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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강규의 ‘개에게 길을 물어본 적이 있다’

기자명 김형중

산과 동물 사랑하는 수의사 시인
개에게 전생과 죽음 이후를 묻다

개에게 진리와 진실을 물으면
인간의 거짓말에 속지는 않아
절집 개는 법문들은 풍월 있듯
개는 주인 마음과 같은답 줄 것

꽃그늘 봄바람 속에 절집 개를 기다리는/ 마을 분식집 마당 개에게 전생을 물어본 적이 있다/ 누구의 보시물이 될 것인지 괜히 물어본 적이 있다
너를 끌어낸 반 평의 햇빛과/ 너의 망막에 드는 만상이/ 죄다 새장 밖의 그림인데/ 코가 꽤인 나도/ 쓸모없는 자유를 투덜댄 적이 있다
농협사료 냄비 한 개와/ 떡라면 냄비 하나를 마주하고서/ 우리의 전생을 이야기하다가/ 한 입 감사하게 넘기시자고/ 한 그늘 아래, 또 우리의 후생을 이야기했다

개의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이 천만 명을 넘어섰다니 개의 힘(견권)이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회에서는 개를 가축에서 제외시키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고, 개가 가축에서 벗어나 가정의 한 구성원인 가족으로 서열이 정해지고 있다. 보리, 나리, 해피 등 세련된 이름을 지어주고 엄마, 아빠, 삼촌 등 가족의 일원으로 촌수를 부여해 주는 집도 있다.

개가 죽으면 화장해서 49재도 지내주고 위패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이 정도면 개도 권리가 있다. 인간보다 개가 낫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과 신뢰가 대단하다. 인간은 배신하지만 개는 배신하지 않기 때문에 개를 키운다고 한다. 사람도 원래 나쁜 사람은 없다. 상황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필자는 ‘금강경’에 나오는 인간의 네 가지 그릇된 관념인 사상(四相) 즉,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에다 개상(犬相)을 추가하여 오상(五相)을 말하고 싶다. 내가 잘났다고 하는 고정화된 생각(아상), 사람이 우수하다는 고정화된 생각(인상), 중생이 열등하다는 고정화된 생각(중생상), 나의 수명이 영원하다는 고정화된 생각(수자상)이 자기 자신과 사물을 잘못 보게 하는 그릇된 생각이다. 개가 인간보다 위에 있고, 개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개상(犬相)일 것이다.

강규(1957~현재) 시인은 강원도 인제에서 수의사를 하고 있는 산과 동물을 사랑하는 설악산 시인이다. 한때 서울의 고등학생 불교학생회 사무국장을 지내며 불교에 심취했던 미국 유학파 교수였는데, 천상 시인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시인은 “개에게 전생을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의 전생을 이야기하다가/ 한 입 감사하게 넘기시자고/ 한 그늘 아래, 우리의 후생을 이야기 했다”고 읊고 있다. 개에게 길을 물어본 것이다. 개가 무엇을 알아? 그러면 영악한 인간이 아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죽어서 가는 후생(後生), 천당, 지옥, 극락을 갔다가 와 본 사람이 있어? 가보지도 않고 가본 사람처럼 설명을 더 잘 한다. 시인은 차라리 개에게 물어 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전문가에게 물어 보지 않는다. 차라리 우리 집 개에게 물어본다”고 한 노벨상 수상자의 말이 있다. 개에게 진리와 진실을 물으면 적어도 인간이 말하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지는 않는다. 부처님은 열반유훈에서 “진리를 등불 삼고 자기 자신을 등불 삼으라”고 갈파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 시인은 “절집 개를 기다리는 마을 분식집 마당 개에게 길을 묻는다”고 했다. 차라리 말을 못하는 개에게 묻는 것이 적합하다. 절집 개는 법문을 들은 풍월이 있고, 마을 분식집 마당 개는 그래도 세상사를 조금은 안다. 개는 사람과 동류중생(同類衆生)이다. 그래서 개에게 길을 물어보면 개는 주인의 마음과 똑같은 대답을 해 줄 것이다. 어쨌든 개판이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64호 / 2018년 1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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