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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서문표의 사교(邪敎) 다스리기

기자명 김정빈

속임수 간파능력, 고매한 덕, 권위로 악습 끊다

지역 장로들에 가장 힘든 일 묻자
물의 신에 처녀 바치는 악습 고해
무당이 처녀 뽑는 강가에 찾아가
물의 신 만나라며 강에 무당 던져
무당 돕던 유지들 참회한 후 사죄

그림=근호
그림=근호

위문후 때 서문표(西門豹)가 업(鄴)이라는 지역을 맡아 다스리게 되었다. 부임한 다음 그는 곧바로 지역 장로들을 소집하여 지금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한 장로가 말했다.

“물의 신 하백에게 아내를 바치는 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해 보시오.”
“업의 삼로(三老: 관직 이름)와 아전들이 하백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해마다 많은 돈을 걷어갑니다. 그중 20~30만 전은 행사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일을 주관하는 무당과 나눠 가집니다. 그 시기가 되면 무당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처녀를 찾은 다음 ‘이 여자는 마땅히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폐백을 주고 데려갑니다.
무당은 간택된 여자를 잘 씻기고 고운 비단옷을 입혀 홀로 지내게 합니다. 물가에 재계하는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붉은 장막을 친 다음 여자를 그 안에 홀로 둡니다. 고기와 밥과 술을 잘 먹이며 십여 일을 보냅니다. 당일이 되면 화장을 시키고 여자를 가마에 앉힌 뒤에 물에 띄웁니다. 처음에는 떠서 흘러가지만 수십 리를 지나는 동안 가마가 물에 잠겨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딸을 가진 부모들은 딸을 데리고 멀리 도망가버립니다. 이런 까닭으로 성안이 비어 사람이 없게 되고, 마침내 우리가 빈곤해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무당은 ‘하백에게 아내를 바치지 않으면 물이 범람해 백성들을 익사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저희들이 지금 가장 근심하는 문제입니다.”

장로의 말을 듣고 나서 서문표는 “행사가 있는 날 나도 보러 가겠소”라고 말했다. 마침내 그날이 왔는데, 모인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되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큰무당은 일흔이 넘은 늙은 여자였으며, 그녀에게는 비단으로 지은 예복을 잘 차려입은 여제자 십여 명이 따르고 있었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은 위대한 신이므로 마땅히 고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아내로 바침이 옳을 것이다. 내가 선발된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직접 판단해보겠다.”

이렇게 하여 처녀가 앞에 이르자 서문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당과 삼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처녀는 하백의 아내가 될 만큼 아름답지 않구려.”

서문표가 다시 무당에게 물었다.

“그대는 하백과 뜻을 나누는 사이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렇지 않다면야 어떻게 이런 일을 주관할 수 있겠소?”
“그렇긴 합니다만….”
“어떻소? 그래, 하백이 그대에게 아내를 보내 달라고 말하던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대는 하백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군. 그럼 잘 되었소. 수고스럽지만 그대가 하백을 만나고 오면 좋겠소. 그대는 지금 곧바로 하백에게 가서, 오늘 처녀를 보내려고 하였으나 사정이 있어서 다음 날 보내게 되었다고 전하도록 하시오.”

서문표는 아전과 병사들을 시켜 큰무당할멈을 물속으로 던지게 했고, 무당은 물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숨이 끊어져 하류 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잠시 후, 서문표가 다시 말했다.

“큰무당할멈은 왜 이리 돌아오지 않는 건가? 제자무당을 시켜 독촉해야겠다.”

곧 제자무당 한 사람이 큰무당과 똑같이 물에 떠 흘러내려갔고,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제자무당 한 사람이 같은 운명을 맞았다. 마지막으로 서문표가 이미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있는 삼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당들이 여자라서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듯하니 삼로가 가서 수고를 해주어야겠소그려. 자, 병사들은 하백의 좋은 친구인 삼로를 물속으로 모시도록 하여라. 그동안 그가 하백을 위해 바친 정성과 노력을 감안할 때 그는 아마도 하백에게 큰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삼로가 물에 던져졌고, 서문표는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혀 절하는 자세로 물을 바라보며 하백에게 간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말했다.

“어허! 어찌하여 무당들과 삼로가 돌아오지 않는가? 이제 보낼 사람은 아전들과 마을의 유지들뿐이구나.”

이에 아전들과 행사를 돕던 유지들이 피가 철철 흐를 때까지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사죄했다. 서문표가 말했다.

“그대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백이 아마도 손님을 잘 대접하느라 시간을 보내는가 보다. 오늘 행사는 제대로 치러지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행사를 제대로 치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 그대들은 모두 돌아가라.”

이 일이 있은 후 하백에게 아내를 바치는 업 지역의 악습은 뿌리째 사라졌다. 이 사건을 기술한 다음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자산(子産)이 정나라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능히 그를 속일 수 없었고(不能欺), 자천(子賤)이 선보를 다스리자 백성들이 차마 그를 속이지 못했으며(不忍欺), 서문표가 업을 다스리자 백성들이 감히 그를 속이지 못하였다(不敢欺)”는 말을 인용하며 셋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난가를 묻는다.

불능기, 불인기, 불감기는 결과는 같지만 이유는 다르다. 능히 속이지 못하는 것은 자산이 속임을 간파하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고, 차마 속이지 못하는 것은 자천에게 고매한 덕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고, 감히 속이지 못하는 것은 서문표에게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 지도자에게서 이 세 가지 덕목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불능기자로서의 통찰력, 불인기자로서의 높은 인격, 불감기자로서의 단호한 사태대응력이 있는 불교 지도자가 그립다.
이중 불감기자로서의 부분은 권력자가 아닌 불교 수행자에게서는 요구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불교 지도자들은 신도들에게 나름의 권력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 없다.

그 ‘권력’이 잘못 쓰여지고 있는 현재 한국불교의 현실이 안타깝다. 2400년 전에도 사교와 정법을 분별하는 서문표 같은 지식인이 있었건만 시대가 21세기에 이르러 있는 지금 한국 불교는 하백에게 처녀를 바치는 것과 유사한 기복 행위를 다반사로 벌이고 있다. 서문표의 무당할멈에 대한 대처는 준엄한 장군죽비가 되어 우리의 등짝을 매섭게 후려갈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64호 / 2018년 1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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