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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불교와 비건채식의 이유

기자명 고용석

채식은 생명을 살리는 삶의 방식

육식 비난하고 채식 강조하는
이분법 아니라 함께사는 문화
비건채식 행하는 잠재적 불자
불교계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인류의 공감능력은 언제쯤 만개할까. 일주일에 12억 마리의 살아있는 동물들이 끔찍하게 도살당한다. 한편 환경학은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 기아와 전염병 및 만성질환의 증가에 육식의 결정적 역할을 역설한다. 이 죽음과 고통의 악순환을 끝내야한다. 생명과 평화의 선순환으로 전환할 때다. 채식은 이 죽음과 고통의 쳇바퀴에 대한 ‘알아차림’이자 방향전환이다. 극단적이거나 금욕적인 게 아니다. 쉽고 간단한 게 우리의 본성 자체가 생명이고 평화이기 때문이다. 채식은 이러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생명을 해치지 못하는 마음이자 그 씨앗을 살리는 삶의 방식이다. 육식을 비난하고 채식을 강조하는 이분법이 아닌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한 철학적 문화이다.

첫째, 우리의 몸은 불성을 담는 신성한 그릇이다. 거기에 동물의 시체를 쌓는 것은 무자비 하다. 인과로 봐도 육식의 대가는 크다. 고기를 사서 먹으면 그 대가는 고기의 가격이 아니라 자신의 생살로 갚아야하기 때문이다. 사실 끔찍한 것은 동물의 고통과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이다. 고기를 먹는 것은 생명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을 짓뭉개고 자신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둘째, 고기를 고기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해탈시키기 위해 먹는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가능한 일이다. 단 똥을 똥이 아니라고 자연스레 먹을 수 있다면 말이다. 혜능 스님도 사냥꾼 무리 속에서 음식에 유의하는 모습이 있는데, ‘고기를 고기 아니다’라며 먹는 이는 최소한 육조대사보다 근기가 수승한 분일 것이다. 섣부른 합리화는 금물이다.

셋째, 불교는 자비와 상호연기, 공과 중도 그리고 팔정도를 가르친다.   어느 것에 비추어 봐도 생명체를 취함에 겸손하고 조심함이 마땅하다. 야채를 구할 수 있으면 살생은 피해야하고 불가피하게 살생할 때는 이 동물을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가를 고려해야한다. 이렇듯 매끼 밥상에서 방생을 행할 수 있다. 불교와 경쟁했던 자이나교에 비해 불교는 중도와 자비에서 우러나는 유연함과 배려로서 불살생을 말한다. 

넷째, 사실 육식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열반경’ ‘범망경’ ‘법구경’ ‘능가경’ ‘화엄경’ 등과 초기경전인 ‘니까야’에도 부처님이 분명하고 세세히 말씀해 놓으셨다. 경전에 비추어 고민함이 최소한 불자의 자세가 아닌가.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은 당시 동물희생 제사와 고기를 탐하는 지배계급에 시달렸던 대중의 고통을 반영하고 있었다. 힌두교는 불교의 생명에 대한 경외가 너무 강력하고 대중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받아들여 마치 힌두교 가르침의 일부 인 것처럼 보이려고 했을 정도다.

다섯째, 오늘날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는 불살생뿐만 아니라 오계에 모두 걸리지 않음이 없다. 굶주린 아이들에 돌아갈 몫을 훔치고 대규모 생물종을 멸종케 함으로써 ‘훔치지 마라’와 ‘깨어있는 소비’에 걸리고, 끔찍한 사육환경과 강제임신, 도살되는 동물의 고통과 분노를 외면함은 인간의 ‘진실한 소통과 사랑’에 부메랑이 된다. 동물과 자연을 대하는 자세와 인간관계는 서로의 거울이다.

여섯째, 현대과학·환경운동도 이제 우주는 완전한 상호의존 체계이며, 만물은 하나하나 고유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우리 행동의 결과도 살아있는 우주에 공명해 윤리적 되울림으로 되돌아온다고 인식하고 있다. 비건채식은 이 인식을 일상의 음식선택을 통해 실천한다. 발우공양 정신을 현대에 맞게 대중화한 삶의 방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올해를 ‘비건의 해’로 전망했다. 동물윤리, 생태계보호, 윤리적 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비건채식을 실천하는 20~30대들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훌륭한 잠재적 불자들을 불교계가 모범을 보임으로써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474호 / 2019년 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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