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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무기설과 독화살의 비유

연기설의 중도입장에서 형이상학 질문 배척

육사외도 주장했던 내용
독화살 비유 들어 깨우쳐
인식론적 경험과 한계를
실용주의적 태도로 극복

초기불교에서 무기(無記, avyākṛta)란 붓다가 어떤 질문들에 대해 답변이나 언급을 회피한 채 침묵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즉 무기란 주로 ‘세계의 무한성과 유한성’ ‘영혼 혹은 생명과 신체의 동일성 여부’ ‘수행의 완성자인 여래(如來)의 사후의 존속 여부’ 등 본질적인 수행과 그다지 관계가 없거나 실존적인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들에 대해 침묵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무기설(無記說)은 질문의 종류에 따라 10무기나 14무기, 혹은 16무기 등으로 불린다.

현대사회에서도 세계의 창조나 종말, 사후의 윤회문제, 그리고 영혼이나 생명과 신체의 동일성 여부나 자기정체성의 문제 등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의문시하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붓다와 함께 살았던 인도 당시의 자유사상가들(外道)도 10무기나 14무기 등에서 행해진 질문들을 주요한 관심사로 삼았다.

그 당시에 붓다의 제가 가운데 만동자(鬘童子, Mālunkya-putta)도 외도에 속했던 인물이었는데, 붓다가 뛰어난 사상가라는 얘기를 듣고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기 위해 그의 제자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세존이시어 제가 홀로 선정에 들어있을 때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계는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영혼은 육체와 같은가, 육체와 다른가?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이런 의문에 한 번도 답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세존께 이러한 것을 묻고 싶습니다. 만약 세존께서 저의 이러한 의문에 답변해 주신다면, 저는 세존의 가르침 안에 머물며 거룩한 삶을 따를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마룬캬풋타에게 말씀하셨다. “마룬캬풋타여,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약 붓다께서 나를 위해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영혼과 육체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해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의문을 풀지도 못한 채 도중에서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을 때, 친족들이 빨리 의사를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화살에 맞은 사람이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크샤트리아인지, 바라문인지, 바이샤인지 수드라인지, 또는 그 이름과 성은 무엇인지, 그의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 정도인지, 그의 얼굴색이 하얀지 검은지, 어떤 마을에서 왔는지 먼저 알아야겠다. 또한 내가 맞은 화살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 아울러 어떤 새의 깃으로 장식된 화살인지, 화살 끝에 묻힌 독은 어떤 종류의 독인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초기경전에 따르면 붓다는 10무기나 14무기 등의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대해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요컨대 세계가 영원하다거나 무상하다거나, 영혼과 육체가 동일하다거나 다르다거나, 여래가 사후에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문은 연기의 도리와 법에 맞지 않고 청정한 수행도 아니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도 아니고 열반의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초기경전에서 제시하는 10무기나 14무기 등의 형이상학적 질문들은 그 당시에 6사 외도들이 주장했던 자아나 세계의 단멸론 혹은 자아와 세계의 상주론 등과 일맥상통하는 문제들이다. 이런 점에서 붓다의 무기설은 연기설의 중도적 입장에 따라 상주론과 단멸론 등이 가지는 인식과 경험 등의 한계를 실용주의적 태도로서 배척한 것으로 이해된다.

김재권 동국대 연구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69호 / 2018년 1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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