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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방장큰스님의 ‘한 물건’

기자명 이제열

‘한 물건’ 외치던 시대는 막을 내려야

마음을 육체와 세상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로 착각한 것일뿐
마음·몸·우주는 연기적 관계

이왕 ‘한 물건’을 비판했으니 내친김에 계속하겠다. 한국불교의 선사들이 마음을 ‘한 물건’이라고 부르는 일은 공공연하다. 역시 오래전 일이다. 요즘은 서울에서 두어 시간이면 도달하는 충청도 유서 깊은 사찰을 버스로 6시간이나 걸려 간 적이 있다. 그것도 한겨울에 눈길을 걸어 올라갔다. 방장큰스님의 성도재일법문을 듣기 위해서였다.

일행과 도착해보니 그야말로 대법당은 초만원이었다. 드디어 사시불공이 끝나고 대법회가 진행됐다. 진풍경은 방장큰스님이 법상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두 수좌가 법상 아래 무릎을 꿇고 앉자 그들의 어깨를 밟고 법상에 오르시는 것이었다. 이런 방장큰스님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뒤에 모셔진 부처님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거기에 아주 긴 주장자까지 손에 들고 법상에서 눈을 감고 앉으시니 그 위용은 하늘을 찌르는 것과도 같았다.

이어 모든 대중이 오체투지로써 삼배를 하였고 한 스님이 청법게를 세 번 청하면서 법문이 시작되었다. 전통이 그러한지는 몰라도 선사들은 대부분 그냥 법문을 하지 않고 한참동안 양구(良久) 끝에 입을 떼신다. 그날 찾아뵌 방장큰스님도 마찬가지여서 눈을 감고 말이 없으시다가 주장자를 법상에 쿵! 쿵! 쿵! 세 번 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산승이 들고 있는 주장자 대가리 꼭대기에 ‘한 물건’이 달려있는데 대중은 보는가? 오늘 석가모니가 인도의 보리수 아래서 6년 고행 끝에 새벽에 샛별을 보고 대도를 깨쳤다고 하는데 석가모니는 샛별을 보고 대도를 깨우친 것이 아니고 바로 이 주장자 대가리에 달려있는 이 ‘한 물건’을 보고 대도를 깨우친 것이다. 대중은 알겠는가? 이 ‘한 물건’이 바로 여러분의 몸뚱이를 부리는 주인이며 우주만법의 근본이라, 금일 이놈을 본 납자가 있다면 한마디 일러봐라.”

그러자 이때 진귀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중 가운데 있던 한 스님이 성큼성큼 방장큰스님에게 걸어가더니 무엄하게도 방장큰스님의 주장자를 낚아채더니 문밖을 향해 홱 집어던지고는 법상 앞에 앉는 것이 아닌가. 황망하기 그지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선 법문을 하는 절에서는 자주 있는 터인지라 곧이어 한 스님이 부리나케 주장자를 들어다 다시 방장 큰스님에게 드렸다. 그런데 방장큰스님의 이어지는 법문이 파격적이다. 방장큰스님은 주장자를 높이 들더니 그 주장자를 빼앗아 밖으로 던진 스님의 어깨를 향해 내리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한 물건’은 누가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다. 오로지 조사의 관문을 뚫은 자만이 가히 얻을 수 있으니 이 무엇인고?” 그러고는 법상을 세 번 치고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당시 내가 뵌 방장큰스님은 선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선지식이셨다. 그런데 이 분 역시 다른 조실이나 방장스님들처럼 마음을 육체와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로 착각하고 있었다. 공안을 타파해 조사의 반열에 올랐다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견해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마음은 몸을 지배하지 못할 뿐더러 우주의 근원도 되지 못한다. 몸이 없이 마음이 만들어질 수 없고, 우주가 없이 몸도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識)과 몸(根)과 우주(境)는 연기적 관계로 불가불리의 법칙 하에 존재한다. 현대 뇌과학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리 마음은 독립성이 없다. 우리에게 하나의 통합된 의식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천억 개의 뇌세포와 천조 개의 돌기들에 의해서라고 한다. 마음 하나가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개의 역할이 마음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질의 법칙이건 마음의 법칙이건 조건에 의해 생긴다는 부처님 연기의 가르침을 뇌과학이 오히려 잘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제 ‘한 물건’이 지배하던 불교는 막을 내려야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72호 / 2019년 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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