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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구조를 먹고 자라는 가짜뉴스

1993년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가 있었다. 탤런트이자 영화배우였던 신신애씨가 재미있는 가사를 붙여 발표한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 가사에는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대목이 있다. 당시 이 가사는 세태를 풍자하는 코믹한 표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93년이면 우리 사회가 대량소비 사회로 진입하면서 유명 브랜드의 상품을 선호하게 되고, 이를 이용한 거짓 상술이 점차 커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이니 만큼 그 당시로서는 이러저러한 가짜 상품에 대한 경각심과 이를 단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때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은 단순히 유명 브랜드의 가짜 상품만이 아니라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가짜가 다시금 판을 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뉴스’가 여기저기서 생산되고 있다. 가짜뉴스는 재미삼아 한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생산되는 것들도 많으며, 특히 선거철이 되면 이런 ‘가짜뉴스’에 대응해야 하는 것이 커다란 문젯거리가 되어버렸다. 또한 뉴스의 한 부분을 시중에 나도는 ‘가짜뉴스’를 걸러내기 위한 ‘팩트체크’라는 코너가 차지하게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뉴스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도대체 ‘팩트’가 뭔지를 먼저 따져야 하는 세태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의 한 복판에서도 ‘가짜뉴스’와의 힘겨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발표한 보고서와 이를 보도한 뉴욕타임스를 대상으로 한 가짜뉴스 소동이 그것이다. 마치 북한이 엄청난 속임수, 기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한 보고서와 뉴스는 마침 미국에서 중간선거가 끝나고, 그리고 북미간의 협상 교착이라는 국면에서 교묘하게 북미 대화와 협상을 방해하거나 현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과의 협상에 장애물을 설치하려는 정치적 목적의 냄새가 다분히 묻어났다. 이 뉴스는 여러 전문가와 기관 등에 의해서 비판받고 있지만, 한번 쏟아져 나온 북한 불신에 대한 뉴스의 파급력은 앞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가짜뉴스가 우리에게 주는 더 중요한 교훈은 북미간 상호 불신의 구조 속에서 가짜뉴스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70년을 적대해 온 두 나라가 한두 번의 협상으로 불신을 제거하고 상대방에게 무한의 신뢰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기에 지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그 무엇보다도 두 나라간의 ‘신뢰’구축을 가장 앞자리에 놓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또 하나의 교훈은 북미간 협상의 국면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불신과 협상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세력이 미국 내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앞으도로 이와 유사한 ‘가짜뉴스’ 혹은 아주 작은 팩트에 기초한 과장과 왜곡의 뉴스가 생산되고 전파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앞으로도 우리 정부, 그리고 북한을 포함한 미국의 협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원인의 밑바탕에서는 서로간의 신뢰 부재에 있다. 북한과 미국의 70년에 걸친 적대와 갈등 속에서 힘겹게 협상을 시작했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둘 사이의 불신이 쉽게 제거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신의 구조 속에서 ‘가짜뉴스’는 독버섯처럼 자라날 수 있는 자양분을 얻게 된다. 결국 우리 정부, 그리고 미국과 북한 모두 더 힘겨운 노력을 하는 것 이외에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그 길은 작은 신뢰라도 하나씩 쌓아가면서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하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chungyc69@sogang.ac.kr

 

[1466호 / 2018년 11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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