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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고요한 눈을 가진 고타미 ③

기자명 김규보

누더기 입은 비구니 중 제일 추앙

죽은 아들 놓지 못하고 집착
겨자씨 법문 듣고 정신 차려
출가해 수행자의 모범 우뚝

축 늘어진 아이의 시체를 안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고타미는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죽은지도 모르고 아픈 아이를 살려 달라며 울부짖는 모습을 안쓰럽게 여겨 물과 음식을 건네주는 이도 있었지만 대개 손가락질하거나 흉내 내며 비웃곤 했다. 더욱 수척해져 뼈만 앙상하게 남은 데다 말과 행동마저 영락없이 실성한 사람의 그것과 똑같아 우스꽝스러운 행색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런 고타미에게 누군가 다가와 물을 주며 말했다. “당신의 아이는 죽었습니다. 모르겠습니까?” 고타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 아이는 많이 아프긴 해도 살아 있습니다.” 고타미의 결연한 눈빛을 보고 그는 대뜸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대단한 명의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라면 병을 낫게 할 것입니다. 계시는 곳을 알려 줄 터니 당장 가서 처방을 받아 보세요.”

고타미는 귀가 솔깃하여 한달음에 명의가 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무로 둘러싸인 그곳에선 수많은 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눈을 감은 채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병만 고치면 된다고 여겨 그가 알려 준 대로 붓다라는 이를 찾았다. 죽은 시체를 살아 있는 것처럼 여기며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고타미의 모습에 놀란 일부 수행자가 성급히 붓다에게로 데려갔다.

“제 자식이 무척 아픕니다. 이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제발 이 아이를 살려 주세요.” 붓다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인이여.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서 오라.”

붓다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타미는 마을로 뛰어 내려가 겨자씨를 구걸했다. “여보시오. 겨자씨 한 줌만 주시오. 이 마을의 겨자씨로 내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겨자씨 한 줌 정도는 어렵지 않게 내어 줄 수 있는 형편이었다. 겨자씨를 건네는 집 주인에게 고타미가 물었다. “혹시 이 집에 죽은 사람이 있나요?” “왜 없겠습니까. 1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실망한 고타미가 옆집, 그리고 그 옆집에 들어가 물어봤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붓다를 만났을 땐 아침이었으나 마을의 모든 집을 돌아다니고 나니 어느새 밤이었다. 고타미는 한 줌의 겨자씨도 얻지 못했다. 가족이든, 친척이든 한 사람도 죽지 않은 집은 없었다. 품에 안은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살려 달라고 외치기만 했을 뿐,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 심하게 부패한 얼굴, 아이는 죽은 채였다. 아파하던 아이가 가쁘게 기침하다 평화로운 표정으로 숨을 거두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잊었던 순간이었다.

‘어떤 집에선 부모가, 형제가, 어떤 집에선 자식이 죽었구나. 죽음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었어. 내 아이만 죽는 게 아니었거늘 어찌 어리석은 망상에 스스로 괴로워했을까.’

자식이 영원할 거라는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던 고타미는 한순간 정신을 차리고 다시 붓다에게로 갔다. “여인이여. 그대만 자식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죽게 된다. 삶에 집착한다면 죽음은 홍수가 마을을 휩쓰는 것과 같을 것이나 집착에서 벗어나면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고타미는 그 자리에서 출가를 허락받아 머리카락을 밀고 삶과 죽음을 관조하며 수행해 나갔다. 어느 날은 바람에 흔들리던 촛불이 꺼질 듯이 수그러들었다가 이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일어났다 사라지고, 사라지려다 일어난다. 모든 것이 멈추지 않고 변화하고 있구나.’

고타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게송을 읊었다. “어둠의 무더기가 흩어졌다. 죽음을 정복하였으니, 더는 번뇌가 없어 편안할 따름이다.”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게송을 남기며 수행자의 모범이 된 고타미를 붓다는 “누더기를 입은 비구니 가운데 제일”이라고 칭찬했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66호 / 2018년 11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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