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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 서술의 모순과 왜곡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학문의 분야들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인문학자가 과학자였고, 과학자가 또한 사회학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 각각의 분과 학문들이 생겨나면서, 인간의 삶 전체를 향해 열려 있던 시각 역시 그 분과학문들의 영역에 따라 시야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런 양상들 중에 한국불교를 전공하는 필자가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한국사 쓰기이다. 한국사 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유독 불교와 관련한 부문에 대한 의도적 도외시가 눈에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좀 더 많이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신라사와 고려사를 예로 들어보자. 어느 역사학자도 신라시대와 고려시대가 불교가 흥성하고, 불교적 사유에 의해 사회체제의 많은 부분이 결정된 시대였다는 점에 대해서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신라사와 고려사의 역사 서술을 보면, 불교 부문은 문화라고 하는 한쪽에만 가두어져 있다. 그런데 불교적 사유가 사회체제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던 시대에, 불교는 그저 문화 그것도 문화 내부의 종교적 영역에서만 역할을 가지고 있었을까?

역사의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는 점에 대해 동의할 것이다. 신라와 고려의 역사변동에 있어서 많은 부분들은 불교적 변동과 그 궤도를 같이한다고 보아야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 대한 서술은 그 시대를 다루는 역사서에서 그냥 문화부문의 서술에만 한정될 뿐이다. 불교와 사회가 결합한 구조를 이해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힘든 시대에 대해서, 불교를 빼놓고 서술하고서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궤변일 수밖에 없다.

흔히 우리나라 유·무형 역사문화유산의 70% 이상이 불교문화유산이라고 이야기한다. 역사문화유산의 70%가 불교문화유산이라면, 그 역사문화의 70%라고 하는 주장은 양보하더라도 하다못해 그 반인 30% 정도의 역사서술은 불교부문의 서술에 할애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필자의 과도한 오독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통사의 서술이라면 당연히 불교 부문에 대한 서술의 할당량이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출판된 우리나라 역사책 어디에도 불교에 그만큼의 비중을 두고 서술된 역사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있다. 흔히 ‘삼국유사’를 ‘삼국사기’와 비교하여, 정사가 아닌 야사의 입장에서 평가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야사의 입자에서 쓴 책은 아니다. 오히려 ‘유사(遺事)’ 곧 ‘예로부터 전해온 사적(事蹟)’이라는 명칭은, ‘삼국사기’가 한쪽의 시각에 편벽된 것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제대로 고쳐서 옛 일을 보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의 사람이었던 일연 스님이 보기에, ‘삼국사기’는 그야말로 역사의 한쪽만을 집필한 반족짜리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불교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교가 축이 되어 움직였던 역사의 양상을, 불교가 없었던 것처럼 집필하지는 말라는 이야기이다. 오늘날의 종교는 일상에서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 오늘날의 모습을 반영하는 시각의 역사 쓰기는, 종교 혹은 불교가 우리네 사회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던 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왜곡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근대의 일은 근대의 시각으로, 불교 시대의 일은 불교의 시각으로, 성리학 시대의 일은 성리학의 눈으로 보아야만, 그나마 최소한 균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근대의 눈, 근대의 전문화된 영역이 만능이 아님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지나간 과거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마저도 왜곡하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불교사의 제대로 된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이 자꾸만 아쉬워지는 요즘이다.

석길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huayen@naver.com

 

[1469호 / 2018년 1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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