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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세스페데스 신부와 대흥사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18.12.22 14:53
  • 수정 2018.12.26 09:58
  • 호수 1471
  • 댓글 26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이 12월22일 ‘콜럼버스, 세스페데스 신부와 대흥사’라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 원장은 기고문에서 15세기 종교를 내세워 선주민들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른 콜럼버스와 임진왜란 때 왜군과 함께 조선에 왔던 세스페데스, 그리고 대흥사에 전해져오던 십자가 문제를 다뤘다. 특히 이 원장은 “(대흥사가) 십자가를 복원하여 천주교에 기증하여 종교 화합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고 싶은 대흥사의 마음은 이해한다”며 “천주교 쪽에서 ‘임진왜란 당시 침략군에 복역했던 세스페데스 신부의 잘못을 우리가 대신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다!’는 사과 성명서를 내고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 새로 복원한 그 ‘황금 십자가’는 절대로 천주교 쪽에 기증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편집자

콜럼버스는 선주민들에게 일정 시간을 주면서 자신이 정해주는 양의 황금을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팔을 잘라 버린 잔악한 인물이었다.
콜럼버스는 선주민들에게 일정 시간을 주면서 자신이 정해주는 양의 황금을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팔을 잘라 버린 잔악한 인물이었다.

선의를 악의로 갚은 콜럼버스

1492년 10월12일, 이탈리아 출신으로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고 ‘새로운 뱃길’을 찾아 나섰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현재 바하마군도에 속하는 작은 섬(히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하였다. 그곳의 선주민들은 바닷물을 헤치며 걸어와서는 갖가지 선물을 줬다. 콜럼버스는 항해 일지에 그 사람들이 얌전하고 상냥했다고 묘사했다. “그 사람들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고, 내가 검을 보여줬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이 사람들은 악이 무엇인지 몰랐고, 살인이나 도둑질도 몰랐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했고,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눴으며 … 항상 웃었다.”

후원자에게 쓴 편지에서는 “그 사람들은 무척 순진하고, 정직하며, 자기가 가진 것을 너무나도 아낌없이 팍팍 나눠 줍니다. 어떤 물건을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만약 그 물건을 갖고 있으면, 어느 누구도 부탁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훨씬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지요.”라면서 그곳 주민들이 얼마나 순박한지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항해에 지친 자신과 일행에게 먹을거리를 건네주며 친절하게 맞이한 이런 순박한 사람들을 ‘장삿속’으로만 여겼다. “이 사람들은 훌륭한 하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0명만 있으면 우리는 이 사람들을 모조리 다 복종시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넘치는 종교적 열정·주민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열망으로 8년 만에 그 작은 섬 전역에 십자가와 함께 교수대를 각각 340개씩 세웠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이를 가리켜 “십자가와 교수대, 이것은 치명적인 역사적 병치(倂置)”라고 하며 그 죄악을 폭로한다.

그 다음으로 콜럼버스는 선주민들에게 일정 시간을 주면서 자신이 정해주는 양의 황금을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팔을 잘라 버렸다. 황금에 이어 콜럼버스는 스페인에 노예를 보내기로 결정, 약 1200명의 주민을 사로잡아 500명을 골라 보냈다.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 이들 중 200명이 추위와 질병으로 죽었다. 1498년 9월 콜럼버스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팔 수 있는 모든 노예를 잡아서 보낼 것이다.…”

순박한 선주민들의 선의(善意)를 악의(惡意)로, 그것도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서 되돌려준 것이 우리가 오랜 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라고 믿어온 콜럼버스의 민낯이었다.

순박한 선주민들의 선의(善意)를 악의(惡意)로, 그것도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서 되돌려준 것이 우리가 오랜 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 콜럼버스의 민낯’이었다.
순박한 선주민들의 선의(善意)를 악의(惡意)로, 그것도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서 되돌려준 것이 우리가 오랜 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라고 믿어온 콜럼버스의 민낯이었다.
선주민을 학살하는 스페인 정복자들.
선주민을 학살하는 스페인 정복자들.

임진왜란 왜군 군종 신부 세스페데스

콜럼버스의 범죄 행위가 시작되고 100년이 지난 1592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명(明)나라를 치러 가는 길을 내달라”면서 조선을 침략하여 그 뒤 7년여 동안 온 국토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우리가 임진왜란이라고 부르는 이 때 선봉장 세 명 중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스페인 출신으로 일본에서 천주교 선교활동을 하던 예수회 소속 세스페데스 신부를 초빙하여 현재 경남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그들이 쌓은 웅천왜성(熊川倭城)에 머물게 하였다. 세스페데스는 1593년 12월27일 쓰시마 섬(對馬島)과 부산포를 거쳐 들어와 1595년 6월까지 웅천왜성에서 왜군 천주교인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고 세례, 고해성사 등의 왜군 군종신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런데 수백 년 전 불행한 역사에 등장했던 이 세스페데스를 다시 부각시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가 왜군을 위해 머물렀던 웅천왜성 인근 공원에 그의 고향인 스페인 톨레도의 비야누에바 데 알카르데테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보내 ‘세스페데스 신부 방한 400주년 기념비’를 세웠고, 몇 해 전(2015.11.30)에는 창원시에서 예산 수억 원을 들여 이 공원을 새롭게 단장해 ‘세스페데스 기념공원’으로 개장하는 자리에 주한 스페인 대사를 초청하는 행사를 갖기도 하였다.

