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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입세간의 길이란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라는 자리이타 구도 정신

자신의 괴로움뿐만 아니라
타인 고통도 고뇌하는 정신
출가와 재가의 구분 넘어선
전도선언이 던지는 메시지

우리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와 종교, 철학과 과학 등의 만남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융합과 통섭을 강조하는 사상적 패러다임의 격변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세기 서구적 문화와 과학문명의 콤플렉스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서구에서도 한때 세기말적 현상으로 풍미했던 사회적 불안이나 경제적 위기 등으로 인한 인간소외와 자아상실 등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OECD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나 출산율 등이 부정적으로 드러나는 양상을 통해서도 방증된다. 우리사회가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보다는 물질만능과 배금주의의 풍조에 경도되어 일어나는 현상으로, 일부 재벌들의 몰지각한 갑질문화의 행태나 사회 전반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무분별한 집단이기주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사회현실에 직면하여 과연 불교가 나아갈 방향과 길은 어떠한가. 사실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위기, 그리고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사회전반을 올바로 이해하는 안목과 통찰을 기르는 일이다. 붓다의 일생을 통해 확인되듯이, 왕자의 신분으로 권력과 부, 사회적 명예를 과감히 던지고 출가의 길을 택해 깨달음을 성취한 후, 45년 동안 중생제도를 위한 전법의 길을 걸었던 붓다의 삶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실존적 조건에 고민하고 자신의 그 실존적 삶의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갈 경우 자신의 괴로움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맞닥뜨리게 되는 타인의 고통, 즉 중생들의 실존적 괴로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붓다의 문제의식은 정각을 이룬 후 자신이 깨달은 법을 설할지 열반에 들지를 잠시 망설이는 붓다에게 전법을 권하는 범천의 권청 에피소드와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중생제도를 위한 전도 선언을 통해 드러난다. 이처럼 붓다와 그 제자들이 몸소 보여준 전법의 길은 구도의 과정에서 세간과 출세간이 궁극적으로 둘이 아니라는 입세간(入世間)의 정신을 시사한다.

19세기 말 서구적 사조의 한계에 고뇌하며 불교적 사상이나 동양사상에 심취하여, 서구종교와 철학 등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헤르만헷세의 작품들에 투영된 그의 자전적인 구도적 열정은 일견 인도 당시에 바라문사상과 물질주의에 경도된 자유사상가들의 그 시대적 사조와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붓다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예컨대 헷세는 ‘싯다르타’라는 작품에서 ⒜고빈다와 ⒝싯다르타의 구도적 여정, 즉 고타마의 제자가 된 ⒜고빈다의 출세간적인 성스러운 삶(聖)과 고타마의 제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세속으로 뛰어든 ⒝싯다르타의 입세간적인 삶을 통해 구도의 정신이나 그 정체성에 대해 되묻고 있다.

요컨대 헷세의 ‘싯다르타’에서 제시되는 일견 ⒜고빈다의 삶은 신라시대의 의상 스님과, 한편 ⒝싯다르타의 삶은 교단에 소속되지 않고 살아가는 비승비속의 원효 스님을 떠오르게 한다. 사실 초기불교는 교리적으로는 탐욕・성냄・어리석음 등의 번뇌로 인한 욕망이나 세속적인 욕망 등을 완전히 극복하고자 하는 출세간적인 삶을 지향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물질적・경제적 기반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일방적으로 정신적 가치의 삶만을 추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세간과 출세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결국 붓다와 싯다르타가 제시하는 입세간의 정신은 출가와 재가나 세간과 출세간의 관계를 단순히 교리와 제도적 차원만이 아닌 인간의 실존적 괴로움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에서 찾아야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김재권 동국대 연구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73호 / 2019년 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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