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고요한 눈을 가진 고타미 ②
44. 고요한 눈을 가진 고타미 ②
  • 김규보
  • 승인 2018.11.20 10:11
  • 호수 1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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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덕에 행복했으나 다시 불행해지다

아들 낳은 후 그녀의 삶 급변
하루 아침에 모두 친절해져
얼마 후 고통속에 아이 숨져

아들을 낳은 이후 고타미의 삶은 달라졌다. 자신을 대하는 남편 가족의 행동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볼품없는 외모에 한 푼의 지참금도 가져오지 않은 천덕꾸러기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대를 이을 아이를 낳은, 그 아이를 길러야 하는 엄마로 존중받았다.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해코지했던 날들과 비교하면 같은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고타미는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으나 그렇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라고 여겼다. 친절하게 대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건 그저 스치고 지나는 바람과 같다고 믿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듯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자식은 달랐다. 요람에 누워 자그마한 몸을 꼼지락거리는 새 생명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을 느꼈다. 열 달을 품은 수고로움의 크기만큼, 아니 그의 몇 곱절보다 더 많이 사랑했다. 한때 고타미는 놀림거리가 될 만큼 못생겼고 가난했다는 사실을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을 고민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드러난 모습의 이면과 진실을 숙고하는 습관은 그래서 생겼던 터다. 그런 고타미도 자식만은 영원할 거라고 믿게 되었다. 가까스로 눈을 뜨고 앙증맞게 손을 흔들다 종종 울곤 하는 저 아이가 변치 않고 머물러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말았다.

그러나 고타미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계절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아프기 시작했다. 숨이 끊길 것처럼 헐떡이는 일이 잦아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모유를 거부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가끔 깨어나 울기도 했지만, 모유를 마시지 않고 깃털 같은 몸을 무서우리만치 떨며 기침을 토해낼 뿐이었다. 원인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병을 잘 고친다는 사람들을 잇달아 불러 보아도 차도는커녕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고타미의 속은 타들어갔다. 할 수만 있다면 대신 아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눈앞에서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달리 방도가 없어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유난히 마른 고타미는 아이가 아픈 뒤 더욱 수척해져 뼈만 남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이도 엄마처럼 나날이 말라 갔다.

그렇게 다음 계절로 넘어갈 무렵의 어느 날, 평소처럼 기침을 토해내던 아이가 고통에 겨운 표정을 짓더니 순식간에 고개를 한편으로 돌려 버렸다. 그러고는 또한 순식간에 일그러졌던 표정을 펴고 평화로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고타마는 오랜만에 보는 아이의 편안한 얼굴이 좋아 손으로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보았다. 손끝으로 전해져야 마땅했을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여 아이를 들어 올려 껴안아 보았는데, 몸 전체가 돌덩이처럼 차가웠다. 입에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이 가물가물하여 아이를 간신히 요람에 다시 눕히곤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깨어났을 때,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의 남편이 보였다. 남편도, 남편의 가족도 혼이 나간 사람처럼 넋 놓아 울기만 했다. 고타미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찾았다. 울고 있던 남편이 애처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우리 아이가 죽었어. 그 작은 것이 얼마 살지도 못하고 죽어 버렸어. 불쌍한 우리 아이를 어떡하면 좋지?” 죽었다는 말은 선명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 못했다. 어떻게 아이가 스치고 지나는 바람과 같을까. 아이와 함께 보낸 매 순간이 영원할 거라고 믿었기에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을 남겨 두고 아이의 방으로 갔다. 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고타미는 더는 아이를 아프게 놔두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잠자고 있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밖으로 나갔다. 어지러웠지만 겨우 힘을 내어 소리쳤다. “저를 도와주세요. 제 아이가 많이 아픈데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죽은 아이를 안고 실성한 채 돌아다니는 고타미를 피해 다녔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65호 / 2018년 1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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