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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고요한 눈을 가진 고타미

기자명 김규보

비천한 신분, 사색하는 습관 선물하다

빈궁함 좌절 않고 감사히 받아
틈만 나면 생명에 대해 사색
성숙한 그녀에 매료된 부호아들
진실함에 결혼해 아들도 낳아

낮은 신분에 옹색하기까지 한 집안에서 태어난 고타미는 먹는 것마저 시원찮아 살가죽이 쪼그라져 붙을 만큼 야윈 채로 성장했다. 생기를 찾아보기 힘든 볼품없는 외모의 그를 두고 사람들은 빼빼 말랐다는 의미의 ‘키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저기 키사고타미가 간다! 유령 같은 키사고타미가 간다!”

집을 나서면 아이들이 둘러싸 이런저런 욕을 쏟아 붓곤 했지만 고타미는 어떠한 대거리도 하지 않았다. 맞받을 힘도 없었거니와 그렇게 할 만큼의 분노를 느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비천한 신분, 궁색한 살림살이, 초라한 외모는 도리어 깊이 사색하는 습관을 안겨 주었다.

‘태어나 살고 죽는 일은 사람마다 같건만, 신분과 재물로 위아래를 가르고 생김새를 찬양하거나 저주하는 이유는 무얼까. 과연 그것들이 사람보다 위에 있다는 뜻일까.’

빈궁함을 탓하며 절망만 쌓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고타미는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고 꾸준히 노력해 나갔다. 틈만 나면 삶에 대해, 생명에 대해 궁리하며 생각에 잠겼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일은 내면에 큰 생채기를 남기지 않았다. 대신에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깊어졌다.

그런 고타미를 눈여겨 본 사람이 있으니 도시에서 손꼽히는 부호의 아들이었다. 부유한 상인 계급에 훤칠한 키, 매끈한 외모의 그는 모든 면에서 고타미와 달랐지만 생각이 남다르다는 점은 같았다. 놀림감이 되어 거리를 배회하는 고타미를 본 순간, 정확하게는 고타미의 깊은 눈빛을 본 순간 그는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부자라서 존경을 받고 잘생겨서 칭송을 받는 일은 그에게 흥미를 주지 못했고, 오히려 재물과 외모를 부질없는 것으로 여겨오던 참이었다. 고타미에게서 성숙한 수행자의 눈빛을 읽은 그날 이후 결혼하겠다고 결심하고 기회를 엿보다 부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깜짝 놀란 부모가 괴성을 지르며 반대했는데,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꿈쩍하지 않고 결심을 밀어붙였다.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한 부모는 결국 마지못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제의를 받은 고타미는 대번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결혼은 자신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체념해 오던 탓도 있었고, 부잣집과의 결혼인 만큼 막대한 지참금을 마련할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처음 본 순간의 느낌을 절절하게 쓴 남자의 서신을 받고 나선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흔들렸다. 게다가 지참금은 일절 필요 없다는 첨언까지 읽고 나자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신을 가져온 이에게 승낙의 의사를 전달하도록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고, 고타미는 하루아침에 부호의 며느리가 되었다. 남편은 내면은 물론 겉으로 드러난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의 고타미를 사랑하고 아껴 주었으나 그의 가족은 달랐다. 그들의 눈에 고타미는 볼품없는 외모에 한 푼의 지참금도 가져오지 않은 천덕꾸러기일 뿐이었다. 사사건건 자신을 해코지하려 하는 남편 가족들의 행동은 이해심 많은 고타미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더욱이 대를 이을 자식을 바로 갖지 못한 것까지 더해 자신을 향한 미움과 분노는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잠을 자고 있던 고타미는 갑자기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메슥거림을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임신이었다. 고타미가 임신했다는 게 확실해지자 가족들은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며 해코지를 멈추었다. 아들이라면 좋을 테지만 딸이라면 어떻게든 집에서 쫓아버리겠다고 작당을 했다. 출산의 날, 산통에 시달리던 고타미가 고통에 찬 소리를 멈추자 아기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가족들이 아이를 들어올렸다. 건강한 사내, 아들이었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64호 / 2018년 1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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