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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말의 지옥에 내린 가피

초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만화책 손오공을 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란 말이 눈에 들어왔다. 손오공이 도술을 부릴 때면 이 주문을 외웠다. 손오공뿐만 아니었다. 어릴 적 보았던 수많은 만화에서 스님이든, 산신령이든, 도사든 다들 ‘수리수리 마하수리’라는 주문을 외웠고 그 후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그래서 ‘수리수리 마하수리’란 주문을 정성껏 외우면 정말로 마술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문이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는 입으로 지은 업을 맑게 정화하는 불교의 진언, 즉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었다.

경전에는 수많은 진언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유독 정구업진언이 회자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말의 힘이 갈수록 커지는 시대 흐름이 정구업진언을 불교 밖으로 불러냈을 것이다. 현대의 싸움이라는 것이 대부분 말싸움이다.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각계에서 말싸움이 풍년이다. 국가 간에도 총칼 대신 말싸움으로 대신한다. 여론전(輿論戰)이다. 그러다 보니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입이 거칠어졌다. 진실보다도 믿게 만드는 포장술과 험한 말을 찾는 기술만 늘어갔다. 상대를 조롱하고 상처를 주기 위한 천박한 조어들도 난무했다. 

불교계도 마찬가지다. 몇 년간 온갖 험악한 말들로 몸살을 앓았다. 부처님의 말씀을 뒤져 가장 저주스런 말을 찾았고, 이를 잘 벼려서 상대를 베는 칼로 이용했다. 지옥중생을 구제하려는 서원보다는 상대를 지옥에 보내기 위해 더 혈안이 됐다. 막말은 정의로 포장됐고, 파렴치 전과 등 흠결 있는 인사들일수록 이에 능했다.

그래서 정구업진언의 의미가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어쩌면 정구업진언은 말의 지옥에 빠져 허우적대는 세상에 내린 가피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곧 있으면 설이다. 올해는 정구업진언이 불자들의 화두가 됐으면 한다. 다들 자신의 말을 살펴보기를.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474호 / 2019년 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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