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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교를 공부하는가

기자명 백승권
  • 법보시론
  • 입력 2018.12.10 09:42
  • 수정 2018.12.10 15:02
  • 호수 1468
  • 댓글 0

“첫 아이를 낳고 돌아오는 승용차 안이었어요. 전 아이를 안고 뒷좌석에 앉아 있었죠. 그때 어떤 낯선 느낌이 드는 거예요. 남편이 운전하는 뒷모습을 처음 본 거죠. 아이를 낳기 전엔 항상 남편 옆 조수석에 앉아 있었죠. 운전하는 뒷모습을 볼 일이 없었죠. 짠한 마음이 들더군요. 남편의 어깨가 더 무겁고 축 처진 것처럼 보였어요. 빠듯한 살림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으니 그 부담이 어땠을까.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시큰해져요.”

지난 3월 충북 괴산에서 귀농자, 귀촌인 여성들에게 글쓰기 워크숍을 했다. 거기 참석했던 한 분의 글이다. 난 이 글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글 속에 글쓰기의 본질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글이란 무엇일까요? 수없이 많은 정의가 있지만, 저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익숙해 나와의 거리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풍경, 사물, 상황, 생각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다르게,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 여기로부터 글쓰기는 출발합니다.”

워크숍이 끝나고 일산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도 그 글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어찌 보면 좋은 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글 토막이다. 아마 내가 그 글 토막에 의미와 감정을 깊게 투사했기 때문에 일 것이다. 오랫동안 잊었던, 더 정확히는 팽개치고 있던 글쓰기의 알짬을 다시 찾은 것 같아 마음이 달떴던 모양이다. 

국도를 지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기분은 이내 우울함으로 바뀌어 갔다. 돌아보니 저런 글을 써보지 못한 지 오래됐다. 주로 업무용 글쓰기 강의를 가르치고 글쓰기의 기능과 법칙을 설명하는 글을 쓰다보니 글쓰기를 매뉴얼과 패턴으로 설명하고 루틴을 강조한다. 어떤 장르는 탬플릿 수준으로 정형화, 도식화하라고 가르친다. 실제 그것이 직장인이 대부분인 수강생에게 큰 도움이 된다. 강의를 마치고 난 후 퍼포먼스가 좋았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문제는 나의 글쓰기다. 어느 새부터인가 자연스러운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글을 쓸 때마다 마음을 흔들었던 맥놀이가 멈춘 지 오래다. 내가 써야 할 글의 구성과 전개, 결론이 너무 자명해 미지의 땅을 걸어본다는 설렘은 고사하고 지겨움과 먼저 싸워야 했다. 마감이 채권추심인처럼 지키고 있으니 꾸역꾸역 빈 종이를 메우긴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아득해질 때가 많다.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늘고 꼰대가 된다고 한다. 경험을 많이 했으니 어떤 일의 진행 방향이 뻔할 것이라 믿는 것이다. 익숙한 패턴으로 현실을 손쉽게 재단해버린다. 거의 매일처럼 계속되는 글쓰기 강의 경험이 나를 글쓰기의 꼰대, 생각의 꼰대로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몇 년 전부터 조심스럽게 자가 진단해본다. 진단만 했을 뿐, 예정된 강의 일정을 부지런히 따라가느라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으로 유명한 미국의 경영컨설턴트 스티븐 코비의 말처럼 운전하느라 바빠 주유소에 들를 새가 없다.

지금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생각의 경로, 두터운 통념을 깨는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다. 나와 비슷한 업종의 어떤 사람들은 고액의 수강료를 내며 해외 유수 대학이나 교육기관의 인텐시브 코스를 다녀온다고 한다. 유명 석학이나 구루를 만나기도 한다. 내게 그런 것을 추천한 지인도 있다. 한때 솔깃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내게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그래서 다시 내 손은 ‘부처님의 생애’와 ‘틱낫한 명상’으로 간다. 농경제의 떠들썩한 축제 현장을 떠나 잠부나무 아래로 깃들었던, 당연한 것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예감했던 싯다르타를 만나는 것이다. 그릇을 깨끗이 닦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른 마치고 차를 한 잔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를 하는 순간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아이를 안고 운전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처음 본 괴산의 한 여성처럼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하기 위해 불교를 공부하는 것이다. 

백승권 글쓰기연구소 대표 daeyasan66@naver.com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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