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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10·27법난과 언론

기자명 김정빈

10·27법난 보도 그때는 틀렸고 이제야 바로잡았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사
사이비 승려 부정부패 소탕 발표
동아일보 “승려부패 엄청나” 보도

동아일보 2017년 10월27일엔
10·27법난 관련 정반대의 칼럼
“혜성 스님 개인이 착복했다는
17억5천만원은 복지관 평가액
전두환 반대에 대한 보복 확인”

그림=근호

1980년 10월27일, 한 떼의 군인들이 사찰에 몰려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로 발생한 혼란을 이용하여 실권을 잡은 전두환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군인들이 153명이나 되는 조계종 요직을 맡은 스님들을 체포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사건을 한국일보 1980년 10월29일자 기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계엄사는 28일 불교계 내부에 도사리고 앉아 온갖 비리와 부패, 범법행위를 저지르면서 교계를 어지럽혀온 사이비 승려, 상습폭력배 등 46명을 연행, 조사중이라고 발표했다.

계엄사는 이들의 진상과 비행에 대해서는 수사가 종결되는 대로 그 전모와 실상을 추후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고, 대폭적인 수사를 하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정통종교로서의 불교가 사이비 승려와 폭력배들이 난무하는 사이비 지대화하여 뜻있는 승직자와 신도 및 일반 국민의 지탄과 빈축을 받아 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계엄 당국은 “민족정기와 주체 의식을 확립하여 국민의 정신 영역을 계도해야 할 사명을 가진 불교가 이토록 부패해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종교의 특수성과 독자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자율정화와 자체숙정이 있기를 기대했으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력으로 재생의 힘이 없는 것으로 판단, 부득이 사회정화의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 달 뒤, 계엄사의 수사결과 발표를 동아일보는 1980년 11월14일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번 계엄 당국의 수사에 의해 드러난 불교계 내 일부 사이비 승려들의 비리와 부정퇴폐행위 사례들은 그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불교 신자들은 물론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내외로 이름난 일부 불교 성직자들이 겉으로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는 폭력배와 금력으로 종권 다툼을 벌여온 것은 물론 시주금과 사찰 재산을 착복 또는 유용, 수십억 원대를 치부, ‘목탁재벌’로 군림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 이들 일부 ‘목탁재벌’들은 치부 이외에도 접대부, 인기 연예인 등은 물론 여신도들을 상대로 사음과 음주 등 퇴폐 행위를 일삼아온 사실도 드러났는데 어느 유명 사찰 주지가 “환속 후를 대비, 신도들이 낸 시주금으로 요정까지 경영하며 치부를 해왔다”는 대목에서는 다만 입이 벌어질 따름이다.

하지만 이같은 계엄사의 발표는 사실이 아니었다. 훗날, 관련 피해자들과 ‘10·27 법난진상규명추진위원회’의 끈질긴 노력을 통해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된 ‘10·27법난피해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에 의해 밝혀진 진실에 따르면 계엄사는 불교를 이용하여 민심을 얻기 위해 억지로 사건을 조작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똑같은 사건을 대상으로 2007년 10월27일 동아일보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런 칼럼을 싣게 된다.

1980년 10월27일 새벽 서울 도선사, 주지 혜성 스님은 막 아침 공양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떼의 군인들이 군화를 신은 채 들이닥쳐 혜성 스님 등을 끌어냈다. 차에 실려 간 곳은 합동수사단 수사3국, 곧바로 가사장삼은 벗겨지고 죄수용 군복을 입힌 채 고문이 시작됐다.

혜성 스님은 25일의 구금 기간에 구타는 물론 각목으로 오금 치기, 손가락 사이에 볼펜 넣고 죄기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 그는 “육체적 고문을 당한 것도 힘들었지만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수시로 뺨을 때린 것이 마음의 멍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스님에게 씌운 혐의는 17억 5000만 원에 이르는 재산 축적과 요정 운영. 하지만 17억 5000만 원은 청담고, 도선사, 복지법인의 보육원과 양로원의 시세 평가 총액이었다. 요정 운영도 청담고 인수 과정에서 함께 딸려 온 미군 클럽을 원주인에게 되돌려 주던 과정에서 ‘혐의’로 둔갑했다. 스님은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지만 25일 간의 고문으로 탈장 증세가 생겨 장기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신군부는 당시 불교정화를 명목으로 전국 조계종 주요 사찰에 들이닥쳐 200 명의 승려를 연행하는 ‘10·27법난’을 일으켰다. 연행 승려 중에는 월주 조계종 총무원장과 총무원 간부들, 조계종 19개 본사 주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계엄사는 그해 11월14일 중간 수사 결과를 비리 승려들이 200억원의 축재, 주지 직을 2000만원에 거래, 연예인과 퇴폐행위, 깡패와 규합해 폭력행사 등을 했다는 것. 10명의 승려와 8명이 일반인이 구속됐고 일부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국방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5일, 10·27법난에 대해 불교 정화와 스님으로 위장한 불량배 일소라는 1980년 결과와는 상반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법난의 주요 원인으로 신군부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대통령 추대 지지를 거부한 조계종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전두환 대통령이 1988년 5공청문회에서 10·27법난을 잘 모른다고 답변한 것이 거짓이었다는 자료도 공개했다.

10·27법난에 대해서는 고찰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본고에서는 그중 언론의 관점에 대해서만 말하도록 하겠다. 언론은 사건을 제3자의 관점에서 보도하는 것이 기본이다. 공정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처음에는 제1자의 입장인 계엄사의 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차원에서 사건을 보도하였다. 그랬다가 이것이 편파적이었음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제2자의 입장이자, 사법적인 승소자로서의 제3자의 입장으로 격상된 스님들 편에서 사건을 되돌아보는 칼럼을 실었다. 언론은 여론의 형성과정에서 검사, 변호사, 판사 역할도 한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 또한 그러하다. 우리 또한 남들을 비판, 비난할 때는 검사가 되고, 나와 누군가를 변명할 때는 변호사가 되며, 나와 남을 판단할 때는 판사가 되는 것이다.

그 모든 입장에서 국민, 불교인, 수행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3자의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우리는 남을 고발하거나 판단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내가 남들, 사회, 국가, 우주로부터 검사, 판사 자격을 부여받은 판사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남으로부터 고발당하거나 판단 받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타자에게 적용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70호 / 2018년 1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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