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5. ‘법성게’ 제13구 :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기자명 해주 스님

삼세에 각각 삼세를 설해 구세이며, 삼세가 일념과 합하여 십세

꿈에 아버지·나·아들 등장
각각 과거·현재·미래 있어

꿈에서 깨어나서 살펴보니
한순간 마음 가운데 있을뿐

각자에게 삼세 존재하지만
모두가 꿈속의 한순간일 뿐

모든 것 한순간 꿈속 일이니
모두 현재 일념 지나지 않아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면서
또한 미래의 과거이기도 해

순간의 현재와 모든 세월이
온전히 하나임을 알아야 해

의상 스님이 시간[世時]을 기준으로 연기분을 설명하는 세 번째 구절이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다. 이는 ‘법성게’ 제13구로서 “구세와 십세가 서로 상즉한다”는 것이다.

의상 스님은 “구세십세호상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넷째 ‘시간[世時]을 기준으로 하여’라는 것은 이른바 구세는 과거의 과거, 과거의 현재, 과거의 미래, 현재의 과거, 현재의 현재, 현재의 미래, 미래의 과거, 미래의 현재, 미래의 미래세이다. 삼세가 상즉하고 더불어 상입하여 그 일념을 이루니, 총과 별을 합하여 이름 붙인 까닭에 십세가 된다. 일념은 현상으로서의 순간[事念]을 기준으로 하여 설한 것이다. 사약세시자(四約世時者) 소위구세자(所謂九世者) 과거과거과거현재(過去過去過去現在) 과거미래(過去未來) 현재과거(現在過去) 현재현재(現在現在) 현재미래(現在未來) 미래과거(未來過去) 미래현재(未來現在) 미래미래세(未來未來世) 삼세상즉급여상입(三世相卽及與相入) 성기일념(成其一念) 총별합명(명)고위십세(摠別合明(名)故爲十世) 일념자(一念者) 약사념설야(約事念說也). (‘일승법계도’)

여기서 ‘넷째’란 자리행의 연기분을 여섯 부문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가운데 넷째인 것이다. 여섯 가운데 첫째는 ‘연기의 체’, 둘째는 다라니의 이용, 셋째는 사법을 기준으로 한 것임은 이미 보았다. 시간을 기준으로 무애연기를 설명함에 있어서 순간과 무량겁의 관계처럼 구세와 십세도 상즉에 비중을 두어 ‘호상즉’이라 한다.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각각 과거·현재·미래의 삼세가 있어서 합하여 구세가 된다. 그리고 삼세가 상즉하고 상입하여 일념을 이룬다. 이 일념이 총이고, 총인 일념과 별인 구세를 합하여 십세가 된다. 그리하여 삼세가 걸림 없고 구세와 십세가 걸림 없어서 “구세십세호상즉”이다.

따라서 ‘십세’란 총상의 순간[念]을 말하는 제십세(第十世)이기도 하고, 총별을 합하여 말하는 십세이기도 하다.(‘진기’) 그래서 구세가 상즉·상입하여 십세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고, 십세를 기준으로 하여 지금 서로 상즉· 상입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기’)

범어사 비로전 비로자나불좌상(사진 왼쪽). 불국사 비로전 금동비로자나불좌상(8세기중엽) 국보26호(사진 오른쪽).

설잠 스님은 “일념과 다겁(多劫)이 동시여서 걸림이 없는 까닭에, 삼세 가운데 각각 삼세를 갖추되 평등한 일세(世)에 융합하고, 법과 법이 항상 머물되 서로 사무쳐 걸림이 없다”(‘법계도주’) 라고 한다.

유문 스님도 “삼세가 각각 삼세를 갖추어 구세이고 현재 일념이 제십세가 되며, 원융한 십세가 다 일념 중에 갖추어져 있는 까닭에 서로 상즉한다”라고 한다. 이러한 “구세십세호상즉”의 경증에 해당하는 ‘화엄경’의 법문으로서는 무엇보다 ‘이세간품’의 다음 교설을 들 수 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로 삼세(三世)를 설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과거세에 과거세를 설하고, 과거세에 미래세를 설하고, 과거세에 현재세를 설하며, 미래세에 과거세를 설하고, 미래세에 현재세를 설하고, 미래세에 무진(無盡)을 설하며, 현재세에 과거세를 설하고, 현재세에 미래세를 설하고, 현재세에 평등(平等)을 설하며, 현재세에 삼세가 곧 일념[三世即一念]임을 설하니, 이것이 열이 된다. 보살이 이로써 널리 삼세를 설한다."

