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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발원해 행하면 물러남 없이 성불할 것

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㉘

모든것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에
극락보살의 깨달음 높고 광대해
대지처럼 평등하게 받아들이고
물과 같이 모든 티끌 씻어 주어

아미타 부처님께서 상주하는 극락세계보살도.
아미타 부처님께서 상주하는 극락세계보살도.

“극락세계보살의 지혜는 큰 바다와 같아 광대하고 깊으며, 보리는 수미산과 같아 높고 광대하며, 몸에서 나오는 위신광명은 해와 달을 뛰어넘으며, 그 마음은 설산과 같아 정결하고 순백하느니라(其智宏深, 譬如巨海. 菩提高廣, 喻若須彌. 自身威光, 超於日月. 其心潔白, 猶如雪山).”

극락세계보살의 지혜가 깊고 광대함은 마치 큰 바다와 같습니다. 실제로 큰 바다를 보살의 지혜와 견준다면 그 차이는 너무나 멀고멉니다. 견주어서 꼭 맞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지 한 가지와 비교해 보아서 우리로 하여금 이로부터 체득하게 합니다.

보리는 깨달음입니다. 여러 가지로 깨달아,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보살은 왜 높고 광대한 깨달음을 성취할까요? 지혜가 진실로 근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를 제일구로 놓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그 뒤에 오는 모든 것은 지혜에 의지해야 합니다. 극락보살은 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그의 깨달음은 높고 광대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미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미’는 범어로 뜻은 묘고(妙高)입니다. 온갖 보배로 이루어진 것을 묘라고 합니다. 따라서 산이 대단히 높음을 가리킵니다.

보살의 몸에서는 모두 광명이 나옵니다. 그의 광명은 해와 달을 뛰어넘습니다. 이는 덕이 높음을 보여줍니다.

설산은 세존께서 즐겨 쓰신 비유로 바로 히말라야산입니다. 일년내내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어 온통 새하얗고 매우 깨끗하게 보입니다. 이는 보살의 마음이 청정하고 티끌 하나에도 물들지 않음을 비유합니다. 육조 대사께서 하신 말씀인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처럼 이 마음은 깨끗합니다.

“극락세계보살의 인욕은 대지와 같아 일체를 평등하게 받아들이고, 청정한 행은 물과 같아 온갖 티끌과 때를 씻어주며, 지혜는 타오르는 불과 같아 번뇌의 잡초를 태워 없애주며, 상에 집착하지 않음은 바람과 같아 아무런 장애도 없느니라(忍辱如地, 一切平等. 淸淨如水, 洗諸塵垢. 熾盛如火, 燒煩惱薪. 不著如風, 無諸障礙).”

여기서 우리는 제불보살은 모두 견딜 수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인욕하기 위해서는 대지의 덕을 배워야 합니다. 대지를 보시면 당신이 향수를 엎질러도 그것은 당신이 나를 좋아해서 날마다 나에게 향수를 뿌려준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매일 똥을 엎질러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고 당신이 밉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날마다 나를 못살게 굴어도 전부 견딜 수 있습니다. 인욕은 대지처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견디지 못하는 것도 하나도 없어 일체를 평등하게 받아들입니다.

청정행을 닦으려면 무시이래 물들었던 것을 씻어내고 닦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본경에서 “마음속의 때를 깨끗이 씻고 행동을 바꾸라(灑心易行)” 가르치십니다.

타오르는 불은 지혜를 비유한 것으로 지혜는 언제나 현전하여야 합니다. 지혜가 현전하면 번뇌를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번뇌는 장작과 같아서 불이 한번 타오르면 그것을 완전히 태워버립니다. 번뇌는 땔감을 마련하는 것에 비유하고, 지혜는 불을 지피는 것에 비유합니다. 지혜를 사용해야 진정으로 번뇌를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선정은 번뇌를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인욕과 선정은 번뇌를 조복시켜도 소멸시킬 수는 없습니다. 지혜가 열려야 번뇌가 사라집니다. 사실진상을 잘 이해하여야 번뇌가 생기지 않습니다.

안으로 몸과 마음의 상에 집착하지 않고, 밖으로 제법의 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자재하여 장애가 없습니다. 일체의 장애는 모두 집착에서 생깁니다. 집착하면 장애가 있지만, 집착하지 않으면 장애가 없습니다. 집착하지 않음은 바람과 같습니다. 바람은 집착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집착하면 바람은 사라지고 멈춥니다.

“극락세계보살은 천둥 같은 범음으로 어리석은 중생을 잘 깨우쳐 주며, 감로의 법을 비처럼 뿌려 중생을 적셔주며, 심량이 허공과 같이 광대하여 대자비심으로 평등하게 대하여 주며, 연꽃과 같이 청정하여 진흙탕을 여의게 하느니라. 대자비심이 니구류 나무 같아 넓은 그늘로 덮어주며, 지혜가 금강저와 같아 사견과 집착을 깨뜨려 없애주며, 신심과 원심이 철위산과 같아 온갖 마군과 외도들이 흔들어 놓을 수 없느니라(法音雷震, 覺未覺故. 雨甘露法, 潤衆生故. 曠若虛空, 大慈等故. 如淨蓮華, 離染汚故. 如尼拘樹, 覆蔭大故. 如金剛杵, 破邪執故. 如鐵圍山, 衆魔外道不能動故).”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며 설법하는 음성은 천둥과 같습니다. 천둥소리는 멀리서도 들려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빗물은 하늘에서 떨어져서 수목과 화초 모두를 촉촉하게 축여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법은 일체중생의 선근을 축여줍니다.

보살의 심량은 허공처럼 넓고 큽니다. 그래서 보살은 일체중생에게 평등한 자비심, 대자비를 베풉니다. 불교에서는 연꽃으로 법을 표현합니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나오지만, 그것에 물들지 않습니다. 진흙탕은 육도의 환경, 경계를 비유합니다. 우리는 육도에 살지만, 육도의 갖가지 습기에 물들지 않아 연꽃처럼 물듦을 여읩니다.

니구는 범어로 인도의 큰 나무의 일종입니다. 이 나무는 매우 광대하게 덮고 나무 아래가 매우 시원합니다. 옛날에는 ‘무결수(無結樹)’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대개 이 나무의 길이는 매우 높고 크며 가지가 매우 작아 “무결”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대승법이 광대한 중생을 덮음을 비유하는데, 특별히 정토종의 염불법문을 가리킵니다. 구법계의 중생이 인연이 있어 접촉하게 되면 모두 수승한 이익을 얻습니다. 만약 믿고 발원하며 행할 수 있다면 모두 일생에 왕생하여 물러남 없이 성불하니, 정말로 가장 큰 나무의 그늘과 같습니다.

마치 금강역사가 손에 쥔 병기 무기인 금강저와 같습니다. 고대에 이 같은 무기는 매우 예리하여 일체 병기는 그것에 부딪히면 파괴되고, 금강저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금강저는 가장 예리하여 삿된 집착을 타파할 수 있음을 비유합니다. 철위산은 신심과 원심이 견고하게 다져짐을 비유합니다. 마라와 외도의 일체 지견에 모두 동요되지 않아 이 사람은 결정코 정토에 왕생합니다.

이상의 열다섯 구는 모두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로부터 보살의 덕능이 불가사의하고, 지혜와 덕능이 대단히 광대함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나면 모두 이런 모습을 합니다. 이는 모두 불력의 가지(加持)입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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