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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이승만을 미륵불로 칭송했던 슬픈 역사

기자명 이병두

용미리 미륵불 옆 탑 세워 이승만 찬탄

이승만 지시로 아기 부처님 건립
주지는 땅에 엎드려 절하며 환대
4·19혁명 뒤에는 흔적마저 제거

1954년 10월28일 열린 봉안식(좌)과 미륵불 뒤에 새롭게 조성된 아기 부처님(우).
1954년 10월28일 열린 봉안식(좌)과 미륵불 뒤에 새롭게 조성된 아기 부처님(우).

‘용미리 미륵불’로 잘 알려진 경기도 파주 용암사에서 1954년 10월28일 이승만 대통령, 함태영(목사) 부통령, 이기붕 민의원의장을 비롯하여 내무부장관, 문교부장관, 경기도지사, 파주군수 등과 미국대사 부부, 미군 사단장 등이 참석하여 ‘미륵불 이대통령각하 기념탑 봉안식’이 열렸다.

이 행사를 담은 흐릿한 사진을 보면 행사장 장막 위로 태극기가 휘날리고 그 가운데에는 가로로 ‘미륵불 리(이)대통령각하 기념탑 봉안식장’, 양 옆으로는 세로로 ‘국보적 존재’ ‘지성으로 기리(길이) 보존하자’라고 쓴 펼침막을 달았다. 그 뒤로는 미륵부처님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 행사를 전하는 ‘대한뉴스’ 제48호 ‘미륵불 보수 제막’이라는 동영상을 보면 이승만이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주지가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리는 장면도 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코미디’로 여기며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랬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만드는 ‘슬픈 역사’가 벌어진 사연은 이렇다.

1953년 10월11일 이승만이 용암사를 돌아보면서 “미륵불을 개수(改修)하고 새로 아기 부처님을 건립하라”고 지시하였다. 아들을 낳고 싶다는 그의 소원 때문에 이런 지시를 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파주군에서는 아기 부처뿐 아니라 7층짜리 이승만 기념 돌탑까지 건립하는 과잉 충성을 한 것이다. 문제는 군수의 아부보다도 이 자리에 이승만이 부통령 및 여러 장관과 미국 대사‧미군 사단장까지 대동하고 참석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권력자, 특히 독재자에게 이런 칭호를 헌납하는 것은 후진국에서 흔한 일이긴 하다. 아프리카 자이르의 독재자 모부투에게는 ‘위대한 예언자이자 존엄한 지도자’ ‘우리의 해방자이자 구세주’라는 찬사가 넘쳐났으며, 가나 대통령 크와메 은크루마에게는 신문에서 “우리 역사에서 해방자이자 구세주,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로 기록될 것”이라고 하였고, 정부 공식 홍보물에서 “그가 우리에게 베푸는 은혜는 허공의 공기가 베푸는 은혜보다 위대하다”는 칭송이 넘쳐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승만만 그랬던 것도 아닌데 뭐 어떠냐”고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이 몰락한 뒤 서울 남산의 거대한 이승만 동상을 비롯하여 전국에 세워졌던 그의 동상들이 무너져 부서졌다. 용미리 미륵불 옆에 그의 지시로 조성되었던 아기 부처님과 이승만 기념탑도 철거되어 용암사 대웅전 오른쪽 샘가로 옮겨지고 미륵불상 아래 벼랑에 새겨놓았던 이승만 기념탑과 관련 명문(銘文)들도 연마기로 갈아서 보이지 않게 하였다.

이런 슬픈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이 예산 특혜를 베풀거나 전각 건립을 도와주면 ‘미륵불’이라 칭송하고 공덕비를 세워주고 싶어 하는 이들이 생겨날까봐 걱정스럽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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