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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옴진리교 테러사건과 계율 필요성

기자명 법장 스님

종교에서 교리와 계율은 깨달음 이르는 양날개

옴진리교 차량 테러 사건은
교주만 있고 계율 없기 때문
계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맹목적 폭력으로 변질 쉬워

새해가 되며 불교계를 비롯한 많은 단체에서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각오를 발표하고 있다. 특히 불교계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 계율을 잘 지키며 청정하게 살자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때에 일본에서는 종교단체에 의해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다. 20세기 전 세계를 혼돈에 빠뜨렸던 옴진리교가 다시 도쿄의 시부야에서 차량테러를 저질러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옴진리교는 일본의 아사하라 쇼코에 의해 만들어진 신흥 종교단체로써, 자신들의 가르침과 종교가 일본사회에 인정받지 못하자 원한을 품고 1995년 사린가스라는 맹독성 가스를 신주쿠 역에 살포해 무차별 살인테러를 저지른 종교단체이다. 이번에는 교주의 사형 집행에 대한 보복성 테러였다고 범인이 밝히며 사회적 파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어떻게 종교단체에서 이런 끔찍한 테러가 연속해서 발생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옴진리교에는 교주의 가르침만 있을 뿐 계율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옴진리교 사건을 연구한 수많은 종교가와 사회학자에 의해 밝혀진 사실로써, 종교에서의 계율은 그 종교의 사상과 더불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중요한 토대이다.

종교에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는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불교의 경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열반을 위한 무상정등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는 것이 목표이다. 이런 종교적 가르침은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의지처가 되어, 삶에 대한 통철한 사유와 유대감을 형성해준다. 그러나 자신들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통찰되지 않았을 때 종교적 대립이 생겨난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계율’이다. 불교의 경우, 율장은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하여, 부처님께서 승가를 만들어 생활하시면서 수행에 방해되거나 사회적으로 부합되지 않는 것들이 생겨났을 때마다 그것을 금지시키며 만드신 것이다.

반면 보살계는 부처님께서 통찰력으로 앞으로의 승가와 보살행을 하며 생겨날 수 있는 문제를 방지시키기 위해 한 번에 금지조항을 제정하신 것이다. 과정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 계율의 중요한 역할은 종교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화합하여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종교적인 것만 강조하여 사회적인 것을 무시하거나 비난하게 되면 그 종교는 존재가치가 흔들리게 된다. 사회와 종교는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얻을 수 없고 채워지지 못하는 것을 종교가 감싸주고 채워주며, 사회와 종교가 화합하여 서로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종교에 있어서 가르침과 계율은 바른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는 두 날개이다. 어느 한 쪽만 강조되어서도 안 되고, 어느 쪽도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반드시 가르침과 계율이 양립하여 그 종교를 유지하고 바르게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계율이 존재하지 않거나 무시되는 종교가 된다면, 한없이 이기적인 가르침이 되어 자신들과 다른 모든 것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사상을 통찰시키기 위해 점차 폭력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는 이번 옴진리교 사건이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종교 분쟁과 테러를 통해 충분히 검증된 사실이다.

계율은 금지조항이기에 철저히 지키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계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될 때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고 하는 것과 처음부터 모르고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즉 종교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계율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포교하고 사회적인 활동을 할 때 그 종교의 가르침이 바르게 전달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계율은 종교가 종교로서 유지되고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 토대이며 절대적인 가치인 것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과 같이 우리의 행동이 계율에 맞는지 점검하고 참회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내일은 보다 청정해질 것이다.

법장 스님 해인사승가대 교수사 buddhastory@naver.com

 

[1473호 / 2019년 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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