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야소다라 ③
48. 야소다라 ③
  • 김규보
  • 승인 2018.12.17 14:51
  • 호수 14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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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는 남편이 아니었다

겉모습은 여느집 남편과 같아
우렁찬 울음 라훌라 얻었지만
결국 출가사문의 길로 떠나가

싯다르타는 남편이되 남편이 아니었다. 겉모습은 나무랄 게 없었다. 싯다르타는 온화한 말과 부드러운 몸짓으로 대해 주었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그 말과 행동에서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눈을 마주쳐도 시선을 받는다는 느낌이 없었으며, 서로 안고 있어도 안겨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령 영원히 걷는데도 닿지 못할 아득한 곳에 싯다르타가 서 있는 듯했다. 싯다르타의 눈망울을 볼 때마다, 혹시 자신이 비치지 않을까 기대하는 일도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고 말았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야소다라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지냈다. 물론,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며 크고 작은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싯다르타와 함께였다. 늘 그랬듯 둘의 관계는 겉으로 보기에 왕자와 왕세자비의 그것이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에 대한 칭송은 끊이지 않았다. 야소다라의 속은 타들어갔다. 싯다르타의 마음은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 하는 저편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망막했다.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하는 남편이 결국 남편으로 남게 되지 않으리라는 예감도 들었다. 좌절, 불안, 우울함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묻거나 불안하다고 이야기하면,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싯다르타는 미련 없이 자신을 떠날 것만 같았다. 야소다라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10년 세월을 버텼다.

어느 날, 야소다라는 태기를 느꼈다.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생명의 기운과 함께 그간의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알 수 없는 곳만 바라보는 싯다르타의 뒤편에서 속절없이 찍어낸 눈물이 얼마나 됐던가. 이 생명은 남편이 자신에게 뿌리내릴 흙이 될 테다. 남편이 뿌리내리기만 한다면 때마다 햇살과 바람과 물을 대어서 잘 가꾸리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 사무치게 기다려졌다. 생명은 무럭무럭 자랐고 해산의 날이 밝았다. 뼈가 끊어지는 고통 끝에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건장한 사내였다.

“당장 왕자님에게 가서 아들의 이름을 지어 달라는 말을 전하라.”

남편에게 사람을 보낸 뒤 아이를 보았다. 온 몸을 덮은 주름 사이마다 핏물이 고여 있었다. 하필 붉게 흘러내리는 저것에 가장 먼저 시선이 갔던 걸까. 야소다라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하인이 돌아왔다. “왕자님께서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라훌라입니다.” 아들의 이름을 장애라고 짓다니…. 싯다르타에게 자식은 뿌리내릴 흙이 아니라 10년 세월의 잔재마저 남김없이 지워버릴 불길이었다. 라훌라를 뒤덮은 핏물이 더욱 붉어지는 것 같았다.

며칠 뒤, 남편의 시종 찬타카가 숫도다나 왕 앞에서 통곡하며 고했다. “왕자님은 이른 새벽 저를 깨우시고 성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패물을 벗어 저에게 주시고는, 뜻을 이루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출가 사문이 되어 지혜와 자비의 길을 걷겠다고 하셨습니다.” 찬타카의 울음은 왕궁을 들썩이게 했다. 야소다라 또한 마음의 들썩임을 견디지 못하여 라훌라의 얼굴과 남편이 떠난 방향을 번갈아 쳐다보다 찬타카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다.

“끝까지 잡았어야지, 어찌 너만 돌아올 생각을 하였느냐!

찬타카를 꾸짖었지만 야소다라는 알고 있었다. 10년을 두고도 돌리지 못한 마음이었다. 오늘에 이를 것이라는 예감을 덮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결국 눈앞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나를 두고, 아들을 두고 떠났다는 것에 야속함을 느끼면서도 나 때문에, 아들 때문에 떠난 싯다르타에 측은함도 느꼈다. 그가 떠난 것은 내 운명이되, 내가 느끼는 측은함은 그의 운명은 아닐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해졌다. 야소다라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 뒤 말했다.

“오늘부터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침대에서 자지 않을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치장하거나 포식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수행자처럼 생활할 것이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69호 / 2018년 1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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