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소속당 의원이 탈당하자,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언론을 통해 회자됐다. 한자로는 사염승거(寺厭僧去)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 불자들은 해의 마지막을 무척이나 불쾌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다. ‘중’은 스님을 천민 취급했던 조선시대의 욕설이다. 중의 어원은 범어인 상가(Samgha)에 있다. 상가를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승가(僧伽)라고 했고, 이를 의역한 것이 중(衆)이다. 그래서 중은 많은 스님들이 모여 있다는 의미에서 대중(大衆)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이 스님들을 천한 무리라는 뜻으로 중으로 불렀던 것이다.
조선 전까지 스님을 중으로 부른 기록은 없다. 고려시대에는 복전(福田)이라 불렀고, 승(僧), 비구(比丘), 화상(和尙), 사문(沙門), 대덕(大德), 선사(禪師) 등 다양하게 사용했다. 현재 쓰이는 스님은 스승님의 준말이다. 물론 스님을 뜻하는 승(僧)에 ‘님’을 붙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이 들어간 속담들은 하나같이 듣기에도 민망하다. “비 맞은 중놈 중얼거리듯이.” “중이 고기 맛 들이면 빈대 하나 안 남는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다종교 사회인 현재에는 더 이상 스님을 중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인들이 스님을 비하하는 표현을 버젓이 쓰는 것은 함량미달의 정치인이라는 자기고백이다. 예를 들자면 근래까지 기독교를 ‘예수쟁이’ ‘천주학쟁이’로 부른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기독교를 낮춰 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 국정교과서에 쓰인 ‘중’이라는 용어를 불교계의 강력한 항의로 바로 잡은 경험이 있다. 이제는 불교와 스님들을 비하하는 잘못된 용어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스님을 비하하는 용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사회에서 불교가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맹귀우목(盲龜遇木)이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473호 / 2019년 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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