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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향을 머금은 찻잔 ① - 동은 스님

기자명 동은 스님

“33년전 도반과 밥그릇에 마신 차향 마음에 여전하네”

입춘 앞두고 지리산 토굴에서 수행
늦겨울 찬바람에 토굴지붕 들썩여
몸살에 오한까지 있을정도로 아파

인기척에 나가보니 행자도반 스님
쌀과 반찬, 먹을거리 꼼꼼히 챙겨와
함께 공양한 후에 차 한잔 하게 돼

​​​​​​​다관 없어서 먹던 밥그릇에 우려내
“공부도 좋지만 몸 생각하라” 위로
좌복밑에 행각중 받은 여비 두고가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하루 일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 아침 공양 후 산책을 마치고 조용히 차 한 잔을 하는 시간이다. 웬만큼 급한 일이 아니면 이 시간에 약속을 잡지 않는다. 이때만큼이라도 오롯이 혼자 있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다구는 간단하다. 보이차를 마실 때 필요한 다탁은 옹기 가게에서 산 작은 단지 뚜껑이다. 다관 받치는 납작한 돌은 오래 전 영월 동강에 갔다가 주워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관은 20년이 넘었다. 서울 ‘수도승(首都僧)’ 시절 인사동 노점상에서 2만원 주고 산 것이다.

그리고 찻잔, 이 찻잔은 사연이 많은 찻잔이다. 33년 전 그해 겨울, 입춘을 며칠 앞두고 있었지만 지리산 계곡을 휘몰아치는 찬바람이 낡은 토굴 지붕을 들썩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희뿌옇게 동녘이 밝아 왔다. 목이 칼칼해서 머리맡에 놓아 둔 물 사발을 찾으니 꽁꽁 얼어 있었다. 토굴 아래에 있는 샘물을 뜨러 갈까 하다가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며칠째 몸살 기운으로 오한이 있어 문밖으로 나가기가 망설여졌다. 이불 속에서 온갖 망상들이 떠올랐다. “날이 밝는 대로 읍내 약방이라도 갔다 올까?” “아냐, 이까짓 몸살정도로 약방 갈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여길 오지 말았어야지.” “그래도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까짓 거 죽기밖에 더하겠어?”

혼자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스님 계세요?” 잠결에 잘못 들었나 하고 있으니 다시 인기척 소리가 났다. “스님 안계세요?” 언제 아팠냐는 듯이 몸이 용수철 튀듯 일어났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떴는지 토굴 안이 환했다.

“누구세요?” 문이랄 것도 없는 토굴 문을 열었다. 웬 스님 한 분이 서 있었다. 내가 잘못 봤나 했다. 오대산에서 같이 행자생활을 하고 계를 받았던 도반 스님이 서 계셨다.
“아니, 스님이 어쩐 일이세요?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 오셨어요? 추운데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둘이 앉기에도 좁은 방안에서 큰 절로 인사를 나눴다. 스님은 내려놓은 걸망에서 쌀이며 반찬거리를 주섬주섬 내놓으셨다.

산 아래 마을까지 첫 차를 타고 와 한참을 걸어온 스님은 공양 준비 안하냐며 가져온 쌀 씻을 그릇을 찾았다. 석유풍로에 올려져있던 냄비 뚜껑을 여니 몇 술 남은 식은 밥이 꽁꽁 얼어 있었다.

“스님, 내가 몸이 좀 안 좋으니 저 아래 샘물에 가서 쌀 좀 씻어오세요.” “허허, 이 스님 도대체 며칠을 굶은 거야? 알았어요. 내가 점심 준비 할 탱께 스님은 좀 누워 쉬시오, 잉”
도반 스님이 공양을 준비하는 동안 김치와 된장을 꺼냈다. 반찬이라곤 그것이 다였다. 며칠 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먹었다. 입이 까끌까끌 했지만 입맛은 살아있어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삭발도 안하고 수염도 텁수룩한 내 모습을 기가 막힌 듯이 쳐다보면서 도반 스님은 공양도 제대로 하지 않으셨다.
“스님, 차나 한잔 합시다.”

공양을 하는 둥 마는 둥 한 스님이 개울에서 그릇을 씻어오며 말했다.

“네, 그런데 차가 없는데요.”
“걱정 마시오, 내가 다 가져 왔응께.”

스님은 걸망에서 끈으로 묶은 차 봉지와 찻잔 두 개를 꺼냈다. 다관이 없어 먹던 밥그릇에 차를 우렸다. 푸르스름한 찻물이 조금씩 우러났다. 스님이 비닐봉지에서 무엇을 꺼내셨다. 이제 막 봉오리를 맺은 매화송이였다.

“올라오는데 매화가 막 피길래 몇 송이 실례했어라.”

밥그릇에서 우려진 차를 잔에 따랐다. 그리고 매화송이를 몇 개 올려놓으셨다. 그런 모습을 처음 봤다. 속으론 ‘저 매화가 뜨겁지 않을까?’하는 생각만 들었다. 잠시 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봉오리였던 매화송이가 조금씩 벌어지더니 이내 활짝 피어나는 것이었다. 매화향이 좁은 토굴 안을 가득 채웠다.

“스님, 공부도 좋지만 몸도 좀 생각하면서 하시오 잉.”

스님이 차를 따르면서 이야기하셨다. 번지도 없는 이 첩첩산중 토굴을 물어물어 찾아와, 봄소식을 알려주는 스님의 그 말씀에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수행이란 내 의지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공부를 점검해 줄 스승이 곁에 없으면 이루기가 힘든 것이었다. 어설픈 용맹심 하나로 토굴에 들어 온지도 어언 일 년. 공부란 책 속에만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출가 전부터 수행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스님은 지금 나의 처지를 꿰뚫고 있었다. 하는 말씀마다 지당했다. 수행 길에 스승과 도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던 것이다.

겨울 해는 짧았다. 같이 있어봤자 잘 공간도 부족한 걸 눈치챈 스님이 산그늘이 마당으로 슬금슬금 발을 걸칠 때쯤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산을 내려 가셨다.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가다가 한 번 뒤돌아보시더니, 땅바닥에 큰절을 하고 이내 사라졌다. 난 마당 끝에 서서 망부석이라도 된 듯 스님이 사라진 그곳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몸살 난 것을 깜박 잊고 찬바람을 너무 많이 쐰 것이다. 방으로 들어왔다. 마시던 찻자리를 정리하는데 좌복 밑에 봉투가 하나 있었다. 도반 스님이나 나나 스님이 된지 겨우 일 년이 지났는데 무슨 돈이 있겠는가? 아마 행각 중에 받은 여비를 나한테 주고 가신듯 했다.

‘그래, 이렇게 약값을 주고 가셨으니 내일은 읍내 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 먹자. 그리고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정진하는 것이 스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은 가시면서 가끔 차나 한 잔씩 하고 수행하라며 내가 마시던 찻잔과 차 봉지를 두고 갔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투박한 찻잔. 두 손으로 조용히 감싸들고 바닥에 조금 남아 있던 식은 차를 마셨다.

‘아! 이 매화향기.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도반은 떠나갔지만, 그가 남기고 간 차향은 아직도 찻잔 속에 남아 있었다. 지금은 소식마저 끊긴 그 스님. 지리산 토굴에서 수행하며 꿈같이 행복했던 아름다운 시절은 찻잔에 밴 차향처럼 늘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473호 / 2019년 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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