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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오토다케 히로타나의 장애

기자명 김정빈

그에게 신체는 불만족이었지만 인생은 만족

팔과 다리없이 태어난 오토다케
부모는 장애를 개성으로 수용해
다카기 선생은 오토다케의 장애
인정하지 않고 보통아이로 대해
가여워하지 않고 자립심 키워줘
와세다대 졸업 뒤 리포터로 활동
오체불만족 500만부 베스트 등극

그림=근호
그림=근호

1976년 4월6일, 일본에서 한 남자아기가 태어났다. 모든 면에서 건강한 아기였다. 단 한 가지, 그 아기에게 팔과 다리가 없다는 점을 제하고는. 이름하여 선천성사지절단. 병원 측에서는 산모가 큰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하여 “아기가 황달이 심하다”고 둘러대며 한 달간 그녀에게 아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모자의 첫상봉 장면은 잔뜩 긴장하고 있던 병원 관계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엄마는 대성통곡을 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는커녕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하고 말하며 반가움과 기쁨을 한껏 표현했던 것이다. 그것은 놀라움이었다. 그러나 비극을 당해서가 아니라 기뻐서 느끼는 놀라움이었다.

아기에게는 오토다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오토다케에게는 팔다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조금 자라서 감자 모양의 약 10cm가량 되는 팔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동네 사람들은 영락없는 곰 인형 모습인 오토다케를 무척이나 귀여워해 주었다.

오토다케의 부모인 히로타나 부부는 새로 태어난 아들의 ‘개성’을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 개성은 궁금증을 일으키게 마련이었다. 유치원 시절, 오토다케는 짤막한 팔다리를 만져보며 “왜 이러니? 왜 이렇게 됐는데?”라며 궁금해 하는 친구들의 물음에 답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오토다케는 유치원 시절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휠체어를 타며 술래잡기도 하고, 모래밭에서 함께 놀기도 했다. 손발이 없는데 어떻게 모래놀이를 하느냐고? 오토다케는 아이들의 ‘대장’이 되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을 만들어!”라거나, “성을 이렇게 만들란 말야!”라고 지시할 수 있었다. 일본의 문화풍토 탓이었을까. 아이들은 오토다케와 놀 수 있는 한 자신이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오토다케가 대장이 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여느 초등학교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히로타나 부부는 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오토다케를 ‘요가학교’에 입학시켰다. 이 문제 많은 초등학생은 다카기라는 베테랑 선생님에게 맡겨졌다. 궁금증을 일으켜 이것저것 묻는 처음 단계를 지나자 반 아이들은 오토다케를 도와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다카기 선생님의 생각에는 그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인지를 고민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도록 내버려 두고, 할 수 없는 것만을 도와주자”는 결론을 내렸다.

얼마 뒤에 사물함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오토다케는 출발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는 겨우겨우 아이들의 허리 아래까지밖에 안 되는 작은 키로 줄의 맨마지막 자리에 섰다. 도구상자를 꺼내는 일은 악전고투 그 자체였다. 반 아이들 중 아무도 오토다케를 도와주지 않았다. 마침내 오토다케는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쉬는 시간에 오토다케는 나름의 ‘스타’였다. 신기한 것은 직접 보고 만져보야아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이 꿀을 발견한 개미처럼 모여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도 다카기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장애인은 ‘모자란 사람’도 아니지만 ‘특별한 사람’도 아니라고(아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이들의 오토다케를 어떻게 바라보든 다카기 선생님은 그를 보통 아이와 다름없이 대했다.

더 나아가, 다카기 선생님은 오토다케가 전동 휠체어를 타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근육의 힘을 길러야 할 시기이므로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학교 측과 다른 교사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엉덩이를 땅바닥에 붙이고 끌어당기며 걷는 오토다케를 보며 여선생님들은 가엾다는 말을 그치지 않았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이 되면 반대 의견은 더욱 거세졌다.

조회 시간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당연히 오토다케는 음악에 맞춰 행진하며 교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교실에 모두 들어간 지 오랜 시간 동안 오토다케는 낑낑대며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선생님들이 항의했지만 다카기 선생님은 끄떡도 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였다.

다카기 선생님은 생각했다. ‘나는 지금 오토에게 가장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오토에게 필요한 것은 가여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토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옳았다. 오토다케는 자신의 힘으로 거의 모든 필요한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는 명문 와세다대학을 졸업했으며, 방송 리포터로 활동했으며, 교사 자격을 취득하여 초등학교에서 3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가 와세다 대학 재학생이던 때 펴낸 책 ‘오체불만족’은 일본에서 500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130만부가 팔렸다. 사람들은 “신체는 불만족이지만 인생은 만족”이라는 그의 삶에 감탄했다.

그는 히로토미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오토다케는 여배우 베키와 불륜을 저질렀다. 히로타나는 처음에는 남편을 감쌌지만 두 사람은 곧 이혼했고, 얼마 후에는 전남편인 오토다케를 고소했다. 오토다케는 결혼 생활 중 다섯 명의 여성과 불륜을 지지른 것이 알려졌다.

몸의 기능이 불완전한 사람을 예전에는 ‘병신’이라 했었다. 그 후 하지만 경멸이 담긴 그 호칭은 ‘장애인’, 또는 ‘장애우’라 불리고 있다. 장애인에 상대되는 사람으로서의 ‘정상인’이라는 말 또한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가정하는 어법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비장애인’이라 불린다.

이 변화는 장애인들을 존중하려는 배려심을 담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신체적인 기능이 부족한가 그렇지 아니한가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존중받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점이고,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장애를 가진 상태로 자립해야만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점을 다카기 선생님은 잘 알고 있었고, 그 훌륭한 선생님의 지도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오토다케 히로타나는 훌륭하게 자립했다. 다만, 그가 육체적으로는 자립했으나 불륜에 빠진 것은 아쉽다. 불륜을 저지른다는 것은 정신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이고, 정신적인 결함은 장애의 일종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크고 작은 정신적인 결함이 있다. 오토다케 히로타나의 사례를 보며 우리는 내가 부처님 같은 ‘정상인’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65호 / 2018년 1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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