여기서 ‘무진’은 미래세이고, ‘평등’은 현재세를 뜻한다. 삼세에 각각 삼세를 설하여 구세이고, 삼세가 한 순간인 일념과 합하여 십세이다. 이처럼 삼세에 근거하여 십세를 설하니 삼세가 곧 십세이고, 십세가 곧 삼세이다. 경에서는 또 십세인 삼세가 걸림 없음을 다양하게 설하고 있다.

과거시미래(過去是未來) 미래시과거(未來是過去) 현재시거래(現在是去來) 보살실요지(菩薩悉了知) (‘普賢菩薩行品’). 과거가 미래이고 미래가 과거이며/ 현재가 과거와 미래이니, 보살이 다 요달해 안다.
과거일체겁(過去一切劫) 안치미래금(安置未來今) 미래현재겁(未來現在劫) 회치과거세(迴置過去世) (‘이세간품’).
과거 일체 겁을 미래와 현재에 두고/ 미래와 현재의 겁을 과거세에 돌린다. 거래급현재(去來及現在) 일체시방불(一切十方佛) 미불어신중(靡不於身中) 분명이현현(分明而顯現) (‘이세간품’).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시방세계 부처님이/ 몸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

이러한 삼세가 구세이고 한 순간임을 의상 스님은 꿈 비유로도 보이고 있다.

“어느날 밤 꿈에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이 각각 셋이어서 아홉이 있었으나, 깨어났을 때 이를 보니 다만 한 순간[一念]의 마음[心]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 이 마음 가운데 한 쪽을 나누어 아버지로 하고, 한 쪽을 나누어 나로 하고, 한 쪽을 나누어 아들로 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한마음에 있다. 의거함을 따라서 곧 아홉 사람을 거두니 서로 아는 바가 없으나 아홉 사람의 다름이 끊어져 없는 것은 아니다. 또 한 순간 외에 셋을 세워 있음으로 하고 여섯을 세워 없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과 없음이 같은 자리로서 한 순간이며 있음과 없음이 다른 것이 아니다." (‘도신장’)

여기서 아버지는 과거이고 나는 현재이고 아들은 미래이다. 이 셋에 각각 셋이 있어서 아홉이고, 모두가 꿈속의 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또 다섯 지위를 기준으로 서로 바라보아 구세를 논하기도 한다. 지엄존자가 의상 스님에게 말씀하기를,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과 손주와 함께 지붕에 기와를 얹었는데 깨어보니 꿈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위에 올라가 지붕을 덮고, 아들과 손자는 아래에서 기와를 나르며, 자기는 중간에 있으면서 기와를 전해준다는 이야기이다.(‘지귀장원통초’)

할아버지·아버지·나·아들·손자는 그제·어제·오늘·내일·모레의 다섯 지위로 말할 수 있고, 이 다섯 지위가 서로 바라보아 구세가 된다. 이를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표>에서도 보이듯이 과거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고, 현재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고, 미래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할아버지는 과거의 과거이다. 아버지는 오늘 나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이므로 현재의 과거이고, 아버지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이므로 과거의 현재이다. 나는 당체를 기준으로 하면 현재의 현재이고, 아버지나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미래이니 과거의 미래이고, 아들이나 손자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이니 미래의 과거이다. 아들은 나의 입장에서 미래이므로 현재의 미래이고 아들 자신의 입장에서는 현재이므로 미래의 현재이다. 손자는 미래의 미래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다 한순간 꿈속의 일이니, 현재 일념에 지나지 않는다. 구세에서의 현재의 현재는 별상이고 구세가 무애인 현재 일념은 총상으로서, 총별이 원융하여 상즉이다.

‘나’의 경우도 현재의 현재임과 아울러 과거의 미래이고 미래의 과거이니, 오늘의 ‘나’는 현재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다. 또한 순간순간의 현재와 모든 세월이 온전히 하나임을 ”구세십세호상즉“에서 보여주고 있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70호 / 2018년 1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