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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굴석굴과 운강석굴 제6굴

골굴석굴·운강석굴, 인도 양식 수용한 건 같지만 석실구조서 차이

경주 골굴석굴, 반 개착형태 석굴
인도·중국석굴 등 원조에 가까워
운강 6굴, 인도 석굴형식 수용해
중국식 석굴로 재탄생한 대표격

인도 양식 변형한 골굴·운강석굴
‘법화경’ 토대로 조성한 건 공통
골굴석굴 주실, 긴장 방형 구조
운강 6굴, 정사각형 형태로 달라

경주 골굴석굴 마애불좌상.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의 이 논문은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가 12월8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에서 ‘골굴석굴과 중국석굴’ 주제로 개최한 제42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것이다. 편집자

 

등 원조 석굴에 가까운 대표적인 석굴이 경주의 골굴석굴이다.

골굴석굴의 구조는 인도나 중국석굴의 차이티야 석굴을 다소 간명하게 변모시킨 것이 특징이다. 전실은 평면이 4각형이지만 입구가 정면에 없고 측면에 있으며 벽면은 개착하여 조성한 석실의 석벽이지만 지붕은 목조로 가구한 것이 중국석굴인 운강 6굴과는 다른 것이다.

주실은 완전 석굴형식으로 평면이 긴 장방형이어서 아쟌타 19·26굴에 가깝지만 정4각형의 운강 6굴과는 다르다. 또한 인도 후기 차이티야 석굴의 후진에 있는 탑상도 없고 운강 6굴의 중심에 있는 상이 새겨진 탑주(塔柱)도 없어 단순화된 구조이다. 골굴 법당굴에는 운강 6굴 오진의 본존 3존불상도 없고 각 4벽면이나 탑주 4면에 2층이나 3층으로 구성된 충만한 부조상이 간략화 되어 주실 좌우에 부조상 1구씩만 확인되는 것이 특징인 것이다. 원래 더 많은 불상이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인도의 아쟌타 26·19굴이나 운강 6굴의 화려하고 충만한 조각은 변모되어 간명하게 되었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운강 6굴은 인도 석굴 형식을 기본으로 수용하여 중국식 석굴로 재탄생한 대표적인 석굴이라 할 수 있다. 운강 6굴 구조형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인도의 전랑(前廊)과 목조 서까래나 문가구를 목조 누각식 전실가구로 재창안하고 있는 점이다. 인도 제2기 차이티야 석굴인 아쟌타 19굴이나 26굴의 전랑부분이 전실 목조누각으로 변형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전실은 아쟌타 26굴의 전실 등과 동일하게 직사각형이어서 좀 더 명확하게 하고 있다. 셋째, 주실은 정사각형인데 이것은 아쟌타 1·2굴이나 17굴 특히 17굴의 정사각형 평면에 중심부의 4각 열주 안을 탑주로 변형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탑주는 19굴이나 26굴들의 대승불교 차이티야 불상 부조탑을 중앙으로 이동시키고 거대하게 변형시켰다고 할 수 있다.

넷째, 후진의 북벽 불감 속 삼존상은 인도 아쟌타 1·2굴 등의 후진 감실 속 불상배치와 동일한 불감으로 이를 운강 등 중국석굴에 활용한 예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이렇게 보면 운강 6굴은 인도의 대표적 차이티야 석굴인 아쟌타 19·26굴 등의 전실을 중국식으로 변형시킨 것이며, 주실은 아쟌타 등 후기 비하라 석굴(1굴, 2굴, 17굴)의 정방형 평면에 후기 차이티야 석굴(19·26굴)의 후진에 있던 불상이 부조된 탑을 중심으로 이동하여 탑주 식으로 변형하고 후진의 불감을 좀 더 웅장하고 화려하게 변형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인도석굴의 여러 요소를 중국식으로 변용하거나 활용하여 재개조, 재정립한 석굴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 석굴형식을 기본으로 중국식 석굴로 재탄생한 대표적 석굴로 꼽히는 중국 운강 6굴 전경.

운강석굴은 대승불교사상에 의하여 조성됐다. 이 가운데 ‘법화경’ ‘유마경’ ‘미륵경’ ‘잡보장경’ 등의 사상이 조화되어 조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운강석굴 제2기에는 ‘법화경’ ‘견보탑품’을 형상화한 석가·다보 2불병 좌상이 유난히 많이 조성되는데 5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5굴과 함께 조성된 6굴의 탑주 북면 하층의 주불로 2불병 좌상이 부조되었다시피 ‘법화경’ 사상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탑주의 주불격인 탑주 남면 하층의 소조불좌상도 설법하는 석가불로 생각되므로 이 역시 ‘법화경’ 설법 장면으로 보인다. 또한 탑주 서면 하층 미륵불의상이나 동면하층의 미륵보살교각상 또는 서벽면 중층 미륵교각상 역시 미륵상·하생경과 함께 ‘법화경 수기품’의 사상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탑주(塔柱)의 탑과 탑주·상층의 9층 목탑, 4벽 상층의 5층 목탑등도 ‘법화경’의 경탑 건립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어쨌든 구마라집이 ‘묘법연화경’을 번역한 이래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삼승즉일승(三乘卽一乘)의 사상이 크게 대두되어 중국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인들에게 널리 신앙되었던 것이다. 석가삼존불상의 조형도 이 ‘법화경’ 사상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법화경’은 불교미술사상 획기적인 발자취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법화경’ 사상과 함께 ‘미륵경’사상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겠다. 탑주 서면 하층의 미륵불의상은 ‘미륵성불경’과 ‘미륵하생경’ 사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탑주 동면 하층과 서벽면 하층 미륵교각상은 ‘미륵상생경’의 사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수행을 통하여 미륵정토인 도솔천에 상생하거나(上生經), 장래 미륵이 하생하여 성불한 후 중생을 제도한다는 메시아사상은 중국인들에게 크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5세기부터 크게 유행하였고 이 6굴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유마경’ 사상도 대승불교의 완성사상이어서 중국인들에게 크게 중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벽면 중층 중심에 석가, 유마, 문수보살 3존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삼존상은 석가불이 중심이 되어 유마와 문수가 날카롭게 문답식 토론을 하는 장면이다. 주로 유마와 문수가 마주 보고 대담하는 장면이 많지만 석가가 증명이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장면이다. 대승불교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유마거사의 불이사상(不二思想)이 집약된 ‘유마경’ 사상을 쉽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골굴석굴과 운강 제6굴은 인도 차이티야 형식이 원형이지만 인도 차이티야 석굴의 기본형에서 여러 가지로 변형을 일으키고 있다. 골굴과 운강 6굴, 두 석굴의 구조형식부터 비교하고자 한다.

