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야소다라 ④ (끝)
49. 야소다라 ④ (끝)
  • 김규보
  • 승인 2018.12.24 15:44
  • 호수 14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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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인연은 모였다 흩어지는 법

죽지 않겠다는데서 고통 비롯
남편 싯다르타 생각 이와같아
걸음걸음 평화로움에 미소만

야소다라는 머리카락을 풀고 장신구를 뗐다.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잤으며 다듬지 않은 음식을 한 끼씩만 받았다. 수행자처럼 살겠다고 공표한 대로 입고 먹었다. 그간 태생에 기대고, 미모에 기대고, 칭찬에 기대고, 허영심에 기대 살았다. 어느 하나가 사라지면 내가 넘어진다는 것, 싯다르타의 출가가 일깨워 준 진실이었다. 기댈 것을 허물면 어떤 삶이 될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남의 운명에 내 운명을 맡기는 일만은 없겠지 싶었다.

6년이 지난 어느 날, 싯다르타와 관련한 소식을 들었다. 깨달았고 교단을 이뤄 가르침을 펼친다는 이야기였다. 내용을 언뜻 들었다. 나고 늙고 병들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데, 그것은 모두 고통이니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문 밖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 기력이 쇠해 죽어가는 사람을 목격하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돌아와 유난히 긴 사색에 잠겼던 싯다르타가 떠올랐다. 당신은 지금껏 그 광경을 붙들고 있었구나…. 싯다르타와 결혼하기 전까지의 삶은 기쁨이었다. 결혼 이후 먼곳만 바라보는 싯다르타의 뒷모습은 고통이었고, 그가 떠났을 때 더욱 큰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오롯이 그가 건넨 고통이었지 내 고통은 아니라고 여겼다. 수행자처럼 살아온 것도 싯다르타가 안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이었다.

그래서 삶은 고통이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에게 기대서 힘들었던 것이며 그가 떠나서 힘들었던 것이다. 내 존재가 고통에 휩싸여 있다는 말은 확연하지 않았다. 껍질만 수행자처럼 살아 온 야소다라는 그날부터 속을 수행자처럼 비워내기 시작했다. 자신과 싯다르타의 관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명의 관계를 생각해 봤다. 아득한 예부터 지금까지 얼기설기한 관계의 크기를 가늠하는 한편 관계가 한 사람에게 미치는 힘을 거슬러 유추했다.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망에 잠시 걸쳤을 뿐이기에 부귀는 자랑하거나 허영심을 채우는 수단이 될 순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연은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고, 나 역시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서 솟았다가 관계가 흩어지면 사라지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면 삶은 고통이라는 말이 이해가 될 터. 인연에 따라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인데, 영원히 부귀를 누리면서 죽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니 진리에서 멀어지는 만큼 고통도 커졌던 셈이다. 싯다르타의 생각이 이와 같을까. 같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야소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믿기로 했다. 그의 운명이 나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듯,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내 운명에서 털어 내기로 결심했다.

다시 6년이 흐르고 싯다르타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소다라는 아들 라훌라에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이곳을 찾는다는구나.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테지. 하지만 보면 알 것이야. 만나거든 유산을 달라고 말하거라.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싯다르타는 알 것이다. 너는 그분의 말을 따르면 된다.”

싯다르타가 제자를 이끌고 마을에 들어왔다. 탁발하며 천천히 걷는 남편의 모습을 왕궁에서 지켜보았다. 12년 만에 본 남편이었다. 멀리서 보았지만 남편에게서 나오는 광채는 눈부시게 선명했다. 걸음걸음엔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야소다라는 순간, 자신이 건져 올린 생각이 싯다르타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확신했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내가 당부한 것을 잊지 말거라. 가서 네 아버지를 보아라. 이 어미는 왕에 대한 도리를 마치고 난 뒤에 너를 따라갈 것이다.”

라훌라는 싯다르타에게 다가갔다. 야소다라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예를 올리고 말을 건네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봤다. 라훌라의 말을 들은 싯다르타가 주위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하더니 다시 탁발하며 걸어갔다. 라훌라가 일어나 싯다르타의 제자와 함께 마을 밖으로 빠져나갔다. 야소다라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곧 너를 따라 갈 것이다. 아니, 나는 이미 그곳에 있어 왔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70호 / 2018년 1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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