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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잃어버린 산책

기자명 임연숙

위로 받고 함께하고 싶은 생명체 본능

사랑스럽고 따뜻했던 반려견
유기견으로 전락한 후의 슬픔
정지된 화면속 눈빛으로 전달

조민영 作 ‘잃어버린 산책’, 60×72cm, 캔버스에 아크릴릭·오일파스텔.
조민영 作 ‘잃어버린 산책’, 60×72cm, 캔버스에 아크릴릭·오일파스텔.

고고미술벽화부터 등장하는 동물과 식물 그림은 주술적이거나 기원과 상징의 의미가 담겨있다. 전통회화에서 오랫 동안 다루어 왔던 영모화(翎毛畵)의 영모는 본래 새의 깃털을 의미하던 것인데 후에 동물의 털까지 의미가 확장돼 보통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영모화라고 부른다. 삼국시대 유물에 남아있는 동물형상 역시 순수한 감상용이라기보다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감상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은 고려시대 이후 전칭작 이양도(二羊圖)에 이르러서다.

조선 중기 종실화가이면서 개와 고양이의 모습을 따뜻하게 표현한 화가 이암, 고양이를 많이 그려 변고양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조선 후기 변상벽, 흑구도(黑狗圖)를 남긴 김두량 등의 그림에서는 개나 고양이가 기복이나 주술의 의미가 아닌 생활 속에서 사람과 함께 키워진 반려동물의 흔적을 느껴 볼 수 있다. 반려동물인구가 천만을 넘은 시대에 현대작가들의 작품에도 반려동물이 많이 등장한다.

조민영 작가는 슬픔이 느껴지는 견공들의 표정을 담아내고 있다. 오랜기간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후 발표한 개인전의 제목은 ‘잃어버린 산책’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대상은 유기견들이다. 사랑스럽고, 든든하고 따뜻해야만 할 것 같은 견공들의 슬픈 표정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측은지심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작가는 유기견 봉사단체와의 인연으로 유기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봉사보다도 그림을 통해 유기견들의 상황을 알리자는데 의미를 두고 시작한 작업이 이제는 조민영 작가를 대변하는 주제가 되었다. 작업을 위해 수집한 유기견들의 사진과 참담한 실태에 충격을 받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데도 무거운 마음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작품은 단순히 유기견의 실태를 알리는 사실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작품에 작가의 감정이 많이 이입된 듯한 느낌이다. 옛 그림에서 ‘견마(犬馬)가 가장 그리기 어렵고 귀신은 그리기 쉽다’는 말이 있다. 이는 견마는 사람이 잘 알고 있어 닮게 표현하기 어렵고 귀신은 본 사람이 없어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따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전통회화에서 산수화나 인물화에 비해 동물을 그린 예가 드물다. 특히 사람과 가까운 개는 다른 동물보다도 인간의 감정이입과 교감이 깊은 동물로 친근감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곤 한다.

조민영 작가는 개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 클로즈업 하고 있다. 특히 눈빛에 모든 감정을 담고 있다. 원망과 슬픔과 절망감들을 말이다. 다큐멘터리식의 접근이 아닌 감정이 깊이 이입된 화면 속에서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자꾸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배경은 밝은 색감이다. 대상의 눈빛 외에는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평면으로 처리되었다. 털이나 몸집의 양감이나 하는 것들은 디테일하게 묘사되지 않았음에도 대상이 주는 느낌은 명료하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나이프를 이용해 밑색이 비치게 덧발라 나갔다. 거칠고 무심한 터치는 붓이 주는 섬세함보다 과감하고 빠른 터치감을 준다. 오일파스텔로 숨을 고르고 눈빛의 표현에 집중한다. 거기에 무심함은 슬픔과 상실감으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대상의 아픔에 집중하다 보면 그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무엇인가 긍정으로 결말짓고 싶어진다. 위로받고 함께하고 싶은 생명체의 본능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72호 / 2019년 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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