세스페데스 공원은 전체 공원(1만4129㎡) 중 3200㎡ 규모로 스페인 국토를 형상화한 회양목과 팬지, 스페인 풍 석재 앉음 벽을 설치해 정원을 조성했다. 공원 입구 가벽을 이용해 왼쪽에는 세스페데스 신부 입국 모습을 황동 조형물로 재현했고 오른쪽에는 스페인에서 만들어온 스페인어 공원 명칭과 스페인을 상징하는 건축물·문화 등을 담은 그림 타일을 붙였다.

2015년 11월30일 개장한 창원 세스페데스 기념공원 입구에 표현한 세스페데스 신부의 입국 장면. 침략군 병사들이 에워싸고 왔을 터인데 마치 ‘평화롭게 입국한 선교사’처럼 표현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2015년 11월30일 개장한 창원 세스페데스 기념공원 입구에 표현한 세스페데스 신부의 입국 장면. 침략군 병사들이 에워싸고 왔을 터인데 마치 ‘평화롭게 입국한 선교사’처럼 표현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를 통해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권리’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한국과 스페인의 우호’를 겉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임진왜란 당시 침략군을 도와주러 왔던 신부의 행위를 우호 관계의 시작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창원시의 이런 정책은 역사를 잊고 청소년들에게 “앞으로 외국 침략자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라!”는 무언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한편 천주교 마산교구는 2013년까지 ‘한국 최초의 사목터 성역화 기원’을 앞에 내세우며 웅천왜성에서 산상미사를 열다가 여론의 비판이 따가워지자 “성역화가 아니라 전란 중에 세스페데스 신부를 통해 깃들었던 하느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왜성 축조에 동원된 조선 백성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라고 말을 바꾸고 있지만, 속내는 한국 천주교 전래 시점을 임진왜란 시기까지 끌어올리려는 데 있음은 2015년 미사를 집전한 마산교구 총대리주교 배기현 신부가 “어두운 전란의 역사 속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이 잠시라도 세스페데스 신부라는 빛으로 깃들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에서 누구든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스페데스 성인화에 호응한 한국 불교

대흥사에 전해오던 서산대사의 유물 중 이번에 새로 복원한 십자가.
대흥사에 전해오던 서산대사의 유물 중 이번에 새로 복원한 십자가.

일제 강점 시절인 1927년 전남 해남군 대흥사의 서산대사 유물들 사이에 숨어 있던 황금십자가가 발견되었다가 1974년에 분실된 적이 있다. 십자가 앞뒤에 새겨진 글자 판독 결과 ‘왜군 군종신부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의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언제 어떤 경로로 대흥사 보관 서산대사 유물들 틈에 끼어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이 세스페데스 황금 십자가 세 개를 옛 사진에 근거해 복원하여, 대흥사와 북한 보현사에 하나씩 보관하고 나머지 하나는 천주교에 기증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각기 황금 일곱(7) 돈을 들여 만들고 화려한 칠보 장식까지 한 십자가 실물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십자가를 복원하여 천주교에 기증하여 종교 화합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고 싶은 대흥사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자. 콜럼버스 일행을 친절하게 맞이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아낌없이 전해주었던 바하마 군도 히스파니올라 섬 선주민들의 선의를 콜럼버스가 어떻게 갚아주었던가. 그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켜 황금을 채취하게 하고, 요구하는 황금을 가져오지 못하는 주민들의 팔다리를 잘라 죽이며, 수백 명을 잡아서 스페인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노예로 보냈던 콜럼버스의 악행을 기억해야 하지 않는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물론 현재 한국 천주교도 그럴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쪽의 선의를 상대에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하고 어리석다’고 오해하여 순박한 히스파니올라 섬 선주민들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했던 콜럼버스의 아류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리라고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천주교 쪽에서 “임진왜란 당시 침략군에 복역했던 세스페데스 신부의 잘못을 우리가 대신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다!”는 사과 성명서를 내고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 새로 복원한 그 ‘황금십자가’는 절대로 천주교 쪽에 기증하면 안 된다.

한국 불교, 제발 정신을 차리자!

[1470호 / 2018년 1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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