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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스님에게 인가 받았다는 여성

기자명 이제열

부처님 이외 누가 인가할 수 있나

어느 여성불자, 자신의 언니가
인가받았다면서 경배 강요하자
안 받아들이겠다며 갈등 커져
내가 깨달았다는 건 미혹 불과

예전에 한 수행 단체의 법회에 초청을 받아 1년 동안 ‘금강경’에 대해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법회가 끝나고 점심 공양을 하고 있는데 한 여성 불자가 잠시 드릴 말씀이 있다며 다가왔다. 그 여성 불자는 오늘 들은 ‘금강경’ 강의가 너무 마음에 닿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칫 오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 불자에 따르면 신심이 돈독한 언니가 있었다고 한다. 그 언니는 언제부터인가 초기불교를 가르치는 수행처에 나갔고 그곳에서 열심히 법문을 듣고 수행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언니를 만나 얘기하는 도중 의아스러운 말을 했다. 자신은 이제부터 보통사람이 아니니 너도 나를 보면 경배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면서 자신을 수다원에 오른 성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언니라는 사람은 자신이 다니는 수행처의 스님이 그렇게 인가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성인이라며 동생에게 경배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동생인 그 불자는 언니에게 그렇게 할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언니가 수다원에 올랐는지 아라한에 올랐는지 그건 언니의 일이고 하는 행동은 예전의 언니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경배는커녕 존경심도 생기지 않는다고 대꾸했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언니는 자기에 대해 섭섭했는지 대화도 잘 않고 부드럽게 대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불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오늘 법사님의 ‘금강경’을 들으니 수다원이 수다원에 들었다고 한다면 진정 수다원이 아닌데 왜 언니는 자신이 수다원이라고 내세우면서 수행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경험에 의하면 이런 일은 그 불자만 겪는 것은 아니다. 불교 일을 하다보면 가끔 자신이 견성을 했느니, 화두를 타파했느니, 뭐가 터졌느니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심지어 자신을 부처라고 칭하면서 명함에다 아무개 불(佛)이라고 이름까지 새기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어떤 수행단체에서는 아예 사람들의 내적 체험을 인정하는 인가 과정을 두고 이를 거쳐야만 제대로 공부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 불자 언니가 다닌다는 단체의 스님도 신도들에게 당신은 지금 어떠한 과위를 얻었는지를 인가해 주는 방법으로써 수행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단체에 다니는 사람들은 기존 단체나 신도들보다 결집력이 강하고 스님에 대한 신뢰도 높다. 인가제도가 사람의 마음을 끌게 하고 수행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도들에게 어떤 경지에 올랐다고 단정적으로 인가를 해주는 일은 자못 경계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수행에 대한 인가는 함부로 주거나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 외에는 누구도 수행자에게 인가를 내려준 일이 없으며, 옛 선사들도 번뇌를 완전히 끊은 확철대오가 아니면 결코 인가해주지 않았다.

‘금강경’에도 수보리가 ‘진정한 수다원은 수다원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아라한은 아라한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아라한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부처님은 저를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했다. ‘원각경’에도 ‘얼음이 녹아 물이 되었다면 물이 되었다고 여길만한 얼음이 없는 것처럼 번뇌로부터 벗어난 자에게 번뇌로부터 벗어났다는 번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사람들이 나는 깨달았다거나 인가를 받았다고 여기는 행위는 또 다른 미혹에 휩싸여 있는 자임을 의미할 수 있다. 번뇌를 버리고 성스러운 과위를 얻었다면 그 과위마저 버리고 진정 얻은 바가 없어야 한다. 세간이 공하듯이 출세간도 공하다는 말씀을 상기시켜 인가나 과위에 머물지 말아야 올곧은 수행인이라 할 것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67호 / 2018년 1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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