운강 6굴은 전실이 직사각형에 입구의 누각식 목조건물과 주실도 이 정사각형인데 그 중심에 탑주가 서 있고 제일 안쪽 오진에는 감실 속에 3존 불상을 봉안한 구조이다. 인도의 전형적 차이티야 후기 석굴(아쟌타 19·26굴)의 전실 직사각형, 주실 말발굽형에 후진 탑상 형식에서 주실은 아쟌타 비하라 1·2굴의 정사각형과 오진의 감실 속 불상을 따오고 후진의 탑상을 중심으로 옮긴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해 골굴석굴 법당굴은 전실이 사각형이지만 벽만 석실로 하고, 지붕은 석굴지붕이 아닌 목조지붕이며, 주실은 인도식 말발굽형에 가까운 긴 직사각형적이면서 탑주나 탑이 전혀 없고 오진이나 벽면에 불상만 새긴 형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둘째, 전실의 구조이다. 운강 6굴의 전실은 입구가 누각식 4층 목조건물(정면 5칸, 측면 1칸)이고 직사각형 석실이어서 인도 차이티야 전실의 출입구와 광창 및 처마구조와는 다른 중국식 목조건물이 가구된 것이 큰 특징인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골굴의 전실은 석실 자체는 4각형 구조로 동일하나 운강 6굴의 입구 목조 가구가 골굴의 전실 지붕으로 더 확대된 것이 다른 점이다. 즉 골굴의 전실 석벽 위의 지붕은 석조가 아닌 목조인 것이 다른 점이다.

셋째, 주실의 구조이다. 운강 6굴의 주실 구조는 앞에서 말했다시피 평면이 정4각형 석실이고 중앙에 정사각형 탑주 기둥이 서 있으며 안쪽 오진에 불감을 설치하고 본존 3존불을 봉안하고 있는 형식이다. 이런 형식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후기 비하라 형식인 아쟌타 1·2굴의 방형 주실과 오진의 불감 속 본존불 봉안 형식을 채용하고 탑주는 아쟌타 19·26굴 차이티야 굴의 후진의 본존불상을 부조한 탑을 중심으로 이동한 형식인 것이다.

인도의 차이티야 석굴과 비하라 석굴의 특징을 선별적으로 채용하여 중국식으로 변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골굴 법당굴은 목조지붕 전실을 지나 완전 석실인 긴 직사각형 석실이 주실이며, 이 주실에는 탑주나 탑이 전혀 없는 형식으로 인도의 장방형 비하라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오진에 불상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좌우 벽면에는 불상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수는 확인할 수 없어서 정확한 구조는 발굴로 밝힐 수밖에 없다.

다음은 석굴 불상비교이다. 운강 6굴은 중국석굴 가운데서도 가장 화려한 대표적 차이티야 석굴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전실 벽면, 주실 4벽면과 중심 탑주 4면에 걸쳐 빈틈없이 빽빽하게 부조하여 채색과 도금으로 칠했기 때문이다. 아쟌타 26굴의 4벽 부조들과 동일하지만 26굴이 탑에 본존불 1구만 새긴 데 비하면 운강 6굴의 탑주에는 4면을 2층으로 나누어 전면적으로 부조하고 있어서 보다 장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골굴은 초기 상태를 알 수 없어 잘 알 수 없으나 확인한 상태로는 주실에 불상 2구만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비록 더 많은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 하더라도 운강 6굴의 부조에 비할 수 없이 간략한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형사상의 측면에서 운강 6굴은 ‘법화경’ 사상이 주이고 미륵(유가 유식사상), ‘유마경’ 사상이 더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것은 5존을 비롯한 2기 석굴 전체에도 해당되고 있어서 주로 운강 6굴은 ‘법화경’ 사상에 의하여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명대동국대 명예교수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골굴석굴 역시 본존불과 그 조형의지가 ‘법화경’ 사상을 바탕으로 신인종 사상과 석가 항마사상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이 점은 아쟌타 19굴도 마찬가지여서 ‘법화경’ 사상에 의하여 조형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운강 6굴과 골굴석굴은 석가불이 주존불인 ‘법화경’ 사상에 의하여 조성되었다는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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