런 처지에서 유류소비를 부추길 개연성이 충분한 유류세 인하는 대체 무슨 생각에서 꺼내든 카드일까? 오히려 거둬들인 유류세로 대중교통 시스템을 더욱 촘촘하게 세워 자가용 운전 없이 편히 다닐 수 있는 공공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지출하는 게 지속가능한 방법 아닐까?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6월 노후 석탄발전소 5기 가동 중단으로 미세먼지는 약 1055톤이 저감됐고, 충남 지역에서 미세먼지 농도 개선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최근 고농도 미세먼지(PM2.5)의 원인으로 국내 요인이 더 컸다고 발표했다. 결국 미세먼지 증감은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유류세 인하는 엇박자도 보통 엇박이 아니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64호 / 2018년 1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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